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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왔습니다!] 지천명 낙원악기상가, ‘꼰대’서 ‘인싸’로 거듭난다상인들, 명성 믿고 ‘배짱 장사’는 옛말…SNS 소통, 서비스 개선 등 변화에 나서
   
▲ 낙원악기상가 4층 옥상 전경. 사진= 이코노믹리뷰 최동훈 기자

[이코노믹리뷰=최동훈 기자] 28일 서울 종로구 낙원동 한가운데 둥둥 ‘떠 있는’ 낙원악기상가의 4층 야외광장(아트 라운지)은 바빌론 공중정원을 연상시킨다. 평일 오후 6시가 조금 넘은 퇴근시간 삼일대로에서 만난 차량과 인파의 소란스러움과는 상반되는 고요함 때문이다.

면적 820㎡의 4층 옥상은 높은 담장과 아파트 외벽에 둘러싸여 외부 소음을 밀어낸다. 덕분에 마치 높은 산에 오른 듯 지상에서 발생한 자동차 엔진음이나 사람 목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온다. 더 없이 여유로운 장면이지만 상가에 머무르고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이 같은 한적함을 깨트리는데 고심하고 있다. 평온함이 상가의 운명을 이어가는데 마냥 득이 되진 않아서다.

조성된 지 올해 50주년을 맞은 낙원악기상가에는 그간 오만했던 태도를 반성하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악기산업 트렌드에 급격한 변화가 나타나며 상가에 경종을 울려왔지만 내부에서 귀를 닫고 있다 혁신할 시기를 놓쳤기 때문이다.

온라인 거래가 활성화함에 따라 악기를 인터넷에서 사고파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악기소매업계에서 발생한 매출 가운데 매장 판매가 차지하는 비중이 아직은 압도적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 허수가 포함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온라인보다 오프라인에서 책정된 가격이 월등히 높은 가운데 오프라인 판매 비중은 하락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 상가 2층 복도에 늘어선 악기들. 사진= 이코노믹리뷰 임형택 기자

통계청의 도·소매업 조사 자료에 따르면 악기소매업 판매유형별 매출액 가운데 ‘매장 판매’의 비중은 2014년 90.6%에서 2017년 87.8%로 2.8%p 감소했다. 이에 비해 같은 기간 ‘인터넷’ 비중은 7.4%에서 3년 만에 4.3%p 상승한 11.7%로 집계됐다.

낙원상가의 실태는 이 같은 시장 변화상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29일 오후 찾아간 상가 2~4층 모두 재고를 나르는 직원을 제외하곤 발길이 뜸하다. 상가 2층 안내실에서 18년째 근무하고 있는 윤씨는 이날이 평일 오후라는 점을 감안해도 과거에 비해 복도가 너무 잠잠해졌다며 탄식했다.

윤씨는 “10여 년 전 이맘 때 쯤엔 복도에 지금보다 2~3배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다녀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며 “경기가 안 좋아져 밴드 수요가 줄어드는 등 이유로 상가로 향한 발걸음이 드문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직장 휴무일을 맞아 상가를 찾은 한 20~30대 커플을 어렵게 만날 수 있었다. 기타를 하나씩 갖고 있는 도씨와 송씨는 기타 줄을 사기 위해 상가에 들렀다고 한다. 악기를 다루는 지인들과 마찬가지로 상가에 일년에 한 두 번 찾아올까 말까 한단다.

송씨는 “요즘은 인터넷이 잘 돼 있다 보니 상가에 와서 악기를 직접 만져보더라도 온라인 구매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낙원상가에서 이벤트도 많이 열고 온라인 홍보가 많이 이뤄져야 더 많은 사람들이 인지하고 찾아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외부에서 바라본 상가 전면부. 사진= 이코노믹리뷰 최동훈 기자

임씨는 “상가 위치가 애매한데다 차도 많이 막히고 외관도 안 들어오고 싶게 생긴 점 등이 아쉽다”며 “주차문제가 해소되고 환경이 개선되는 등 조치가 실시돼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점포 주인들은 20~30년 전 낙원상가가 국내 음악계의 성지, 메카로 일컬어질 정도로 전국에서 몰려들던 때의 영광에 눈이 멀었다는 점을 자인한다. 이로 인해 그동안 고객 니즈를 읽는데 실패했다는 관측이다. 악기에 대한 수요나 관심이 예전만 못한 등 외부 요인 뿐 아니라 사업자들의 높은 콧대로 인해 소비자들이 등을 돌렸다고 본다.

