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세계 산업계는 중국을 배제한 미국 주도의 생태계와 미국을 배제한 중국 주도 생태계로 갈라질 것”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지난 5월 26일 보도한 기사의 일부다. 이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미중 무역전쟁의 핵심적 단서를 잘 보여주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벌이는 미중 무역전쟁이 사실상 상대를 압도하려는 진영논리의 연장선에 있으며 이는 한쪽이 무너지거나 항복하거나 혹은 타협하지 않으면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비단 경제에만 국한된 논란은 아니다. 미중 무역전쟁의 이면에는 글로벌 패권을 장악하려는 정치와 군사, 외교의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으며 이는 복잡한 고차 방정식이 되어 경제의 불확실성을 높이고 있다. 독수리와 용의 대결. 제2의 냉전이 시작됐다.

▲ 독수리(미국)와 용(중국)의 싸움이 시작되고 있다. 출처=갈무리

미국, 중국을 보다

2차 세계대전 후 영국으로부터 글로벌 패권을 가져온 미국은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를 중심으로 하는 대외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했다. 이어진 소련과의 냉전도 사실상 승리로 이끌며 명실상부 패권국이 된 미국은 때로는 테러와의 전쟁으로, 때로는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신이라는 이름으로 각 지역에서의 영향력을 극대화했다.

미국은 1979년 소위 핑퐁외교를 통해 사회주의국가 중국과 수교한다. 중국이 주장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인정하며 대만과의 국교를 단절하고 나선 파격적인 조치다. 당시만 해도 도광양회(韬光养晦)라는 지극히 조심스러운 대외정책을 추구하던 중국은 미국이 내민 손을 잡았고, 미국은 중국이 팍스 아메리카 체제로 들어와 ‘상식적인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기를 기원했다.

미국은 빠르게 움직였다.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도왔으며 자국 기업의 중국 시장 진출도 장려했다. 이 때 중국 시장으로 들어간 미국 기업들이 나이키와 애플, IBM 등이다.

미국과 중국의 아름다운 동행에 온 세계가 안도의 한 숨을 내쉬던 무렵, 2015년 3월 미국 의회 외교위원회에 특별 보고서가 보고됐다. 헨리 키신저 수석 연구원인 로버트 블랙윌과 애쉴리 텔리스가 작성한 '미국의 중국 전략 수정'이라는 보고서에는 중국의 팽창에 대비해 미국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전략이 담겼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중국에 대한 미국의 시각이다. 보고서는 중국을 잠재적 적대국으로 묘사했으며, 이를 명확한 문서로 남겼다. 이미 화웨이 장비의 미국 공공시설 철회를 확정한 미국이 중국을 ‘경쟁자’로 인식했다는 뜻이다.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올라선 중국의 존재감을 미국이 의미심장한 눈으로 지켜보는 순간이다.

노골적인 보호 무역주의를 들고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등장하자 논란은 더욱 증폭되기 시작했다. 시작은 우회전략에 가까웠다. 초기 해외에 진출한 미국 기업이 자국에 공장을 세워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며 압박했기 때문이다. 대표 사례가 애플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아이폰 생산 시설의 미국 이전을 집요하게 주장하며 애플을 흔들었고 미국에 공장을 건설하지 않는 기업에는 세금 폭탄을 운운하며 압박했다. 포드가 멕시코 공장 설립 계획을 철회한 이유도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정설이다.

다음 타깃은 미국에서 사업하는 외국기업이었다. 미국에서 '장사'를 하려면 합당한 '대가'가 있어야 하며, 이 과정에서 미국이 손해를 볼 수 없다는 논리를 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도 이에 휘말려 대가를 치러야 했다. 미국은 자국에 가전공장을 운영중인 삼성전자와 LG전자 세탁기를 대상으로 세이프 가드를 발동하는 한편, 전통적 우방인 유럽과도 경제 측면에서는 날을 잔뜩 세웠다.

자국 기업에 대한 압박과 자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에 대한 공세는 조금씩 국가간 전쟁으로 비화되기 시작했다. 여기서 ‘상식적인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기를 바라며 도움의 손을 내밀었던 중국이 타깃이 됐다.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기록적이고 불합리한 무역적자에 시달리고 있다는 논리가 나왔다. 나아가 중국이 자국 기업을 통해 일종의 스파이 행위를 하고 있으며, 이는 미국의 국가 안보에 커다란 리스크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3월 중국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30억달러의 폭탄관세를 매기며 미중 무역전쟁에 돌입했다.

사실 글로벌 외교계에서는 지난해 초 미중 무역전쟁이 포성이 울리기 직전까지 두 수퍼파워가 전면전을 벌이지는 않을 것으로 봤다. G2 수준으로 성장한 중국의 경제력은 여전히 미국에게 매력적인 데다, 북한 문제 등 외교적 공조를 통해 풀어야 할 현안도 산적해 있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실제로 트위터를 통해 시진핑 중국 국가수석이 북한의 핵 야망을 꺾는데 일조하고, 동북아 지역 평화를 유지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중국도 미국과 날을 세워봤자 장기적 관점에서 득보다 실이 크다는 공감대가 강했다.

