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 차 일본을 국빈 방문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의 ‘브로맨스’가 연일 화젯거리가 되고 있다. 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방일 첫날부터 세끼 식사를 함께 했고 둘째 날부터는 자신이 직접 카트를 몰며 골프 라운딩도 가졌다. 오후에는 스모경기도 함께 관람하며 우의를 다졌고 저녁에는 일본식 선술집에서 만찬도 가졌다. 생각해 보면 미국과 일본은 불과 70여 년 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미국 진주만 공습 및 미국의 일본에 대한 원자탄 투하로 지금껏 불구대천지 원수지간으로 지냈어야 할 것 같고, 특히 일본은 1985년 미국의 강압에 못 이겨 ‘플라자 합의’를 한 결과 ‘잃어버린 10년’까지 경험했으니 미국에 감정이 좋을 리도 없을 것 같다. 만약 ‘국가 대 국가’가 아닌 ‘개인 대 개인’의 관계였다면 미국과 일본은 평생토록 서로 다시는 보지 않았을 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일 양국의 지도자는 동상이몽을 할지언정 오로지 국익과 실리만을 생각하며 아주 오랜 친구처럼 웃는 낯으로 서로를 대했다. 아직 이번 정상회담에 대한 구체적인 성과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중국과 무역전쟁 중인 미국은 일본을 통해 중국을 견제할 교두보를 마련했을 것이고, 일본은 미국으로부터 미중 무역 분쟁의 반사이익을 누릴 방안을 약속받았을 것이다. 이렇듯 국가 간의 외교 관계는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고, 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적이 되는 등 철저히 실리에 따라 움직인다. 여기에도 그럴 듯한 명분이 붙겠지만, 이는 그야말로 ‘껍데기’에 불과할 뿐 ‘본질’은 아닌 것이다.

명분 보다 실리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점은 경제라고 다르지 않다. 스위스 경제경영개발대학원(IMD)가 매년 발표하는 국가경쟁력 평가 순위에서 우리나라는 올해 28위를 차지해 전년보다 한 계단 떨어졌다. 기업의 효율성은 43위에서 34위로 올랐지만 이를 제외한 인프라, 경제성과, 정부효율성은 모두 떨어졌고, 특히 경제성과는 전년도 20위에서 무려 7계단이나 하락하였다. 이미 정부도 인정했지만, 지금의 경제부진 원인은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미명 하에 이루어진 급격한 최저임금 상승과 노동시간 단축 등으로 소상공인 및 중소기업의 생태계가 완전히 무너진 데에서 비롯한 것으로 그에 따른 부작용을 재정으로 막아내는 통에 정부의 효율성 역시 크게 낮아졌다. 물론 소득주도성장을 통해 국민 모두가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당초의 명분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과연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에 대한 냉정한 분석과 검토가 필요했다. 이러한 선행 작업 없이 모두가 지지할 법한 정책을 펴다 보니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결국 ‘껍데기’만 남고 ‘본질’은 사라진, 명분만 좋고 실리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정책이 되어 버렸다.

오랜 유교적 전통에 길들여진 우리 사회는 아직도 명분을 숭상하며, 실리를 좇는 것에 대해서는 저속하다, 비굴하다, 장사꾼 같다는 말로 이를 낮추어 보는 경향이 있다. 각 개인이야 자신의 철학에 따라 명분과 실리 중 어느 것을 우선에 두더라도 무방하겠으나, 적어도 국가적 결정이라면 그것이 외교든 경제든 명분에 얽매어 실리를 놓치는 일이 없어야 한다. 명분을 잃은 국가적 결정은 국민적 호응을 얻지 못하는 것으로 그치겠지만, 실리를 잃은 국가적 결정은 곧장 국가 존립 자체와 국민들의 삶에 직격탄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