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절한 천재는 천재가 아니라 악마라 불러야 한다.”

구한말의 3대 천재로 벽초 홍명희, 육당 최남선, 춘원 이광수를 꼽는다. 벽초의 임꺽정 10권은 대학시절에 감명 깊게 읽은 책이고, 육당과 춘원의 글들은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교과서를 통해서 입이 닳도록 배웠다. 단골 시험문제로 출제되곤 했기에 당시 국어선생들은 입에 거품을 물고 주입시켰다. 벽초는 작품이야 임꺽정 하나뿐이고 월북한 뒤론 알려진 바가 없지만, 나머지 두 사람은 절대로 가서는 안 될 길을 갔다.

뭐가 뭔지 알 수도 없고,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면서 너무 오래 지나 버렸다. 일제 강점기 동안 조국과 민족을 팔아먹고 침략자에게 충성한 과거를 정리하지도 못한 체 우리 역사가 똥칠갑이 되어 버렸다. 아무리 천재의 명석함을 두루 갖추었더라도, 아무리 불세출의 명작을 남겼더라도, 악마의 글들을 무분별하게 교과서에 싣고 시험문제로 출제하여 아이들에게 익히고 외우게 하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일까 싶다.

프랑스가 나치의 부역자를 처단할 때, 당시 임시정부 수반이었던 드골은 특히나 문학예술인에 대해서는 그 어떠한 탄원이나 구명운동도 받아들인 적이 없다. ‘문학예술인들 그 자체가 도덕과 윤리의 상징적 존재’이기에 더욱 철저했다. 돈으로 부역한 자들보다 말과 글로 부역한 자들이 왜 더 큰 벌을 받아야 하느냐에 대해 ‘바다의 침묵’을 쓴 프랑스 작가 베르코르는 “기업가와 작가를 비교하는 것은 카인과 악마를 비교하는 것과 같다. 카인의 죄는 아벨에 그치지만 악마의 위험은 무한”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차라리 침략자들에게 돈을 준 것이 말과 글을 준 것 보다 억만 배는 낫다.

 

인격과 품성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천재는 이미 천재가 아냐

‘부역자들 친일문인의 민낯’을 쓴 장호철 선생은 “일제 말기 친일부역자들의 반민족 행위 가운데 가장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 글과 강연으로 ‘천황을 위해 죽으라’고 동포 젊은이들의 등을 떠민 일이었다”고 말한다. “이른바 사회 지도층 인사라는 이들이 오히려 더했다. 청년의 죽음을 부추긴 이들의 ‘글과 말’은 추악한 ‘흉기’ 였다”고 강변하고 있다.

변절은 했지만 뛰어난 천재였기에 그들의 글과 말은 아직도 널리 회자되고 있다. 변절하기 전에 쓴 것이라서 괜찮다고 치부하며 그들의 아름다운 말과 글을 배우라고 무분별하게 추켜세운다. 변절한 뒤에 쓴 글들을 숨긴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이 때문에 그들이 더욱 더 추악한 악마가 되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간과하고 있다. 제대로 된 인격과 품성을 갖추지 못한 천재는 이미 천재로서의 자격 상실이다. 사전에서 악마는 불의나 암흑, 또는 사람을 악으로 유혹하고 멸망하게 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한때 아름다운 말과 글을 전했던 그들의 입과 손은 자기 한 몸 건사하기 위해 민족의 정신을 팔아 먹고, 민족의 글을 내다 버리고, 민족의 자존심을 철저하게 깔아뭉개며, 민족을 사지로 내던졌다. 사전에서 말하는 악마의 행태와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세상이 바뀐 뒤에도 그들은 일말의 반성도 없이 대학 강단에서 정치판에서 그리고 조직의 우두머리가 되어 호의호식했다.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사람들은 그런 그들을 배우고 따르고 우르렀다. 그럴수록 그들의 악마성은 더해질 뿐이다.

세상의 모든 조직이 인재에 목말라 한다. 인재(人材)라는 말 뜻을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도 드물다는 생각이다. 재목, 즉 어떤 일을 잘 할 수 있는 학식이나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고 나와 있다. 나는 사전이 커다란 실수를 범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싶다. 제일 중요한 한 가지를 빼먹었다. 뭐가 빠졌는지에 대해서는 나이 50이 넘어서야 명쾌한 답을 얻었다. 145조원 규모의 자산을 운용하는 미국의 헤지펀드,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 (Bridgewater Associates)의 레이 달리오(Ray Dalio)가 쓴 ‘원칙(Principles)’에서였다. ‘인재란 인성과 능력을 보유한 사람’이다. ‘능력과 인성’이 아니라 ‘인성’이 ‘능력’ 앞에 언급되어 있다.

우리 사회는 반쪽짜리 인재에만 급급했다. 시험 성적만 우수하고 능력만 갖추었다면 그들의 인성이야 어찌됐건 요직에 올랐다. 나머지 반쪽이 악마의 그것이더라도 ‘변별할 수 없으니 무시할 수 밖에 없다’는 핑계에만 급급했다. 그래서 지금도 미투며 빚투며 폭투가 끊이질 않는다. 인격과 품성을 갖추지 못한 천재를 악마로 불러야 하듯 인성을 갖추지 못한 반쪽짜리 인재 역시 악마의 범주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다.

