[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네이버가 경기도 용인에 추진하던 데이터센터 구축을 전격 철회한 것으로 확인됐다. 14일 용인시청과 업계 등에 따르면 네이버는 전날 용인시에 공문을 보내 데이터센터 건립 추진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네이버가 용인에 데이터센터를 구축할 경우 전자파 발생 등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는 주민들의 반발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주민들의 우려를 두고 '당연한 걱정'이라는 주장과 '확인되지 않은 정보로 네이버로 대표되는 데이터 주권 꿈이 멀어지고 있다'는 비판이 양립하고 있다.

주민들 "건강 위협"
네이버는 오는 2023년 완공을 목표로 용인 공세동에 데이터센터 구축을 추진한 바 있다. 강원도 춘천에 가동하고 있는 데이터센터 각과 비교해 2.5배나 큰 규모다. 네이버는 이를 바탕으로 데이터와 관련된 다양한 가능성 타진에 나설 방침이었다.

문제는 주민들의 반발이다. 용인시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네이버의 2차 데이터센터 계획이 발표된 직후 건강권 위협을 들어 강하게 반대했다. 지난 11일 용인 공세동 대주피오레아파트 네이버 데이터센터 건립반대 주민대책위는 시청 광장에서 집회를 열어 네이버의 데이터센터가 초등학교와 5000명이 거주하는 아파트 단지에서 고작 50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으며, 전자파 등의 부작용을 우려했다. 이들은 "주민 96%가 데이터센터 건립에 반대하고 있다"면서 "전자파는 물론, 데이터센터에서 발생하는 열을 식히기 위한 냉각수 처리 약품에 따른 2차 환경피해가 우려된다"고 강조했다.

네이버는 이러한 우려를 두고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하는 한편 춘천 데이터센터 각 전자파 수치 등을 공개했으나, 주민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주민들이 데이터센터에 대해 보이는 우려와 걱정은 '당연한 현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아직 생소한 데이터센터의 개념을 주민들이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운데다, 건강권에 대한 권리 행사는 헌법에 명시된 권리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일각에서 용인 주민들이 데이터센터에 대한 몰이해를 바탕으로 묻지마 비판에만 나섰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이는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국민으로서 건강권 침해 소지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목소리를 내는 것은 자명한 일"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데이터센터가 지역 일자리 창출 등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도 주민들의 반대에 일부 영향을 미쳤다는 말도 나온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SK하이닉스 중심의 반도체 클러스터 로드맵이 처음 등장했을 때 많은 지자체들과 주민들이 유치 경쟁에 뛰어든 적이 있다"면서 "반도체 공장은 백혈병 등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지역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되는 제조업 인프라다. 다만 데이터센터는 네이버 스스로 밝혔듯이 자동화된 시스템으로 구축되어 지역 경제와 별 접점이 없다"고 말했다.

▲ 데이터센터 각이 보인다. 출처=네이버

네이버의 꿈
네이버의 용인 데이터센터 설립이 파국을 맞으며 업계에서는 주민들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는 말도 나오지만, 국내 ICT 업계에는 악재가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만만치않다. 특히 데이터 주권 문제에 있어 이번 사태는 악재가 될 전망이다.

네이버 데이터 전략부터 확인할 필요가 있다.

네이버의 춘천 데이터센터 각은 말 그대로 데이터를 모으는 장소다. 네이버라는 포털 사이트를 통해 생성된 엄청난 정보를 각이라는 '창고'에 쌓아두는 개념이다. 이는 클라우드와 다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AWS, 구글 클라우드, 마이크로소프트 애저 등 클라우드 인프라가 즉각적인 연결성과 시너지를 창출한다면 데이터센터 각은 단순한 저장에 방점을 찍기 때문이다. 그러나 데이터 운용에 있어 클라우드 시대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아이콘으로 부상하며 네이버의 전략도 변하고 있다. 네이버는 기존 데이터센터 운용에 클라우드의 비중을 꾸준히 늘리며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데이터센터 각의 클라우드 비중은 조금씩 의미있는 비중을 확보하고 있으며, 용인에 건설되는 데이터센터는 네이버의 클라우드 전략을 한층 날카롭게 다듬어 줄 수 있는 카드로 여겨졌다.