   
▲ 박주일 낙원악기상가번영회 사무총장이 29일 오후 매장 에끌레시아에서 기자 질문에 답하는 모습. 사진= 이코노믹리뷰 임형택 기자

상가 2층에 위치한 점포 ‘에끌레시아’의 박주일 대표는 27년간 매장을 운영하며 낙원상가의 흥망성쇠를 지켜봐왔다. 이제는 절박한 심정으로 상가를 바꿔나가야 한다는 점에 많은 점주들이 동조하고 있다고 한다. 박 대표는 현재 상가 점주들로 구성된 낙원악기상가번영회의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박 대표는 “1970~1980년대 지방에서 고속버스를 대절해 찾아올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며 “손님에게 인사하지 않고 가격을 임의로 정하는 등 날 것의 서비스에도 수요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에 고객 응대 수준을 강화하는데 크게 관심을 가져오지 않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최근 온라인 거래 규모가 확대돼 상가 명성이 약해지고 실적이 급감함에 따라 우리 스스로 바뀌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기 시작했다”며 “40대 이상 중장년층 사장들이 현재 업황에 대응하기 위해 컴퓨터 모니터 앞에 스스로 앉아 행동을 취하는 등 달라진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상점 300여곳 가운데 16곳의 사장이나 직원은 지난달 초부터 매주 화요일마다 영업 종료 후 4층에 마련된 33㎡ 남짓한 공간에서 컨설팅 교육을 받고 있다. 강사는 김상미 케이스타트업센터 대표다. 김 대표는 앞서 서울시가 추진한 청계·대림정비사업의 일환으로 해당 지역 상가에 사업 컨설팅을 실시해 성과를 거둔 인물이다.

   
▲ 28일 오후 상가 4층 공간에서 컨설팅 교육이 진행되는 모습. 사진= 이코노믹리뷰 최동훈 기자

28일 상가 4층 한 실내 공간에서 진행된 교육에는 점주, 직원 등 14명이 참석했다. 30~40대에서 많게는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업 관계자들은 이날 블로그, SNS 등 온라인 채널을 통해 실시할 수 있는 홍보 기법에 대해 배웠다. 김상미 대표는 이들에게 게시글에 대한 누리꾼의 관심과 방문을 유도하는 방법, 기피해야 할 전략, 우수홍보 사례 분석 등 바로 실천할 수 있는 이론들을 앞세워 참가자들에게 ‘족집게 과외’를 실시했다.

관계자들은 메모지나 스마트폰 메모 기능으로 교육 내용을 일부 받아적기도 했다. 본인 돈을 들여 받는 교육인 점도 있겠지만 배우는 사람들은 바짝 집중했고 표정은 하나같이 진지했다. 교육이 진행되는 동안에나 끝났을 때 질문을 하는 등 학구열을 불태웠다.

이들은 앞서 교육을 받기로 결정하고서도 본인은 매장을 운영하고 직원을 대신 교육장에 보냈었다. 이번 교육의 중요성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이에 김 대표가 한 사업장을 선정해 집중 컨설팅했다. 해당 매장에 상품관련 문의 전화가 오고 신규 매출이 발생하는 등 성과가 나타났다. 눈이 휘둥그레진 점주들은 직원을 데리고 와 함께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진지하기 그지없지만 사진 촬영 앱으로 블로그 프로필에 게재할 셀프카메라 사진을 찍는 연습을 할 때는 웃음꽃이 피기도 했다. 생각과는 다르게 나온 결과물에 민망해하며 웃기도 하고 옆에 있는 사람과 문답하며 소통했다. 낙원상가 쇠락을 몸소 경험한 뒤 무기력과 낭패감이 만연할 줄로 예상했지만 실제론 그들 사이에 새 희망의 불씨가 피어오르고 있는 모양이다.