‘거짓말 하지 않고 회사를 구하는 법’에서 나는 ‘역사를 돌이켜보면 수많은 나라가 망했는데, 그 원인은 한결같이 내부의 적 때문’이라고 썼다. 실제 수많은 침략을 당한 나라들을 보면 침략으로 위태로울 수는 있어도 패망하여 없어지는 것은 배신자들의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기업 살림살이가 힘들어 질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사라지는 이유는 반쪽짜리 인재들이 저지른 악마의 소행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심보가 선량하지 않으면 학식과 재능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천고일제(千古一帝), 즉 천 년에 한번 나오는 황제로 손꼽히기에 주저함이 없으며, 중국사에서 으뜸가는 황제로 손꼽히는 청나라 4대 황제인 강희제(康熙帝)가 한 말이다. “인재를 논할 때면 반드시 덕을 기본으로 삼아야 한다”며 “재능이 덕을 능가하는 자는 나라를 다스리는 일에 결코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흔히 사람들이 착각을 하는 것이 ‘재능은 뛰어나지만 성품이 좋지 못한 사람’과 ‘재능은 좀 부족하지만 성품이 좋은 사람’을 저울질 하는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 사는 세상에서 이 같은 고민은 지속되어 왔을 성 싶다. 하지만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인성은 땅이고 재능은 그 위에 지어진 집’이다. 성품이 제대로 되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멋있고 웅장하게 지어진 집이라도 땅을 기반으로 해서 지어지지 못한 집이다. 이렇듯 재능을 논하기 이전에 덕을 우선으로 했기에 강희제는 강희대제(康熙大帝)로 불리며 가장 오랫동안 통치한 위대한 지도자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침몰하는 배에서 연료와 돛대를 빼돌리는 반쪽짜리 인재는 악마다

예전 정체기에 들어간 본업에서 희망을 찾지 못한 나머지 ‘재계의 돈주머니’라 불리던 회사는 주머니를 활짝 열었다. 신성장 엔진을 장착하기 위해 괜찮은 사업이라면 업종을 가리지 않고 인수 합병을 시도했다. 쌓여 있는 돈을 주머니에 보관만 하기 보다는 여기저기 빌려주며 돈놀이도 일삼았다. 레져, 건설, 의류, 통신 관련 기업들을 두루 사들였다. 건설 계열사는 둘씩이나 거느렸다. 여기 저기 부동산도 널려 있었다. 급기야 뒤늦게 본업에서도 세계 최고가 되기 위해 과감한 해외 투자도 진행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오자 투자해둔 모든 것들의 가치가 증발해 버렸다. 어려워진 경제환경에서는 인수했던 기업들은 하나 같이 스스로 서지도 못하는 부실투성이였다. 채권 은행들이 연합해서 목을 조여오자 상황은 대번에 180도로 변했다. 그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재무팀장 얼굴 한번 알현하기 위해 은행 사람들이 복도에 줄을 섰었는데, 반대로 재무팀장이 한 푼이라도 조달하기 위해 동분서주 해야 했다. 가지고 있던 부동산이며 그간 인수했던 계열사들을 팔아 치우며 푼돈이라도 긁어 모을 수 밖에 없었다.

그 전에는 ‘BUY’ 사이드에서 엄청난 딜들이 수도 없이 진행됐고, 상황이 바뀐 뒤에는 ‘SELL’ 사이드에서 수도 없는 딜들이 이어졌다. 비싸게 주고 산 회사들을 똥값에 처분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팔면 팔수록 부채비율은 로켓에라도 올라탄 듯 치솟았다. 불면의 밤의 연속이었고, 치미는 부아에 눈물이 앞을 가리는 처참한 신세가 이어졌다. 거듭된 유상증자에 사무실에서 생산현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감당도 되지 않을 거금을 자비로 부담해가며 회사 살림에 보태기도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사거나 팔거나 간에 딜이 거듭될수록 함포고복(含哺鼓腹)했던 유일한 사람이 있었다. 가족 명의로 만들어진 유령회사를 모든 딜 중간에 자문사로 끼워서 하는 일도 없이 수수료를 받아 챙겼다. 침몰해가는 배에서 모든 사람들이 배를 구하기 위해 물을 퍼내고, 배 밑바닥 구멍을 맨몸으로 막고 있는 틈바구니에서, 연료와 돛대와 스크류를 빼돌려서 제 잇속만 챙긴 것이나 다름없다. 한때 그 사람은 기업 인수합병과 투자 부문에서 ‘귀재 또는 마이더스의 손’으로 불렸던 대단한 사람이다. 재계에서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승진에 승진을 거듭한 능력이 출중한 사람이었다.

교세라의 창업자인 이나모리 가즈오가 한 말이 있다. “아무리 세상이 스마트 세상으로 바뀔지라도 변하지 않는 인생 방정식은 ‘능력X인간성’이다. 능력과 인간성 중에서 택해야 한다면 인간성을 택하겠다.” 그는 인간성을 인간의 향기라고 했다. 신이 만든 최고의 예술품이 뿜어내는 진품의 향기만큼 값진 것이 없다는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재능이 수천이라도 인간성이 제로이면 그 방정식의 해답(解答)은 제로다. 이제는 제발 그런 사람을 인재(人材)라고 부르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