민간 차원의 교류도 있었다.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고 우샤오후이 안방보험 회장은 2016년 11월 트럼프 장녀 이방카의 남편인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 당시 백악관 선임고문을 만났다. 미국에 진출한 100여개 중국 기업들은 지난해 2월 2일 뉴욕 한복판에 트럼프 대통령에게 새해 인사를 전하는 대형 광고판을 전시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국민,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祝特朗普和美國人民新春快樂)’라는 문구가 적힌 광고판에는 중국 부동산기업 뤼디그룹, 거란스 등이 제작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선택은 전쟁이었다.

중국, 미국을 보다

중국은 대외정책의 핵심을 도광양회로 설정하고 최대한 내부의 힘을 비축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러나 이러한 정중동 행보는 시황제로 불리는 시진핑 중국 국가 수석의 1인 절대권력 체제가 시작되며 여지없이 부숴졌다.

지난해 3월 열린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는 헌법을 개정하며 시진핑 사상을 명기하는 한편, 사실상 국가주석의 장기집권을 공식 추인했다. 중국이 약 40년간 유지한 집단지도체제를 끝내고 시진핑 국가주석 1인 절대권력 체제로 접어드는 역사적인 장면이다. 1992년부터 중국 권력 이동의 불문율이던 '격대지정(隔代指定·차차기 후보를 미리 점하는 것)의 원칙이 깨졌다.

시 주석의 등장은 중국 특유 집단체제의 붕괴라는 역사적 사건에서 기인한다. 실제로 중국은 마오쩌뚱 이후로 공산당 중심의 1당 지배체제는 유지시키지만 사실상 집단지도체제를 택했다.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이라는 결정적인 실수를 통해 집권한 마오쩌뚱의 후계자 덩샤오핑은 필요이상 권력이 집중되는 당주석제를 폐지하고 총서기제를 도입하는 한편, 다양한 파벌을 등용하는 등 중국 특유의 집단지도체제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제는 상하이방의 장쩌민, 공청단의 후진타오가 치열한 권력투쟁을 벌이던 중 제3지대 태자당 인사인 시진핑이 2012년 국가주석이 되며 벌어졌다. 중국이 자랑하는 집단지배 체제가 극단적인 권력암투로 번지며 대안으로 완충지대를 모색했고, 그 결과 시 주석이 등장하며 아이러니하게도 강력한 1인 지배체제로의 이행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권력의 속성을 알고있는 시 주석은 ‘황위’에 오르며 인민들에게 원대한 비전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그 결과 중국몽(中國夢)이라는 개념이 나온다.

시 주석은 2012년 11월 총서기에 오르며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는 것이 근대 중화민족의 가장 위대한 꿈'이라며 중국몽의 시대를 선언한다.

중국몽은 크게 두 개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중국 공산당 창단 100주년이 되는 2021년까지 샤오캉 시대(인민의 민생이 해결되고 기초 복지가 작동하는 시대)를 여는 한편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100주년인 2049년까지 대동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골자다. 나아가 인민의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한편, 중국 중심의 세계관을 추구한다. 대국굴기의 핵심인 일대일로(一帶一路) 실크로드 프로젝트는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육상 실크로드와 동남아시아, 유럽, 아프리카를 잇는 거대 해상 실크로드를 구축하는 그림이다.

중화민족의 원대한 꿈을 이루기 위한 시 주석 중심의 중국은 미국이 걸어온 전쟁에 ‘맞서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미국이 싸움을 걸어오면 이에 대응되는 반격에 나서는 패턴이다. 이를 통해 내부 결속을 강화하는 한편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G7 국가인 이탈리아까지 편입시키는 성과를 냈으며 최근에는 러시아를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만나는 등 우군 확보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경제를 넘어, 패권으로