김상미 대표는 “교육 초반엔 가만히 앉아 있어도 고객이 제 발로 찾아오던 시절을 보낸 사장님들에게 고객의 정의부터 알려줬다”며 “고객을 애인처럼 생각하고 대하라는 말에 일부는 충격받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어 “사업자들은 앞서 경기가 나쁘다, 인터넷 시장을 못 이긴다 같은 사고방식에 젖어있었다”며 “반면 지금은 표정이 밝아지고 있고 교육에 더욱 적극적으로 임하고도 있다”고 덧붙였다.

상가 점주들은 또 상가 지분을 보유한 대일건설, ㈜낙원상가와 매달 모이고 있다. 상가활성화 방안 등에 대해 토론하는 ‘낙원홀 미팅’을 진행하기 위해서다. 브레인 스토밍 방식으로 각자가 생각한 방안을 제시하고 논의한 뒤 가능한 것들은 바로 실천에 옮기고 있다. 상가 조성 이후 올해 처음 시행된 미팅에서 소기의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 상가 아래로 난 차도와 인도. 환경개선 공사가 한창 이뤄지고 있다. 사진= 이코노믹리뷰 최동훈 기자

지방자치단체의 간접적인 지원도 이뤄지고 있다. 지자체는 민간 소유인 낙원상가 자체를 대상으로 공공사업을 벌일 수는 없다. 다만 인근 공공 공간에 대한 각종 사업들이 현재 진행되고 있어 낙원상가에 ‘낙수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서울시와 종로구청은 낙원상가에 간접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도시재생사업, 도심문화사업 등 5개 부문 17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상가에서도 외부 시설이나 명소와 연계한 관광 상품을 비롯해 상가 자체를 개조하는 방안에 대해 구성원끼리 논의하고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박주일 대표는 “인사동 쌈짓길과 익선동 맛집거리, 낙원상가 등 세 구역을 투어할 수 있는 상품이나 상가에 데크를 설치하는 등 계획들을 마련하고 있다”며 “이를 실천에 옮기기엔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지만 2~3년 안에 지금과 다른 낙원상가를 목격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말한다.

낙원상가 역할을 강화하고 확대함으로써 음악산업 분야를 아우를 수 있는 솔루션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김상미 대표는 “낙원악기상가는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악기판매점포가 300개 가까이 집합했다는 특징을 갖추고 있다는 점을 브랜드로 살릴 수 있다”며 “주요 언어를 지원하며 낙원상가 제품을 온라인 구매할 수 있는 플랫폼을 개설하거나 케이팝 스타를 배출하는 양성소로서 기능을 마련하는 등 방법이 있겠다”고 말했다.

   
▲ 상가 내 한 매장에 비치된 악기들. 사진= 이코노믹리뷰 임형택 기자

업계에서는 앞으로 악기산업의 활황기가 재현할 것으로 내다본다. 내년이면 악기에 관심 많고 구매력 있는 베이비붐 세대가 시니어의 주축이 돼 ‘반려악기’를 장만하는 현상이 활발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악기 수요가 사회 곳곳에서 일정 규모 이상 꾸준히 발생하고 있는 점도 낙관론에 힘을 보태고 있는 부분이다.

이에 발 맞춰 기대감을 부풀리는 전략들이 다수 거론되고 있다. 사실 중장년층 사업자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 낙원상가에서 당장 혁신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상가 구성원들도 인지하고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변화는 시작됐고 이를 고객들이 경험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상가의 열망은 뜨겁다. 낙원상가는 지금 사람들에게 격렬히 오라 손짓하고 있다.

박주일 대표는 “온라인 최저가 공세에는 낙원상가가 언제나 무기력할 수 밖에 없다”며 “갖은 노력에도 결국 폐업수순을 밟는 사장님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럼에도 사람들을 이곳에 오게 만들어 준비한 걸 보여주는 게 지금으로선 급선무라고 생각한다”며 “최대한 지금 구성원 그대로 상가를 보존하고 가꾸어나가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덧붙였다.

최동훈 기자  |  cdhz@econovill.com  |  승인 2019.05.30  09:3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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