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태호 기자] 미국산 원유 급락세로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 선물가격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파생결합증권(DLS) 발행 랠리가 6월에도 계속되고 있다. 보름이 채 되지 않았음에도 6월 원유 DLS 발행규모는 이미 지난 1월~4월 평균을 뛰어넘었다. 인식 확대 영향 등으로 공모비중이 높아지는 대신 혼합상품이 늘어나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12일 기준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 선물상품을 기초자산으로 한 파생결합증권(DLS)의 6월 발행액은 공모·사모 합계 879억원을 기록하고 있다.

1314억원의 발행액을 기록한 지난 5월에 이어 랠리가 지속되고 있다. 6월 보름이 채 지나지 않았음에도 WTI 기초 DLS 발행금액은 올해 1월부터 4월까지의 평균인 614억원을 이미 넘어섰다.

▲ WTI 기초자산 DLS 발행금액. 출처=한국예탁결제원

미-중 무역분쟁 확대와 셰일오일 채산성 증가 등의 영향으로 WTI 하락세가 지속되면서 DLS 상품의 원금 손실 기준점도 대폭 내려갔기 때문이다. 즉, 투자 리스크가 줄어든 것이다.

이는 DLS 구조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DLS는 간단히 말해 평가 시점의 상품가격이 발행 당시 가격수준으로 결정되는 기준점의 일정 구간에 머물 경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상품이다.

평가가격이 통상 6개월마다 있는 조기상환 평가 기준에 미치지 못할 경우 이익 획득 가능 구간이 점점 내려가고 대신 수익률이 높아지는 ‘스텝다운(Stepdown)’ 형식이 대다수다. 여기에 원금손실기준 정해진 낙인(Knock)이 대체로 결합된다.

DLS는 통상 2~3개의 기초상품 조합으로 구성된다. 이 경우 기초상품 중 하나라도 조기상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다음 상환차수로 넘어가게 되며, 마찬가지로 한 가지라도 낙인 배리어 하단을 찍게 되면 바로 원금 손실을 보게 된다. 대신 혼합상품 수익률은 단일물보다 더 높다.

예를 들어 WTI 기준가격이 배럴 당 50달러이고, 브렌트유는 60달러라고 하자. 두 차례 예정된 조기상환 가능 구간은 기준가격의 90%와 80% 이상이며 손실기준(낙인 배리어)은 50%라고 하자.

이 경우 WTI 상환 구간은 45달러와 40달러 이상이고, 브렌트유는 54달러와 48달러이상이 된다. 낙인배리어의 경우 WTI는 25달러, 브렌트유는 30달러가 된다.

1차 조기상환 시점에 WTI 가격이 45달러를 넘고, 브렌트유가 54달러를 넘으면 해당 상품은 약속된 수익률을 지급하고 종결된다. 둘 중 하나라도 넘지 못하면 조기상환 기준은 내려가며, 이는 만기까지 지속된다.

다만, 어느 특정 시점에 한 번이라도 WTI나 브렌트유 가격이 낙인 배리어 하단을 찍으면 바로 원금 손실을 보게된다. 통상 손실규모는 원금*(만기평가가격/최초기준가격) 공식으로 결정된다.

예를 들어 위의 상품에 1억원을 투자했다고 하자. 만약 3년 안에 WTI 가격이 낙인배리어 밑으로 떨어졌다가 만기에 30달러를 기록하고, 브렌트유도 40달러 기록하며 종료됐을 경우, 상품 구매자는 원금의 3분의 1 가량을 잃을 수 있게 되는 구조다.

통상 원유 DLS 낙인배리어는 45~50% 수준 내에서 결정된다. 즉, 유가가 내려가면 그만큼 배리어도 낮아지는 것이다. 대신 조기상환은 어려워진다.

원유 선물 가격은 아주 바닥을 치기가 어렵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감산, 투기적 매수 등 복잡한 역학관계가 상시 얽혀있어 변동이 잦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원유 선물 가격이 배럴 당 80달러에서 40달러로 하락하는 것 보다 50달러에서 25달러로 내려가는 일이 더욱 드물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6월 발행물 WTI 기준가는 배럴 당 51.68~53.99 구간에 머물러 있다. 낙인배리어 45%를 적용할 경우 6월 WTI DLS 발행물 기준 최저 낙인 배리어는 배럴 당 23.25달러가 된다. 이는 WTI 선물의 10년래 최저 가격인 26.21달러보다도 낮은 가격이다.

▲ WTI 가격 변동 추이. 10년래 최저가는 지난 2016년 2월 12일의 배럴 당 26.21달러였다. 출처=네이버 금융

즉, 유가는 하락할수록 하방 경직성이 강해지므로 원금 보장율이 높아져 WTI DLS 상품이 잇따라 출시되는 것이다.

원유로만 한정했을 때 원금 보장률이 매우 높아진 만큼, 원유 선물로만 구성된 상품 발행은 다소 위축되는 모양새다.

대신 항셍지수, 유로스톡스50 등 주가와 섞인 혼합상품 발행이 더욱 늘고 있는 분위기다. 원유 선물로만 구성된 DLS의 6월 발행액은 올해 1월~4월 평균의 절반인 115억원으로 대체로 비슷한 수준이지만, 혼합 DLS 6월 발행액은 지난 1~4월 평균보다 80% 많은 764억원을 기록하고 있다.

더불어 유가 하락세 기조가 더욱 두드러지고 공모 DLS에 대한 인식도 확대되면서 6월 WTI 기초 DLS 공모 발행 비중은 높아졌다. 6월 공모 발행액은 803억원으로 전체의 91.35%를 차지한다. 1~4월 평균 공모 발행액은 404억원으로 전체 비중의 66.3%에 이른다.

▲ WTI 기초자산 DLS 종목별 발행 비중. 출처=한국예탁결제원

구경회 KB증권 애널리스트는 “무역 규제 강화 등 글로벌 원유 수요 둔화에 대한 불안감으로 선물시장 투기적 순매수 잔고가 감소한 것이 유가 선물에 악영향을 줬지만 최근의 하락 폭은 과도한 수준”이라며 “원유 DLS의 기초 자산인 WTI 유가가 현 수준의 50%인 27달러 미만으로 하락할 가능성은 매우 낮아 신규 투자 리스크가 매우 낮아진 것으로 판단된다”라고 분석했다.

원민석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하반기 WTI 가격밴드를 배럴 당 45달러~65달러를 제시한다”라며 “현재는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감이 있어 과거 대비 감산이 국제유가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될 것으로 전망한다”라고 분석했다.

다만, 크지는 않아도 변수는 있다. 셰일오일 채산성 확대로 손익분기점이 낮아져 미국 에너지업체들이 ‘규모의 경제’ 전략으로 전환해 유가 하락 압력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셰일오일 최대 생산지 중 하나인 텍사스 퍼미안(permian) 분지의 올해 1~4월 시추기 당 원유 평균 생산량은 일일 607배럴로 지난 2015년 대비 105%나 뛰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내년이면 미국이 원유 순수출국이 되고 2023년에는 러시아보다 많은 많은 원유를 생산할 것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