미 국방부는 지난 7일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를 통해 대만을 국가로 분류해 파장을 일으켰다. 지금까지 미국 관리가 실수로 대만을 국가로 언급하는 등의 소소한 해프닝은 있었으나, 미국이 정식 보고서를 통해 대만을 국가로 분류한 것은 처음있는 일이다. 이후 미 국방부는 “의례적인 표현”이라면서 한 발 물러났으나 중국은 거칠게 반응하고 있다. 미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흔들려는 행위를 보인 것이 처음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 직후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직접 전화통화를 했으며 최근에는 매파인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대만 안보위원회 고위 인사와 접촉하기도 했다. 미국은 대만에 20억달러의 무기를 판매할 계획도 세우는 등, 최근까지 대만에 대한 구애와 관심을 거두지 않았다. 최근에는 사실상 대만 주재 미국 대사관으로 활용한 미국재대만협회에 미 해병대가 주둔하고 있다는 점을 공식화하기도 했다. 중국 당국은 천안문 사태 30주년을 맞아 자국의 정치적 긴장감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미국이 대만과 손을 잡아 '하나의 중국' 개념을 흔드는 것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중국에 대한 전방위적 압박은 홍콩의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 정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모건 오테이거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지난 10일 홍콩 정부가 추진하는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중국 본토는 물론 대만, 마카오 등 홍콩과 조약을 직접적으로 체결하지 않은 국가 및 지역에도 범죄인을 인도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은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은 현재 홍콩 내부에서 격렬한 반발에 직면한 상태다. 주최측 추산 100만명이 넘는 홍콩 시민들이 집회를 통해 반발하고 있으며, 이는 홍콩의 자치권을 훼손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미국이 사실상 홍콩 시민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후 중국은 홍콩 외교와 국방에 대한 주권을 가지고 홍콩에는 고도의 자치권을 부여하는 일국양제를 기본 방침으로 삼았다. 그러나 홍콩 시민들은 중국이 지나치게 홍콩의 자치권에 개입한다고 반발하고 있으며, 이는 우산시위 등 극한 대결 양상을 빚기도 했다. 지금 추진되고 있는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도 사실상 중국의 개입을 반대하는 홍콩 시민을 압박하기 위한 악법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그 연장선에서 미국이 홍콩 시민의 입장을 지지하며 그 충격파는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미 국방부가 “의례적인 표현”이라고 한 발 물러나기는 했으나 대만을 정식국가로 인정하는 등 ‘하나의 중국’ 개념을 흔드는 상황에서, 이번에는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을 기점으로 또 한 번 중국 흔들기에 나섰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최근 홍콩 당국이 해당 법안을 무기한 연기한다며 사실상 백기를 든 이유도, 미중 무역전쟁에 나서는 중국이 전선의 분산을 꺼려했기 때문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압박은 계속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0일 CNBC에 출연해 중국 관세 문제를 언급하며 “관세는 아름다운 것”이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G20 회의가 끝나고 시 주석을 만날 계획이지만 만약 만나지 못하면 6000억달러 규모의 25% 관세를 매길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미 25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25% 관세를 매긴 상태에서 추가로 3000억달러 이상의 제품에 관세폭탄을 던진다는 뜻이다.

중국은 정중동이다.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즉각 브리핑을 통해 “미중 정상이 G20에서 회동하기를 희망하는 것은 중국이 여러번 발표했다”면서 “(이와 관련된 내용은) 적절한 시기에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미국은 왜 중국을 대상으로 ‘전쟁’에 돌입했을까? 그 시발점인 경제의 측면에서 표면적인 이유는 국가 안보와 관련된 이슈가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화웨이에 대한 압박과 함께 중국 드론업체 DJI와 CCTV 업체인 하이크비전에 대한 압박도 시사하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미국 안보와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화웨이는 통신 네트워크 사업자로서 국가 기간 인프라와 관련이 있고, DJI는 항공 정보 유출과 관련이 있다. 하이크비전은 소위 빅브라더로 통칭되는 감시의 영역에 있다.

중국의 기술굴기를 꺾으려는 미국의 의도에도 시선이 집중된다. 현재 중국은 인공지능 및 사물인터넷, 로봇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빠르게 미국을 추격하고 있다. 그 선봉장이 5G며 화웨이다. 이에 트럼프 행정부는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하는 글로벌 기술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중국을 제압할 필요성을 느꼈고, 그 연장선에서 화웨이 제재 카드를 꺼냈다는 말이 나온다.

더 큰 관점의 그림을 그릴 필요도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가 벌어지고 G7 국가가 중국과 손을 잡는 한편, 트럼프 행정부 특유의 보호 무역주의로 2차 세계대전 후 마련된 미국과 유럽의 공동 패권 시스템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시 주석의 중국이 ‘굴기’를 시작한 배경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결국 글로벌 패권 경쟁이다. 남중국해 분쟁, 대만 논란 등 복잡한 군사 및 정치, 외교적 현안들이 혼재되며 글로벌 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미국의 큰 그림은 미중 무역전쟁도 하나의 장기말에 불과하다는 평가다. 2030년 미국 경제 규모를 추월할 것으로 전망되는 중국의 예봉을 꺾으려는 미국의 행보에는 경제는 물론 글로벌 패권 경쟁 주도권을 쥐려는 확고한 결단이 내재되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근원적 공포를 거론하기도 한다. 19세기 일본이 급격한 근대화를 통해 강대국으로 발전하자 당시 독일 황제 빌헬름 2세는 황화론을 거론하며 아시아의 굴기를 경계한 바 있다. 이러한 공포가 미국 주도의 패권 구도에 은밀한 균열을 내기 시작했고, 팽창을 시작한 중국에 대한 우려로 이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