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미중 무역전쟁이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며 중국 화웨이가 최악의 위기에 직면했다. 중국이 자랑하는 최고의 ICT 네트워크 플랫폼 기업도 미국 기업의 협력이 없으면 독자생존할 수 없다는 진리가 새삼 증명된 가운데, 업계에서는 화웨이에 집중되는 십자포화의 배후에 주목하고 있다. 화웨이는 왜 미국의 적이 됐을까? 여기에는 단편적인 원인과, 진짜 의도가 혼재되어 있다는 평가다.

손발 묶인 화웨이
화웨이는 29일 성명을 발표, 최근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이 미국 헌법을 위반하는 행위라고 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화웨이는 중국 일부 기업에 대한 미국 기업의 거래중단을 담은 행정명령이 공적인 권리를 박탈하는 법안이라며 "입법이 재판을 대신하는 폭정"이라며 날을 세웠다.

화웨이의 반발은 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는 제재에 대한 반격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180일의 유예기간을 뒀으나 행정명령을 통해 사실상 화웨이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화웨이가 크게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구글 안드로이드 최신 버전에 대한 접근이 차단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이미 대만의 통신사들은 화웨이 스마트폰 판매를 중단한 상태다. 인텔 및 퀄컴 등 칩과 부품 업체들이 화웨이와 거래를 중단하는 장면은 더 심각하다. 여기에 영국의 암도 화웨이 거래 중단 방침을 결정해 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마존도 화웨이와 거래를 중단할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아직 대만 TSMC와 일본 기업들은 사태를 관망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언제까지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을 버틸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평가가 나온다.

글로벌 표준단체까지 화웨이를 배제하고 있다. 와이파이연맹이 화웨이의 회원 자격을 일시 정지했고 소형 저장장치인 SD 메모리카드 기술 표준 단체인 SD협회도 화웨이 배제 방침을 정했다. 블루투스 분야에서도 비슷한 분위기가 연출될 가능성이 높다.

업계에서는 손발이 묶인 화웨이의 고통이 점점 심해질 것으로 본다. 트럼프 행정부의 제재가 이어질수록 거래를 중단한 미국 기업의 타격도 커지겠으나, 이는 화웨이와 비견될 수준은 아니다. 줄리안 고먼(Julian Gorman) 세계이동통신사업자협회(GSMA) 아시아 대표가 최근 기자들과 만나 "화웨이에 대한 제재가 글로벌 5G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하는 등, 사실상 화웨이와 현장을 분리하려는 패러다임이 등장하는 것도 문제다. 화웨이 입장에서는 점점 사면초가로 몰리는 분위기다.

스마트폰과 통신 네트워크 모두 타격이 불가피하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29일 올해 1분기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을 집계한 결과 화웨이가 5843만6200대를 판매해 2위에 올랐다고 밝혔으나 2분기부터는 사정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인텔 및 퀄컴 부품 수급이 막히고 암과의 거래가 차단되면 글로벌 스마트폰 점유율이 크게 하락하기 때문이다.

화웨이의 스마트폰 중화권 판매 비중이 30%에 육박하기 때문에 당장의 큰 타격은 없겠지만,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의 동력 약화는 불가피하기 때문에 추후 2분기와 3분기 화웨이 스마트폰 점유율은 크게 떨어질 전망이다. 그 연장선에서 삼성전자 갤럭시 스마트폰은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평가다. 안슐 굽타 가트너 책임 연구원은 “구글이 화웨이 스마트폰에 서비스 제공을 중단한다면 화웨이의 스마트폰 사업의 절반을 차지하는 사업에 큰 차질이 생길 것”이라며 “이는 고객들의 우려를 야기할 뿐만 아니라 단기간에 화웨이의 성장을 저해할 것”이라고 말했다.

네트워크는 5G 정국이라는 중요한 타이밍에 악재를 만났다. 유럽을 중심으로 일부 화웨이 네트워크 전략이 가동되고 있으나 미래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평가다. 화웨이는 5G 정국에서 유럽 25건, 중동 10건 등 총 42건의 5G 사업권을 수주했다고 발표하며 건재를 과시했으나,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에 전전긍긍하는 것은 숨기지 못하고 있다.

