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슈의 유방암 치료제 '허셉틴'이 미국 시장에서 이달 특허가 만료된다. 출처=로슈

[이코노믹리뷰=최지웅 기자] 유방암 치료제 '허셉틴(성분명 트라스투주맙)'의 미국 특허가 이달 만료된다. 미국에서 연매출 3조원을 올리는 허셉틴을 공략하기 위해 바이오시밀러 기업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이미 삼성바이오에피스와 셀트리온 등 다수의 제약사들이 허셉틴의 바이오시밀러 개발을 완료하고 미국 출시 준비에 돌입했다.

이처럼 허셉틴을 개발한 글로벌 제약사 로슈를 포함한 바이오신약 개발사들은 특허 만료가 임박함에 따라 새로운 수익원을 찾아야 하는 위기에 내몰렸다. 반면 바이오시밀러 기업들은 기존 바이오 의약품을 복제해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하는 기회를 얻게 됐다. 특허 하나에 울고 웃는 제약바이오 업계에 묘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바이오시밀러 시장 진입 기회 확대"

바이오의약품의 특허 만료는 바이오시밀러의 시장 진입 기회를 넓히는 효과를 가져온다.

시장 분석 업체 프로스트&설리번(Frost&Sullivan)에 따르면, 전 세계 바이오시밀러 시장은 지난해 160억 5000만달러(19조 273억원) 규모로 2300억 달러(272조 5500억원)에 이르는 전체 바이오의약품 시장과 비교했을 때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하지만 앞으로 바이오신약의 특허 만료가 지속적으로 발생함에 따라 바이오시밀러 시장은 2025년까지 폭발적인 성장세를 이룰 것으로 예측된다.

세계 바이오시밀러 시장 규모는 지난해 기준으로 160억 5000만달러(19조 273억원). 출처=프로스트&설리번 

실제로 엔브렐, 루센티스, 캐싸일라 등 바이오시밀러 기업들이 군침을 흘리고 있는 주요 바이오의약품 10여종에 대한 미국과 유럽 시장 특허가 10년 안에 모두 만료될 전망이다. 당장 글로벌 제약사 로슈는 올해 허셉틴과 더불어 대장암 치료제로 쓰이는 아바스틴(성분명 베바시주맙)의 유럽 특허 만료까지 앞두고 있다. 바이오신약에 찾아온 위기가 바이오시밀러 시장에는 기회로 작용하고 있는 양상이다.

게다가 다수의 국가에서 건강보험 재정 고갈을 막기 위해 바이오시밀러를 장려하는 분위기도 바이오시밀러 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재 바이오시밀러는 비싼 약값을 감당할 수 없는 개발 도상국을 중심으로 환영을 받고 있다. 의료비 절감 차원에서 바이오시밀러는 상대적으로 효율가치가 높은 의약품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제약시장 조사기관 IMS 헬스에 따르면 바이오시밀러는 바이오신약 대비 평균 30%의 가격 인하 효과를 발생한다. 오리지널 의약품과 경쟁이 발생해 기존보다 20-40% 정도 의료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IMS 헬스는 향후 특허 만료 예정인 주요 바이오신약의 시밀러가 출시될 경우 미국을 비롯해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영국 등 유럽 주요 5개국에서 의료비용 절감 효과가 최대 1070억 달러(126조 5489억 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됐다.

"오리지널 의약품의 거센 저항"

바이오시밀러의 입성을 막기 위한 오리지널 의약품 개발사의 저항이 만만치 않다. 천문학적인 비용과 시간을 들여 어렵게 개발한 오리지날 의약품의 가치를 경쟁사에 손쉽게 내어줄 순 없기 때문이다.

이에 오리지널 의약품 개발사들은 독점적 권리기간을 최대한 연장하는 에버그린 전략을 꺼내 든다. 특허만료 시점이 도래하기 전에 기존 의약품에 효능, 제형, 제조법, 신규용도 등 지속적으로 후속 특허를 출원해 바이오시밀러의 시장 진입을 막는 것이다.

애브비는 에버그린 전략으로 글로벌 매출 1위 의약품 '휴미라'의 유럽 특허 종료시점을 2022년까지 연장한 바 있다. 출처=한국애브비

대표적인 사례로 휴미라의 에버그린 전략을 꼽을 수 있다. 글로벌 매출 1위 의약품 '휴미라(성분명 아달리무맙)'는 당초 유럽에서 지난해 특허가 종료될 예정이었으나 개발사 애브비가 건선 등에 적응증 특허를 추가해 특허 종료시점을 2022년까지 연장했다. 이에 대응해 휴미라의 바이오시밀러 개발사인 암젠과 삼성바이오에피스는 각각 애브비를 상대로 특허 무효소송을 진행 중이다. 로슈 역시 비슷한 방법으로 독점적 권리를 늘려나갈 가능성이 높다.

이명선 신영증권 연구원은 "바이오시밀러 개발사들은 특허만료 시점을 고려해 바이오시밀러 개발을 진행했기 때문에 자칫 오리지널 제약사들의 특허연장으로 인해 상당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면서 "바이오시밀러 개발사들은 시장에 안착하기 위해 이러한 에버그린 전략을 무력화시켜야 하고 그에 따른 특허분쟁은 피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바이오시밀러, 제네릭과 달라"

화학합성의약품의 특허 만료로 제네릭이 등장하는 것처럼 바이오의약품의 특허 만료로 바이오시밀러가 출시된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바이오시밀러를 화학합성의약품의 복제약인 제네릭과 똑같이 취급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화학 합성의약품은 구조가 완벽히 일치하게 만들 수 있지만 살아있는 세포나 단백질을 이용하는 생물학적 의약품은 이론상 완벽하게 동일한 구조의 복제약을 만들 수 없다"며 "바이오시밀러는 제네릭에 비해 높은 기술력과 생산시간, 비용 등을 요구한다"고 설명했다.

바이오의약품은 화학합성의약품보다 훨씬 복잡한 결정구조를 가진다. 출처=셀트리온

제네릭은 특별한 기술 없이도 화학합성 과정을 통해 대조약(원조의약품)과 똑같이 생산할 수 있다. 화화합성의약품의 특허가 풀리면 수십 종의 제네릭이 시장에 쏟아지는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반면 바이오시밀러는 대조약을 정확히 복제해 생산하는 것이 어렵다. 복제약이지만 세포의 배양 조건, 정제 방법 등에 의해 최종 산물의 특성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사하다는 의미의 시밀러(Similar)를 붙여 바이오시밀러라고 부른다.

이 연구원은 "급성장하는 바이오의약품 시장에서 특허만료와 함께 찾아온 바이오시밀러 시장은 동일한 효과, 저렴한 가격으로 궁극적으로 의료비 절감 효과를 가져온다"면서 "향후 폭발적인 성장이 기대된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