네이버의 클라우드 전략 선봉인 NBP의 행보에 시선이 집중되는 이유다. 2017년 4월 출범한 NBP는 SK텔레콤 바로 서비스, 펍지 배틀 그라운드 등 대형 파트너들과 함께 외연을 확장하며 국내 클라우드 시장에 진입한 글로벌 강자들과 경쟁하고 있다.

문제는 NBP가 싸워야 할 기존 글로벌 강자들의 존재감이다. AWS와 마이크로소프트 애저는 국내 클라우드 시장의 80%를 점유하고 있으며 최근 한국을 주요 거점 시장으로 점지한 상태다. 이들은 이미 국내에 리전을 설치하거나 혹은 설치할 예정(구글 클라우드)이며, 한국을 중심으로 아시아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시야를 확장시키면 글로벌 강자들의 존재감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AWS는 2011년 80건 이상, 2012년 160건, 2013년 280건, 2014년 516건, 2015년 722건의 주요 서비스와 기능을 발표했으며 2016년에는 1017건, 2017년에는 1430개의 새로운 서비스와 기능을 출시했다. 높은 신뢰성과 확장성, 저비용을 장점으로 하는 클라우드 인프라스트럭처 플랫폼으로 전 세계 190개국에 걸쳐 대기업을 비롯해 정부기관, 스타트업에 이르기까지 수백만 이상의 다양한 고객을 확보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DB시장의 강자 오라클과 손을 잡았고, 클라우드 기반의 스태디아 게임 플랫폼으로 업계를 놀라게 한 구글은 최근 빅데이터 솔루션 기업 루커를 26억달러에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결론적으로 이미 글로벌 강자들이 국내 시장에 뿌리를 단단히 내린 가운데, 국내 기업들은 상상할 수 없는 규모의 경제를 바탕으로 패권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네이버는 NBP를 중심으로 클라우드 경쟁력을 강화해 최소한 국내 시장이라도 수성하려고 노력했으나, 야심차게 추진했던 용인 데이터센터가 주민 반대로 무산되며 전체 로드맵을 수정해야 하는 위기에 처했다.

포털 사이트 구글의 공세에 거의 모든 국가의 토종 포털들이 백기를 들었으나 네이버는 거의 유일하게 이를 막아낸 기업이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클라우드 시장에서 비슷한 성공이 재연될 것이라는 장담은 할 수 없게 됐다.

▲ 클라우드 시장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출처=갈무리

데이터 주권, 멀어지나?
박원기 NBP 대표는 지난 5월 춘천 데이터센터 각에서 데이터 주권을 언급했다. 외국에 데이터 주권을 넘길 수 없으며, 이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주장이다.

업계에서는 박 대표의 데이터 주권 발언을 두고 설왕설래가 많았다. 주로 민간 기업인 네이버가 데이터 '주권'을 논하는 것을 어색하게 보는 기류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나친 국수주의의 발로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 그러나 데이터의 흐름이 곧 ICT 플랫폼의 가치를 결정하고, 그 연장선에서 각 국의 패권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것을 고려하면 합리적인 상황판단이라는 주장에 무게가 실렸다. 미중 무역전쟁의 흐름속에서 기술과 경제도 패권다툼의 무기에 불과하다는 점은 명확히 드러났다.

네이버의 용인 데이터센터 설립 무산에 아쉬움이 큰 이유다. 데이터 주권은 중요한 가치며, 최근 화웨이 장비를 사용한 LG유플러스를 두고 '우리의 정보를 중국에 고스란히 넘겨줄 것이냐'는 확인되지 않은 주장이 나오는 상황에서 데이터 주권의 선두에 선 네이버의 행보를 주민들이 막아선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번 사태를 기점으로 기울어진 운동장 논란에도 불이 붙을 전망이다. 현재 글로벌 기업들이 국내에 리전을 설치하며 주민들의 조직적 반대와 직면한 사례는 거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네이버의 행보가 주민들의 반대로 막힌 점은 의미심장하다는 평가다. 네이버는 국내에서 ICT 업계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으나, 아직도 큰 그림으로 보면 기울어진 운동장 아래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