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친구 하나가 강남의 중학교에 교장선생님으로 있습니다. 통화를 하다가 퇴직 전에

친구들에게 학교 좀 한번 보여주길 요청했습니다. 선뜻 승낙해서 몇몇 친구가 학교를

찾았습니다. 학생 구백여명, 교직원이 백여 명 넘는 비교적 큰 학교였는데, 오전의 학교는

예상외로 조용했습니다. 아마 한창 시끄러울 중학생들 집단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나봅니다.

특별히 이 학교는 대학처럼 실험적으로 과목별 전담 선생님과 교실이 있어 , 아이들이 학교를 오자마자 각기 과목별로 선생님의 교실을 찾아 이동하는 진풍경을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학교를 둘러보는데 여러 교실에서 자는 아이들이 보였습니다. 어느 교실의 출입문에는

‘커플출입금지’라는 쪽지가 붙어 있었습니다. 남녀공학 중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는 연애 사건에 선생님들의 점잖은(?) 개입 방식 같아 보였습니다. 친구 교장 선생님도 ‘아이들은 충분히 자야한다’ ‘아이들에 대한 제재는 가이드라인만 제시하는 것으로’라고 선문답 같은 얘기만 합니다.

빈손으로 간 우리들에게 맛난 점심까지 대접한 친구는 헤어지기 전에 우리들에게 두 가지

얘기를 했습니다. 교장 직을 3년여만 하고 퇴직했어야 하는데, 너무 길게 하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는 얘기를 먼저 합니다. 이어서 선생님들의 아이들에 대한 애정 있는 지도와 그걸 받아들이는 학부모들 간의 갭이랄까, 문화 전쟁같은 것이 있어 선생님들이 어려워하니,

주변에 학부모뻘되는 친인척이 있으면 선생님들에 대한 격려와 이해하는 편에 서도록 부탁을 하더군요. 우리도 다 아는 드세진 학생, 학부모들 탓 같은 불평은 안하고, 선생님들이 더 힘을 내서 넘어갈 수 있게 격려해달라는 친구의 자세가 인상적으로 생각되었습니다.

돌아와서 친구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아이들의 삶에 대한 접촉면을 이러구 저러구 넓혀주려 애써줌이 당신의 일이고 보람아닌가? 그러니 지금에 너무 불편해 하지 말고, 힘을 내시게. 얼마 전 국가기술 표준원이 부쩍 커진 우리 아이들 신체에 맞추어 책, 걸상 등의 규격을 18년 만에 바꾼다고 발표했는데, 달라진

신체 뿐 아니라, 더 중요한 아이들 마음이 바뀐 것에 대한 고려나 반영은 누가, 어떻게 할 것이냐고 친구에게 묻고 싶었다네. 또 아이들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당신에게 너무 커서

보이지 않는 선물이 있던데. 학교 바로 뒤에 일만 명 넘는 석사 이상의 고급 인력이 상주하는 삼성의 연구소가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거기 소장을 찾아가 아이들을 맡은 당신의 고민을

털어 놓으면 기대 이상의 도움도 받을 테고, 당신의 아이들도 그 연구소에 해줄 일이 있지

싶으니 추진해보게나. 한편으로 아이들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순전한 마음을 일깨우는 건

어떤가? 일원동에 자폐아 학교가 있는데, 그 부모들은 그 장애아 자녀보다 하루만 더 살게

해달라고 기도한다지. 그 아이들이 토요일 자원봉사자 동행 외출 순번에 끼어야 부모가

모처럼 쉴 수 있는데, 자원봉사자 수가 적어 그걸 못하고 기다리다 집에 돌아갈 때

마음이 얼마나 아플지. 거기에 당신의 아이들을 동행시켜보면 어떨까?

부쩍 커지는 아이들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이번 영화는 학교 같기도 했고, 놀이터 같기도 했다‘ 이번에 칸 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은

’기생충‘이란 영화에 주인공으로 나온 배우 최우식(29)이 한 말이라네. 이렇게 통통 튀는 젊은 아이돌 들에게 재능 기부를 요청하는 손 편지를 써서 당신의 아이들 앞에 그들을 세워보면

어떠할지. 과거 우리 전통교육에서는 사람 공부를 먼저 하고, 글 공부를 했다고 하지?

당신은 사람 공부를 맡고, 바쁜 선생님들은 글 공부를 맡는 걸로 나누어서..

너무 바쁘지는 마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