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미국 발(發) 글로벌 경제전쟁의 폭풍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충돌을 넘어 유럽은 물론 인도, 멕시코까지 여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내 기업들은 당분간 아슬아슬한 줄타기에 나설 전망이다. 특히 삼성전자의 고민이 크다.

미국과 중국의 전쟁

3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은 현재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다. 중국의 기술굴기를 대표하는 화웨이에 대한 강력한 제재 방침에 시선이 집중된다. 180일의 유예를 주기는 했으나 자국 기업과 화웨이의 거래를 사실상 원천차단한 장면이 단적인 사례다.

화웨이는 초유의 위기에 직면했다는 평가다. 구글 안드로이드 최신 버전 접근이 차단되고, 인텔과 퀄컴 등 미국의 칩 및 부품 공급선도 막혔다. 영국의 암도 돌아섰으며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마존도 화웨이 배제 방침을 분명히 했다. 화웨이는 자체 스마트폰 운영체제인 훙멍을 가동하는 한편 대만 TSMC와의 공고한 연합전선, 나아가 일본 도시바 및 파나소닉 등과의 협력을 강조하고 있으나 업계에서는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미국은 화웨이를 비롯해 CCTV 업체인 하이크비전, 드론 업체인 DJI에 대한 압박도 이어가고 있다. 천안문 30주년 등 민감한 정치적 시기의 중국을 최대한 압박해 미국 국가 안보 침해 가능성을 대의명분으로 삼는 한편, 중국의 기술굴기를 비롯해 세계 패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겠다는 의지를 숨기지 않고 있다. 미국은 2일 인도 태평양 전략 보고서를 발표하며 “중국 내 소수민족 탄압에 깊은 우려를 가지고 있다”는 내용을 공개하기도 했다.

미중 두 수퍼파워의 힘 겨루기는 더욱 노골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미국이 최근 2000억달러 상당의 중국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하는 한편 추후 3250억달러의 중국산 제품에도 동일한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의지를 밝히자 중국도 즉각 600억달러 규모의 미국산 제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한다고 맞불을 놨다. 두 나라가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압박 카드를 총동원해 ‘끝까지 간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초반 미국의 압박에 주춤하던 중국이 대반격에 나서는 장면도 눈길을 끈다. 중국 인민일보는 3일 중국 국무원신문판공실이 발간한 무역협상 백서를 보도하며 미중 무역전쟁 파국의 원인이 미국에 있음을 강조했다. 중국은 협상이 진행되며 포옹적이고 정정당당하게 임했으나 미국은 갈등을 촉발하고 세계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에만 몰두했다는 노골적인 비판이다.

페덱스 논란도 동일 연장선상에 있다는 평가다. 화웨이가 페덱스를 통해 발송한 문서가 정해진 배송지가 아닌 미국에 도착한 사건이 벌어진 상황에서, 중국 정부는 이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공식 입장까지 발표했다. 실제로 중국 국가우정국의 마쥔성(馬軍勝) 국장은 “페덱스는 법규를 심각하게 위반했다”고 말하며 엄중대응을 약속했다. 나아가 중국은 자국에 한국전쟁 관련 영화 상영을 대폭 늘리며 전의를 다지는 한편, 시진핑 중국 국가 수석이 직접 희토류 관련 시설을 시찰하는 등 ‘희토류 전략 무기화’ 가능성까지 열어뒀다.

미중 무역전쟁은 경제의 분야에만 갇혀있는 것이 아니다. 대표적인 국제 분쟁해역인 남사군도 해협에서 미국 주도로 항행의 자유 작전이 이어지는 가운데 중국 당국은 해당 수역의 군사훈련이라는 카드를 빼들며 강대강 대치를 천명했다. 미중 무역전쟁이 단순한 경제가 아닌, 정치 및 외교 등 다양한 영역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패권다툼이라는 증거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언론을 통해 미중 무역전쟁 협상 과정에서 화웨이 문제 해결 가능성을 시사한 장면과 오버랩된다.

