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대미 항전 선언

이란 문제는 결과가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미국이 물러나든, 이란이 물러서든, 둘 중 하나가 뒤로 물러서야 대화다운 대화가 풀릴 것 같다. 그렇지 않고 계속 평행선을 유지한다면, 미국과 이란에게 남은 선택은 한 가지밖에 없다. 미국의 이란 공습이다.

이란은 전쟁으로 표현하고 싶겠지만, 전쟁은 대등한 힘을 가진 세력이 균형을 깨뜨리기 위해 펼칠 때 부르는 이름이다. 누가 봐도, 미국과 이란은 대등한 관계가 아니다. 그래서 이란이 결사항전을 다짐하는 순간, 미국의 일방적 공격이 시작될 것이다.

이런 불길한 전조를 2019년 6월 2일 일요일에 느낄 수 있었다. 최근의 사태로 인해서 세계의 주목을 받는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수도 테헤란에서 학자, 의사들의 집회에 참석했다. 그 자리에서, 로하니 대통령은 미국이 정상 상태로 돌아오면 대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대화는 하겠지만, 미국이 대화 자격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로하니 대통령이 이런 간담 서늘한 발언을 하자, 이란 국영 프레스TV는 발언을 그대로 송출했다. 로하니 대통령은 “협상장을 떠나고 합의를 뒤집은 당사자가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와야 한다.”고 분명히 말했다. 그리고 “적이 과거 조치들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 한, 우리는 저항하는 것 말고 다른 도리가 없다.”고 덧붙였다. 로하니 대통령은 미국을 적이라 부르며, 격앙된 소리로 꾸짖었다. 갈등의 원인이 미국이라는 것이었다.

로하니 대통령은 해결책도 내놨다. “적이 잘못되고 부정확한 접근을 했다는 점을 진심으로 깨닫는다면 우리는 협상 테이블에 앉아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미국이 핵합의에 복귀하고 이란에 대한 제재를 풀어야 한다고 촉구한 것이다.

프레스TV는 로하니 대통령의 발언이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대화 제안 직후 나왔다고 밝혔다. 로하니 대통령의 발언 직전,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우리는 아무런 전제조건 없이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히며, 대화를 위해서는 이란이 ‘정상국가’(normal nation)로서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전제조건이 없다고 말했지만, 내용상으로는 이란이 미국 기준에 맞게 변해야 한다고 말한 셈이다.

폼페이오 장관이 정상국가를 들먹이자, 로하니 대통령이 곧바로 정상 상태라는 말로 받아쳤다. 양측이 서로 상대가 정상이 아니라고 따졌다. 정말 심상찮은 상황이다.

 

새로운 세상(A whole new world)

미국과 이란이 갈등의 골을 키워가던 2019년 5월 23일 목요일, 미국의 영화제작사 디즈니사는 판타지 영화 ‘알라딘(2019)’를 개봉했다. 1,400만 관객 관람을 향해 돌진하는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돌풍 속에서도 잔잔하게 200만 명이 관람한 실사영화 알라딘. 알라딘은 이미 1993년에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 흥행 대성공을 했다.

미국과 이란의 갈등을 거론하다 최근 개봉한 영화 알라딘을 언급하는 이유는 알라딘의 살던 신비의 나라 아그라바 왕국이 바로 페르시아, 즉 현대 이란의 특정 지역이기 때문이다. 나는 양탄자, 요술반지와 요술램프, 그리고 좀도둑 알라딘과 사악한 마법사 자파까지, 알라딘의 모든 상상력은 미국의 정상화를 외치는 이란에서 펼쳐졌다.

영화 알라딘을 본 관객들은 알라딘이 살던 아그바라 왕국이 이란이라는 사실에 무심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영화 속 아그바라 왕국은 이란과 관계없는 환상적인 곳이기 때문이다. 영화 알라딘을 보고, 아그라바가 이란이라고 생각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영화 알라딘은 페르시아로 불렸던 이란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란의 과거가 아니라, 이란의 미래이다. 영화 알라딘은 이란의 앞으로 나아갈 길을 보여준다.