▲ 궈핑 순환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출처=화웨이

화웨이가 적이 된 이유
화웨이는 왜 미국의 적이 됐을까? 표면적인 이유는 국가 안보와 관련된 이슈가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화웨이에 대한 압박과 함께 중국 드론업체 DJI와 CCTV 업체인 하이크비전에 대한 압박도 시사하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미국 안보와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화웨이는 통신 네트워크 사업자로서 국가 기간 인프라와 관련이 있고, DJI는 항공 정보 유출과 관련이 있다. 하이크비전은 소위 빅브라더로 통칭되는 감시의 영역에 있다.

화웨이는 가장 민감한 영역에 있다. 라이선스 비즈니스를 근간으로 하는 국가 인프라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DJI와 하이크비전도 마찬가지지만, 화웨이가 중국 정부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소위 백도어를 운영하고 있다는 비판으로 이어진다. 즉 화웨이 등 중국 기업들이 중국 정부의 '스파이'며, 이들을 배제하고 압박하는 것은 미국의 당연한 권리자 의무로 여겨지고 있다.

블룸버그가 지난 1일 영국의 통신사인 보다폰이 2009년과 2011년 사이 화웨이 백도어를 발견했다고 보도하며 논란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보다폰과 화웨이는 즉각 '사실무근'이며 당시 논란은 기술 오류에 불과하다고 선을 그었으나 이를 향한 의심의 눈초리는 더욱 짙어지는 분위기다.

화웨이의 불투명한 기업구조가 트럼프 행정부의 공격을 더 강하게 끌어내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화웨이와 중국 정부의 유착을 의심할 수 있게 만드는 다양한 단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선 화웨이라는 사명 자체가 중화유위(中華有爲)에서 나왔다는 점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미래가 있다’는 뜻이며, 런정페이 창업주가 인민해방군 출신이라는 점에서 의문은 증폭되고 있다.

런 창업주가 유명한 마오주의자라는 점도 중요하다. 런 창업주는 1944년 태어나 충칭건축공정학원에 입학, 1974년 인민해방군에서 건축병으로 일했다. 이후 1983년 제대해 1987년 화웨이를 창업했으며, 사업 초반부터 마오쩌둥의 전략을 차용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항상 위기의식을 전제로 움직이는 ‘늑대문화’가 대표적이다. 런 창업주는 1995년 12월 26일 ‘목전의 정세와 우리의 임무’라는 글을 발표했으며, 이는 마오쩌둥의 사상을 그대로 옮긴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화웨이는 이러한 의혹에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궈핑 화웨이 순환회장은 지난 4월 취재진과의 만남에서 통신장비 백도어에 대한 우려를 일축했다. “백도어는 자살행위”라는 격한 단어를 사용하며 “단 한 건의 백도어 사건도 없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미국 국가안보국이 운영했던 프로젝트 프리즘 도청사건까지 거론하며 미국의 도덕성을 비판하는 한편 “미국의 네트워크는 안전하다고 볼 수 있나”는 말로 반격에 나서기도 했다. LG유플러스와 5G 정국에서 협력한 상황에서, SK텔레콤은 물론 KT와도 장비 공급을 논의하고 싶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따르면 화웨이는 4월 25일 기자회견을 열어 지배구조를 적극 설명하기도 했다. 화웨이 인베스트먼트 앤드 홀딩스라는 지주사가 100% 지분을 가지고 있으며 이 지주사의 지분 98.99%는 직원으로 구성된 노조의 몫이라고 말했다. 런 창업주는 1.01%의 지분만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민해방군 출신의 런 회장과 화웨이, 중국 정부의 유착을 의심할 근거는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물론 미국은 이를 곧이 곧대로 믿지 않고 있다.