무자비한 트럼프 “미국을 위해”

미국 발 경제전쟁은 중국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미국은 중국과의 무역전쟁에서 강공모드로 일관하는 한편 유럽과 일본 등 전통적인 우방국을 대상으로 한 보호 무역주의 기조를 숨기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인도에도 날을 세웠다. 트럼프 대통령이 1일 성명을 통해 “인도의 개발도상국 특혜관세 혜택을 끝내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1970년대부터 일반특혜관세제도(GSP)를 통해 170개 나라를 선정, 이들이 특정 상품을 미국에 수출할 경우 관세를 면제하는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여기서 인도를 빼겠다는 것이다. 미 의회조사국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인도는 미국에 약 56억달러의 무관세 수출 혜택을 받고 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는 즉각 “GSP는 무역 편파성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양국의 이익을 위해 지속적인 협력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모디 총리는 최근 선거를 통해 재집권에 성공했으나 낮아지는 인도 경제 성장률에 고민이 많은 상태다. 여기에 GSP에서 배제되면 그 파급력은 엄청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업계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 후 경제 호황의 불길을 살려야 하는 모디 총리의 ‘약점’을 제대로 노렸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민감한 정치적 시기에 힘이 분산될 수 밖에 없는 중국을 대상으로 강력한 무역전쟁을 이어가는 대목과 일맥상통한다.

멕시코도 미국의 사정권에 들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유입되는 이민자를 자체적으로 막기 못한다면 오는 10일부터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상품에 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역시 정치적 논란과 경제적 실익을 동시에 관통시키는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전략이라는 말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당시부터 멕시코 등 중남미 이민자들을 배척하는 정책을 폈으며, 이를 지지기반의 핵심으로 삼았다. 그 연장선에서 국경선 강화 등 다양한 액션을 통해 소음을 일으키면서 멕시코 이민자들과 수출입 전선 이해관계를 일치시키는 패턴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다.

두 나라의 협상은 이미 시작됐다. 그라시엘라 마르케스 멕시코 경제장관은 트위터를 통해 3일 미국 워싱턴 DC에 도착해 윌버 로스 미국 상무장관과 협상에 돌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5일에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도 회동할 예정이다.

한국 기업 어쩌나...줄타기 필요

미국의 보호 무역주의가 기승을 부리며 글로벌 경제는 불확실성의 시대로 접어드는 분위기다. 특히 미중 무역전쟁이 필요이상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면 9개월내 글로벌 경제 침체기가 시작될 것이라는 경고도 나온다. 모건스탠리는 3일 보고서를 통해 “투자자들이 미중 무역전쟁이 길게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면서도 “글로벌 거시경제에는 9개월내 침체가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 주식시장이 흔들리며 가계와 기업의 소비가 위축되면서 복합적인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수출 중심 구조의 경제 모델을 가진 한국은 특히 위험하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대중 수출 비중은 전체의 26.8%며, 여기서 80%가 중간재다. 중국을 통해 미국으로 가는 수출품의 판로가 막히면 그 충격파가 고스란히 미칠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미국이냐, 중국이냐’를 두고 양자택일의 선택을 강요받을 수 없다는 말이 나온다.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필요한 이유다.

특히 삼성전자의 경우 화웨이 제재는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의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으나, 메모리 반도체 업황을 보면 장기적으로 수요가 줄어드는 현상을 피할 수 없다. 삼성전자가 글로벌 경제위기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일 전자 관계사 사장단과 회의를 열어 글로벌 경영환경을 점검하고 대책을 논의한 배경이다.

이 부회장은 이 자리에서 "단기적인 기회와 성과에 일희일비하면 안되고,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도 삼성이 놓치지 말아야 할 핵심은 장기적이고 근원적인 기술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라며 초격차를 강조했다.

미중 무역전쟁 외 미국과 인도, 미국과 멕시코 등 확전되는 전쟁의 파급력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국내 기업 중 상당수가 인도에 진출한 상황에서 미국과 인도의 경제분쟁이 벌어지면 역시 타격을 피할 수 없다. 업계에서는 현대자동차 등 국내 자동차 업계가 멕시코를 생산 전진기지로 삼은 상황에서 미국과 멕시코의 충돌은 큰 틀에서 악영향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