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미국의 양대 규제기관인 법무부와 연방거래위원회(FTC)가 실리콘밸리 기업인 구글과 페이스북, 아마존, 애플에 대해 시장 반독점 조사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3일(현지시간) 미 법무부가 구글과 애플을, FTC가 아마존을 조사할 방침이라고 보도하며 페이스북도 FTC의 조사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차기 미 대선주자인 엘리자베스 워런 민주당 상원의원의 경고가 나온 후 규제기관의 행보가 예고된 지점에 주목하고 있다. 나아가 트럼프 미 대통령의 실리콘밸리 견제가 더욱 노골화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미중 무역전쟁의 장기화 국면에서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고, 이 과정에서 법무부와 FTC의 움직임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반론도 나온다.

실리콘밸리 '덜덜덜'
미 법무부와 FTC가 중점적으로 조사할 지점은 시장 독과점 부분이다. 실리콘밸리 테크 기업들이 시장을 장악한 상태에서 약탈적 행위에 나서며 경쟁자들을 억압하고 있다는 논리다. 미국의 대표적인 양대 규제기관이 일종의 업무분장을 통해 규제 가능성을 시사하는 장면이 심상치 않다. 이번에야 말로 확실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의지가 읽히기 때문이다.

WSJ의 보도가 나온 직후 구글과 페이스북, 아마존과 애플의 주가가 큰 폭의 하락세를 보인 이유다.

구글은 최근 유럽연합으로부터 시장 독과점 혐의로 총 90억달러 상당의 과징금을 부과받는 등 부침을 겪었다. 그러나 모국인 미국에서는 지난 2013년 동일한 혐의로 FTC의 조사를 받았으나 당시에는 별다른 제재없이 넘어간 바 있다. 일부 알고리즘을 조정하는 선에서 타협을 봤다는 후문이다.

구글은 외부인 유럽연합에서 시장 독과점 규제를 받기는 했으나 모국인 미국에서는 '팔이 안으로 굽는' 경험을 한 셈이다.

이번에는 다르다. 법무부가 업무분장까지 마친 상태에서 구글을 정조준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 이번 사태를 예의주시하는 이유다.

아마존과 애플도 시장 독과점 등을 둘러싼 강도높은 조사를 받을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애플은 iOS 생태계를 좌우하며 과도한 수수료를 받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으며 아마존은 이커머스 플랫폼을 중심으로 온라인 경쟁력을 확장, 이 과정에서 소위 골목상권을 위협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페이스북도 비슷한 혐의를 받고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워런의 경고...플랫폼 패권 비상등?
미 규제기관의 실리콘밸리 압박은 예고된 수순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 미국에서도 이들의 시장 독과점 우려가 높아지는 가운데 각 산업계의 불만도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 워런 민주당 상원의원의 올해 초 발언이 눈길을 끄는 이유다. 워런 의원은 지난 1월 11일 SXSW에 참여해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시장 독과점을 비판하며 “시장은 경쟁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기업 해체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실리콘밸리의 지지를 받는 민주당의 차기 대선 주자가 반 테크 기업 정서를 주도하고 있다는 점도 놀랍지만, 그가 주장하는 내용도 파격의 연속이라는 점에서 업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워런 의원은 “아마존과 구글 등은 우리의 경제와 사회, 문화에서 너무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면서 “그들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어 경쟁을 거부하며 우리의 개인정보로 돈을 벌고 있다”고 맹비난에 나서기도 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의 반 실리콘밸리 정서가 더해지며 규제기관의 전격적인 조사에 힘을 실었다는 평가다.

워런 의원의 발언 중 추후 규제기관의 행보를 짐작하게 만들 단서도 있다는 말이 나온다. 소위 판매자와 플랫폼 분리 로드맵이다.

워런 의원은 플랫폼 독과점을 막기 위해 ‘판매자와 플랫폼의 분리’도 주장하고 있다.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특정 플랫폼이 내부 플랫폼에서 판매자처럼 동일한 비즈니스를 한다면 공정경쟁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아마존이 광고비를 많이 집행한 셀러를 최상단에 위치시키는 것을 포함해, 플랫폼 사업자가 자체 생태계에서 비즈니스에 나서는 모든 현상을 부정하는 분위기다.

애플의 경우 플랫폼과 유통망 중 하나만 택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워런 의원의 주장대로라면 애플은 앱스토어를 분리해야 한다.

글로벌 패권 플랫폼들이 최근 위기를 맞이한 상태에서, 이들의 과오를 시장 독과점에서 찾은 워런 의원의 주장은 전혀 다른 차원의 전투를 예고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판매자와 구매자의 데이터를 확보해 광고 마케팅 비즈니스는 주력으로 삼거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인프라를 모두 틀어쥐고 강력한 폐쇄형 생태계를 추구하던 애플 등은 위기가 찾아올 전망이다.

미국은 한 때 석유시장의 90%를 장악했던 스탠다드오일을 무려 30개의 회사로 쪼갰던 역사도 가지고 있다. 워런 의원의 발언과 트럼프 대통령의 실리콘밸리에 대한 악감정, 미국에서 커지고 있는 실리콘밸리 기업의 시장 독과점 논란 등이 결합되면 예상하지 못한 사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다만 일각에서는 미중 무역전쟁이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며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화웨이와 거래를 차단하는 등 적극 협조하는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고, 추후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에서 실리콘밸리 기업의 역할이 크기 때문에 이번 사태가 일시적인 효과만 발휘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