화웨이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이 최근 더 강해지는 장면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을 전격 체포하며 날을 세웠으나, 미중 무역협상이 G20 회의 등을 기점으로 출렁일 때 다소 유화적인 제스춰를 취하기도 했다. 그러나 올해 초 화웨이가 영국을 중심으로 동맹전선을 구축하는 한편 네트워크 인프라를 확장시키는 자신감을 보이자 행정명령을 발동해 초강공 모드로 돌아섰다는 평가다.

결론적으로 트럼프 행정부는 화웨이 배후에 중국 정부가 존재하며, 이는 국가 안보의 차원에서 적극 대응해야할 가치를 느꼈다는 평가다. 이에 화웨이가 사실무근이라고 반발하는 것이 최근 논란의 단면이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가 국가 안보를 이유만으로 화웨이 배제에 나섰다는 주장은 지나치게 협소한 논리라는 평가도 나온다. 이 문제를 이해하려면 중국의 기술굴기에 대한 우려, 나아가 세계 패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현재 중국은 인공지능 및 사물인터넷, 로봇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빠르게 미국을 추격하고 있다. 그 선봉장이 5G며 화웨이다. 이에 트럼프 행정부는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한느 글로벌 기술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중국을 제압할 필요성을 느꼈고, 그 연장선에서 화웨이 제재 카드를 꺼냈다는 말이 나온다.

미국 중심의 세계 패권 향배와도 관련이 있다. 러시아가 세계 패권 레이스에서 다소 멀어진 사이 중국이 그 자리를 채웠고, 미국이 이러한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 기술굴기 제재 카드를 빼들었다는 논리다. 중국의 일대일로가 벌어지고 G7 국가가 중국과 손을 잡는 한편, 트럼프 행정부 특유의 보호 무역주의로 2차 세계대전 후 마련된 미국과 유럽의 공동 패권 시스템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중국의 이상행동을 적극 차단하겠다는 의지다. 여기에는 남중국해 분쟁, 대만 논란 등 복잡한 군사 및 정치, 외교적 현안들이 혼재되어 있다.

시기적으로도 절묘하다. 올해는 천안문 사태 30주년이며 티베트 봉기 60주년, 5.4 운동 100주년, 신장 위구르 사태 10주년 등 중국 정부 입장에서 민감한 정치적 사건의 기념일이 겹쳐 있다. 그 연장선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의 기술굴기 차단에 나서며 세계 패권 유지를 시도하는 한편 민감한 상황의 중국에 견제구를 날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

민감한 정치적 시기는 필연적으로 정세불안을 끌어내며, 미국은 중국이 가장 약해지는 순간에 화웨이 압박으로 대표되는 중국의 대국굴기를 꺾으려는 시도를 이어가는 중이다. 최근 미 언론들이 뜬금없는 시진핑 주석 건강 이상설을 보도하는 이유도 큰 틀에서는 이러한 흔들기와 관련이 있다는 평가다.

트럼프 행정부의 화웨이 배제를 미중 무역전쟁의 틀에서 봐야 하는 이유다. 미국은 세계 패권의 유지를 위해 중국의 대국굴기를 차단할 필요성을 느꼈고, 그 수단으로 기술굴기 차단에 나서는 한편 화웨이 압박에 나서고 있다. 시기적으로 중국의 민감한 정치적 시기와 맞물리며, 내년 미국 대선을 앞둔 절묘한 타이밍이다.

이는 지금의 문제를 화웨이 혼자 풀어갈 수 없다는 것도 시사한다. 이미 화웨이 문제는 거대한 국제정치의 '장기말'로 소비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미중 무역협상을 언급하며 "화웨이 문제도 함께 논할 수 있다"고 말한 지점이 중요한 이유다. 이는 화웨이에 대한 압박이 미중 수퍼파워의 역학관계 내부에 있다는 것을 사실상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의 화웨이 압박이 이어지는 가운데, 업계에서는 미중 무역전쟁의 흐름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가능성이 높으나 '끝장'을 보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미국 입장에서도 중국이 시 주석 이하 거대 단일시장으로 존재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충분히 힘을 빼놓고 적절한 수준에서 타협을 볼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여기에는 화웨이 압박 방침이 미국 기업에 대한 피해로 이어진다는 점도 고려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