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태호 기자] 기업이 민간발전사로부터 신재생에너지를 직접 구매할 수 있는 ‘전력구매계약제도(PPA)’ 도입을 정부가 검토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실제 도입까지 넘어야 할 관문이 아직도 많다고 지적하고 있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산업통상자원부가 최종 발표한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에 전력구매계약제도(PPA) 도입을 검토한다는 항목이 포함됐다.

▲ 산업부가 발표한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에 명시된 PPA 도입 검토 내용. 100페이지가 넘는 보고서 중 PPA가 나온 항목은 이곳이 유일하다. 출처=산업부

PPA는 발전사업자와 기업 등 전력구매자가 사전 동의된 가격으로 전력에너지를 직접 거래할 수 있는 제도다.

PPA가 도입되면 기업은 장기계약을 통해 신재생에너지를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게 된다. 신재생에너지 수요가 늘어나면 공급도 자연히 증가하므로 결과적으로 PPA도입은 신재생에너지 보급 확대의 기반이 될 수 있는 셈이다.

산업부에 따르면, 이번 PPA 도입 검토는 기업 요청으로 이뤄졌다. 글로벌 기업들이 계약조건 중 하나로 신재생에너지 사용 확대를 제시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올 만큼 세계 에너지시장의 친환경 선호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애플, 구글, 페이스북 등 175개의 글로벌 기업들은 재생에너지 100% 사용 캠페인인 ‘RE100(Renewable Energy 100%)’에 참여하고 있다.

이같은 분위기 속에서도, 아직 RE100에 참여한 한국 기업은 전무한 상황이다. 한전이 석탄, 원자력, 신재생에너지 등의 전력을 일괄 구매해 판매를 독점하는 구조에서 신재생에너지만 100% 사용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PPA 도입에 앞장서온 환경단체 그린피스는 RE100의 참여 증가 배경 중 하나로 PPA 확대를 꼽고 있다. 그린피스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기업들은 재생가능에너지 중 24.5%를 PPA로 조달했다. 지난 2015년보다 21.2%포인트나 높다.

PPA 도입 근거 없어… 법안 마련이 필수적

현재 한국은 PPA를 도입할 수 있는 근거조차 없는 상황이다. 관련 법안이 없을뿐더러, 심지어 현행 전기사업법이 오히려 PPA도입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현행법상 1MW 이하의 신재생에너지발전사를 제외하고는 에너지 발전과 판매를 병행할 수 없으므로, 사실상 대규모 발전사의 PPA 자체가 금지돼있는 형국이다.

즉, PPA 도입 이전에 먼저 관련 법안 마련이 필요한 상황이다. 현재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PPA 도입 관련 법안 발의를 검토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한전, 전력거래소 등과 협의해 PPA도입과 관련된 조항을 전기사업법 안에 추가하는 내용의 법안 발의를 준비하고 있다”라며 “법안 발의와 시행령 삽입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으며 이르면 올해 여름 이전에 가시적인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법안 발의 이전에는 시행령 개정을 논의할 수 있다. 특히 시행령은 산업부가 개정할 수 있으므로 보다 빠르게 PPA 도입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

현재 산업부는 전기사업법 시행령에 포함돼 있는 ‘1MW 이하의 신재생에너지발전사업자는 전력시장 외에서의 전력거래가 가능하다’ 항목 개정을 검토하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관련 법안이 없는 현재로서는 시행령 개정만 검토할 수밖에 없다”라고 밝혔다.

다만, PPA 도입을 적극 주장하는 이들은 시행령 개정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산업부에서 시행령 개정이 가능하다는 점을 달리 말하면, 정부가 바뀌었을 때 해당 시행령이 사라질 수 있으며, 이는 곧 PPA 도입이 유야무야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현실적 조건 검토 필요… 신재생에너지 단가 아직도 비싸

일각에서는 PPA 관련 법안 발의와 더불어 제반 현실적 조건도 검토해 볼 필요도 있다고 주장한다.

PPA 도입이 실효성을 지니려면 일반 발전사가 생산하는 신재생에너지 가격이 한국전력공사(한전) 공급가보다 저렴하거나 최소한 비슷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신재생에너지 가격은 한전 판매가격보다 비싼 상황이다. 한전에 따르면, 지난해 산업용 평균 전기요금은 킬로와트시(kWh) 당 106.5원이었다. 반면, 신재생에너지 구입단가는 이보다 더욱 높은 kWh 당 180.98원을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문제가 단기적으로 해결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신재생에너지 발전원가가 아직도 비싸기 때문에 당분간 가격차이는 발생할 수 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포스코경영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의 태양광발전 설치투자비용(CAPEX)을 100으로 봤을 때 중국은 57.8, 독일은 67.2에 불과하다. 운영유지보수(O&M) 비용도 차이난다. 중국과 독일의 연간 O&M은 한국의 30~40% 수준이라는 설명이다.

조윤택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일사량이 유사한 중국, 독일과 비교했을 때 한국의 설치투자비용이 높은 이유는 모듈, 인버터, 인허가비용, 표준시설부담금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라며 “O&M 비용 차이는 토지임차료 차이가 주요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조윤택 수석연구원은 “재생에너지 발전 원가가 높아 그린 프라이싱 도입 시 추가 지불해야 할 금액이 클 가능성이 있다”라며 “태양광·풍력발전 원가 하락 추세 등을 2~3년 지켜보고 제도화를 모색하는 것도 방안이 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신재생에너지의 최대 약점 중 하나인 가격 리스크를 헷징할 수 있는 방안도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신재생에너지의 경우 가격 변동이 크다보니 장기계약가격이 현물시장 가격보다 낮으면 판매자가 손해보고 반대로 높으면 구매자(기업)가 손해를 볼 수 있다.

이 경우 기업과 발전사 양측 모두 전력 직거래를 주저할 수 있으므로, PPA 활성화를 위해 가격변동성을 헷징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한전에 따르면, 지난해 신재생/기타에너지 월 평균 구입가격은 킬로와트시(kWh) 당 97.28원에서 419.36원을 넘나들었다.

PPA 자체가 한국 실정에 맞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해외 PPA 증가는 특정 업체가 전력 인프라를 전부 감당하기 어려운 배경에서 비롯됐는데, 한국은 한전이 전력연계를 안정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PPA 도입 당위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한 전문가는 “PPA도입은 궁극적으로는 재생에너지 확대와 이어져야 하는데 한국의 경우 재생에너지 발전소 건설을 위한 인허가 절차가 복잡해 PPA도입 기대효과가 일부 상쇄될 수 있다”라고 전망했다.

김승완 충남대학교 전기공학과 교수는 지난 3월 열린 PPA도입 관련 토론회에서 이같은 지적에 대해 “PPA가 한전의 전력판매 가격보다 메리트가 있으려면 세제감면 등 계약가격 외적 수단을 활용해야 한다”라며 “리스크 헷징 역시 영국 정책 등을 참조했을 때 정부 지원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더불어 김승완 교수는 “PPA 도입이 단순한 정부보조금 지출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재생가능에너지 확대로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면서 “신규 재생가능에너지 프로젝트와 연계 시 제도적 지원이 제공되는 형태의 구매제도가 바람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