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전현수 기자]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한 가운데 이에 대한 국내 도입을 막기 위한 목소리가 거세다. 게임질병코드 등재 반대 측에서는 WHO가 게임질병코드를 등재하긴 했지만 아직 WHO 총회 의결 뒤 논의가 남아있고 국내 도입에도 많은 심의 단계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이를 막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30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게임질병코드 반대 측 인사들은 최근 WHO의 결정 이후 각종 긴급토론회와 반대성명, 공동대책위원회 발촉 등을 통해 WHO의 게임이용장애 질병 분류를 막을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WHO는 지난 25일(현지시각) 국제질병사인분류 11차 개정안(ICD-11)에 게임 과몰입을 질병으로 분류하기로 결정했다. ICD-11은 오는 2022년 발효돼 각 회원국에 권고된다. 우리나라는 WHO 회원국이므로 국제기구가 정해준 권고안을 받게 된다. 국내에는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라는 체계가 있다. 이는 통계법에 근거해 개정되며 국제질병분류를 기준으로 한다. 사실상 WHO가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한 이상 우리나라도 따르게 될 거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아직 남아있는 절차와 시간이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한국게임산업협회 최승우 국장은 지난 28일 오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긴급토론회에서 “WHO의 게임질병분류 등재 취소도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 한국게임산업협회 최승우 정책국장. 출처=이코노믹리뷰 전현수 기자

최승우 국장은 “WHO의 총회 이후에도 FIC라는 협의체 논의가 이어진다”면서 “이를 통해 안건의 수정이 이루어지며 실제로 과거에 안건이 삭제된 전례도 있다”고 말했다. ICD-11은 매년 10월 열리는 FIC(보건의료분야 표준화 협력센터)라는 협의체의 논의를 거쳐 개정안을 최종 결정한다. 남은 시간 동안 국내외 협단체들이 지속적으로 의견을 피력하면 WHO가 게임질병등록 안건을 수정할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최 국장은 이어 “앞서 게임질병코드등재 반대를 위해 제네바에 3번 방문하며 의견을 전달했다”면서 “특히 마지막으로 방문했을 때는 WHO 관계자들의 생각도 처음과 많이 달라진 걸 발견했다”고 밝혔다.

그는 KCD 도입 시에도 검토 단계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KCD 도입을 위해서는 타당성 검토, 기본계획 수립, 심의 및 자문위원회 구성 등 사전준비, 의견 수렴 및 현장 조사 등 개정안 작성, 최종안 확정 및 고시, 활용지원 및 사후조치 등 4단계를 거쳐 질병분류를 개정한다. 많은 검토 단계에서 KCD의 등재가 취소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이를 뒷받침할 연구 등 학술적 자료를 지속적으로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 강경석 본부장은 이 긴급토론회를 통해 “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뒷받침할 학술적, 과학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더 노력할 것”이라면서 “의료적인 해결 말고 다른 접근 방식을 고민해 교육부 등과도 적극 협업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WHO의 게임질병코드 등재 도입을 찬성하는 보건복지부에서는 “통계법 상 ICD의 권고는 받아들이는 게 맞다”는 입장이다. 통계법 제22조 (표준분류) 1번에는 “통계청장은 통계작성기관이 동일한 기준에 따라 통계를 작성할 수 있도록 국제표준분류를 기준으로 산업, 직업, 질병ㆍ사인(死因) 등에 관한 표준분류를 작성ㆍ고시하여야 한다. 이 경우 통계청장은 미리 관계 기관의 장과 협의하여야 한다”고 적혀있다. 

이에 대해 게임장애 질병코드 등재에 반대하는 공동대책준비위원회(공대위)는 자문변호사의 의견을 인용해 반박했다. 공대위 위정현 위원장은 29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공대위 발족식을 통해 KCD 도입을 강행할 시에 법적 대응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 한국게임학회 위정현 회장(공대위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출처=이코노믹리뷰 전현수 기자

위 위원장은 “공대위는 이미 법적 대응에 대한 자문변호사의 의견을 가지고 있다”면서 “자문에 따르면 국제 표준분류는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이 아닌 주요하게 참고를 해야 하는 사항일 뿐이며 만약 국제표준분류를 그대로 따라야 한다면 관계기관장과 사전에 합의해야 할 이유도 없다”고 강조했다.

한편 WHO의 게임질병코드분류가 현실화 되며 이를 두고 국내도입에 대한 정부 부처 간, 업계 간 찬반 대립이 첨예하다. 보건복지부는 이를 받아들이기 위한 협의체를 구성한 한편 문체부는 해당 협의체 가입을 거부하며 신경전이 거세다. 이 같은 주무 부처 간 갈등에 이낙연 국무총리는 “관계부처가 향후 대응을 놓고 조정되지 않은 의견을 말해 국민과 업계를 불안하게 만들면 안 된다”고 지적하며 이견 조율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