이란은 여성의 사회진출도 힘들고, 신분상승도 어렵고, 산업구조도 취약하다. 미국은 이란이 전근대사회라 여긴다. 미국은 이란이 석유를 무기화하며 핵무기를 만들 때가 아니라, 시민혁명으로 민주주의를 달성하고, 산업혁명으로 사회발전을 이룰 때라고 말한다. “남의 나라 문제에 오지랖 넒게 웬 참견이야?” 하고 반문하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로의 이행은 현대사회의 추세야. 그냥 따라.”라고 말하는 미국 일방주의이다.

영화 알라딘은 여자도 지도자가 되며, 좀도둑도 공주 남편이 되고, 1,000년간 램프에 갇혔던 요정도 자유 신분으로 해방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엄연히 원작과는 다른 내용이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이슬람 국가 이란에 대해 미국이 품는 꿈이다. 그래서 알라딘의 주제가는 예나 지금 똑같이 ‘새로운 세상’이다. 모두 꿈꾸는 세상이다.

“당신에게 보여줄 수 있어요. 반짝이며, 빛나며, 눈부신 세계. 말해줘요, 공주님. 마음 가는대로 간 마지막 때가 언제인가요? 당신의 눈을 뜨게 할 수 있어요. 당신을 경의로 세계로 데려갈게요. 마법의 양탄자를 타고 자유롭게 날아요. 새로운 세상. 새롭고 환상적인 광경이죠. 누구도 아니라고, 꺼지라고, 당신이 꿈꾼다고 말하지 않아요.”

 

세계를 움직이는 상상력의 근원

첨단 IT전자 시대로 접어든 2019년 현재, 세계를 움직이는 나라는 어디일까? 세계 최강대국 미국? 미국을 쫓는 세계 최고 인구대국 중국? 아니면 금융 강국 이스라엘?

정답은 바로 이란이다. 믿어지지 않는 말이겠지만, 사실이다. 세계를 움직이는 나라는 1934년까지 페르시아로 불렸던 이란이다. 1918년, 페르시아 영국조약으로 영국 보호령이 되었던 페르시아는 1935년 ‘아리아 인’이라는 뜻의 이란으로 국호를 바꿨다.

이란이 세계를 움직인다고? 미국의 공습을 목전에 두고, 대통령이 나서 온 국민의 결사항전을 독려하는 이란이 세계를 움직이기는 뭘 움직여?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21세기 현대 사회의 모든 상상력은 바로 이란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천일야화’로 불리는 ‘아라비안나이트’는 IT 전자 기술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기상천외한 상상력을 발휘해서 이야기를 만들어낸 민족은 세상에 이란밖에 없다.

영화 알라딘에서 그려진 세계만 봐도 그렇다. 소원을 들어주는 요정 지니가 등장하는 요술 램프는 터치스크린 방식의 스마트폰을 연상시키고, 이번 영화에서는 생략된 요술반지는 버튼식 스마트워치를 떠올린다. 나는 양탄자는 드론을, 무수하게 등장하는 마법사의 군대는 홀로그램을, 술탄을 현혹시킨 마법은 가상현실로 풀이할 수 있다.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에서는 자동문, 음성인식, 엘리베이터 기술이 등장했고, ‘세 왕자의 보물’에서는 망원경, 드론, 첨단 의약품 등에 대한 단서를 제공했다. 이 외에도 ‘아라비안나이트’는 팩스, 전자레인지, 카메라, 스피커, 스프링클러, 자동차, 비행기, 항공모함, 영상통화 등 IT전자 제품 대부분을 구상할 수 있는 상상력을 제시했다.

이란의 전신 페르시아가 이런 창의적 발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지역적 특수성의 영향이 컸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바탕으로, 당시 강국 이집트, 리디아, 이스라엘, 인도 등과 교류하며, 세계 각국으로부터 다양한 상상력을 흡수했기에 이렇게 독특한 이야기를 펼칠 수 있었던 것이다. 단정할 수 없지만, 경계 없는 사고를 전개하던 페르시아가 경직되기 시작한 것은 A.D. 622년 메카에서 메디나로 성천(聖遷)을 한 마호메트 이후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슬람의 상상력은 알라로만 제한되기 때문이다.

 

일촉즉발의 위기 페르시아만

2019년 6월 3일 화요일, AP 통신은 미국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호가 여전히 페르시아만 외곽 아라비아해에 머물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행정부가 이란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한 목적이다. 4조 5천억 원짜리 에이브러햄 링컨호는 살아있는 섬이다.

항공모함을 먼저 발상한 것은 단연 페르시아이다. ‘신밧드의 모험’에서 고래 등을 섬으로 오인했던 신밧드가 불을 피우며 음식을 했던 것이 큰 배의 기원이었다. 물론 이러한 상상력은 미국보다 600년 먼저 중국에서 계승했다. 명나라의 대항해가 정화가 영락제를 대신해서 동남아시아, 인도, 중국, 아프리카까지 대 원정을 했기 때문이다.

중동 계통 색목인 정화는 중국 운남성 곤명에 살았지만, 이슬람 신자였던 아버지를 따라 메카 순례를 다녀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화는 중동을 여행하며 다양한 상상력을 발휘하는 이야기를 접했다. 그리고 훗날 코끼리와 기린을 싣고 올 수 있는 대형 선박 건조를 구상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항공모함의 기원이 되었을 수 있다.

어쨌든 과거 그런 상상력을 발휘한 이란은 미국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호의 압박을 받고 있다. 에이브러햄 링컨호에 근무하는 장교들은 이란의 어떤 위협에도 신속히 대응할 수 있다고 반복해서 말한다. 에이브러햄 링컨호에는 FA-18 호넷, 개량형 슈퍼호넷, 공중조기경보통제기 호크아이, 수색 구조용 헬기 등이 탑재해 있다. 5,000 명의 해군이 승선한 에이브러햄 링컨호의 전력은 이란 전체 군사력보다 강하다. 이란은 지금 국가 존망의 심각한 위기상황이다. 절대 미국과 대결구도를 취해선 안 된다.

다시 영화 알라딘이다. 영화 알라딘에서 변화되는 것은 누구였던가? 알라딘? 자스민 공주? 술탄? 아그라바 백성들? 그렇지 않다. 사악한 마법사 자파였다. 영화 알라딘은 알라딘과 자스민 공주, 그리고 지니가 힘을 합쳐 자파를 내쫓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란의 현실 속의 자파는 누구일까? 영화 알라딘은 누가 자파냐고 묻는다.

이란 국민들은 미국이 영화를 만들면서, 알라딘의 원형을 훼손했다고 말할 수 있다. 지니가 춤추는 음악은 미국 재즈이고, 요술반지 이야기는 사라졌으며, 정말 그 영화의 주제가 민주주의를 목표로 한 지도층의 의식 개혁이었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옳은 이야기이다. 미국 영화 알라딘은 이란의 전승 알라딘과는 상관없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란 식으로 전쟁, 미국식으로 일방적 공습 직전인 현 상황에서, 이란이 감히 그런 이야기를 미국에 할 수 있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반미정서로 인해, 이란 국민들은 디즈니가 영화 알라딘을 개봉했는지조차 알지 못할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문화 제국주의이다. 지킬 힘이 없으면, 국가도, 문화도, 역사도 빼앗긴다. 지금 이란은 ‘사마귀가 수레바퀴를 막는다’는 당랑거철(螳螂拒轍)의 고사를 떠올린다.

일촉즉발의 위기. 내년 이맘때에도 과연 이란이 미국에게 정상 상태를 찾으라고 요구할 수 있을까? 이란에는 지금 알라딘이 사용하던 전지전능한 요술램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