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르노와 피아트 크라이슬러의 합병 추진으로 닛산의 셈법이 복잡해졌다. 지난 3월 공동 기자회견장에서 르노의 장 도미니크 세나르 회장(왼쪽)과 닛산의 사이카와 히로토 CEO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출처= Japan Times 캡처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르노와 피아트 크라이슬러와의 합병은 닛산 자동차에게 큰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르노와의 동맹에서 영향력을 상실하거나 아니면 완전히 떨어져 나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긍정적인 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르노와 피아트의 합병이 성사된다면 닛산은 부품을 더 값싸게 공급받을 수도 있고 더 깊은 기술 자원 확보와 연구비의 절감 혜택 등, 더 넓어진 동맹의 일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동맹의 확대를 통해, 전기 자동차, 자율주행차, 차량 공유, 커넥티드 카 등 격변하는 이 산업에서 기존의 경쟁자들이나 실리콘밸리의 새로운 경쟁자들과 경쟁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사이카와 히로토 닛산 최고경영자(CEO)는 27일 양사의 합병 가능성 소식을 듣고 ‘긍정적인 소식’이라고 말하면서도, 닛산이 미쓰비시 자동차를 포함한 기존의 제휴 내에서 자신의 권리를 방어할 것이라고 말했다.

피아트 크라이슬러의 50대 50 합병 제안에 대해 아직 최종 결정을 하지 못한 르노는 28일 일본의 두 파트너(닛산과 미쓰비시)를 의식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사전에 잡힌 닛산과의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28일 일본 도쿄에 도착한 장 도미니크 세나르 르노 회장은 “최근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우리 동맹에 좋은 소식이며, 닛산과 미쓰비시가 이 소식을 최대한 활용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르노, 닛산, 미쓰비시 동맹은 지난해 11월 카를로스 곤 전 3사 동맹 회장이 전격 체포된 이후 혼란에 빠져 있다. 곤 회장의 구속으로 오래 동안 잠복해 있던 르노와 닛산 간 긴장이 고조되며 서로의 의도에 대해 의심을 품게 되었다.

양측은 여전히 동맹은 흔들림이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때때로 불리한 상태로 밀려날 것을 두려워하며 서로를 의심스럽게 바라보기도 한다. 실제로 최근 몇 년 동안 닛산 경영진은 상호 순환출자를 르노에게 유리한 것으로 보고 이를 꺼려해 왔다.

합병은 닛산에게는 매우 민감한 주제다. 앞서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곤 회장이 지난해 닛산을 르노에 합병시키려고 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그러나 독단적인 합병 계획을 우려한 닛산의 일본측 경영진들은 곤 회장의 뒷조사에 착수했고, 현재 곤 회장은 회사 자금 횡령 등을 포함한 여러 범죄 혐의로 15년의 징역에 처할 상황에 빠져 있다. 곤 회장은 여전히 자신의 부정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 지난 27일 미국의 피아트 크라이슬러가 프랑스의 르노 자동차에게 50:50 합병을 제안하며 업계의지각 변동을 예고했다.   출처= TheStreet

이 사안에 정통한소식통에 따르면, 곤 회장의 후임자인 세나르 회장도 한 달 전 닛산과의 합병에 대해 언급했으나 일본 측이 즉시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피아트 크라이슬러-르노 합병 제안에 대해 잘 아는 관계자에 따르면, 르노가 현재는 닛산과의 합병을 포기했지만 만약 닛산이 마음을 바꾸게 된다면 이번 피아트-르노 합병에 닛산까지 참여하는 더 큰 거래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닛산이 원한다면 닛산을 포함한 피아트-르노-닛산 3자 합병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 그들에게 그것을 하라, 하지 마라라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르노와의 합병에 부정적인 닛산의 일부 경영진은, 피아트 크라이슬러와의 르노의 합병이 이루어지면 닛산에 대한 르노의 경영 통합 압력이 완화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들은 르노와의 동맹으로 인한 장기적인 이익에 상당히 회의적이다.

일부 애널리스트들도 르노가 닛산과의 제휴를 중단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시장조사기관 번스타인 리서치(Bernstein Research)의 맥스 워버튼 자동차 애널리스트는 27일(현지시간) "르노 입장에서는 닛산과의 합병보다는 피아트와의 합병이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며 "우리는 르노가 결국 닛산을 떠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본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카를로스 곤 전 회장 체제에서 그들의 사업이 얼마나 깊이 얽혀 있었는가를 생각하면 해체는 쉽지 않을 것이다. 르노와 닛산은 인적 자원과 IT 부서를 공유하고 있다. 동맹을 아우르는 조직이 부품과 서비스를 조달하고 있고, 많은 닛산 차량이 르노 공장에서 조립되고 있다. 두 회사는 또 엔진부터 전기차까지 모든 것의 개발 비용을 분담하고 있다.

피아트 크라이슬러와 르노가 합병할 경우, 그동안 닛산과 르노 간 긴장의 불씨였던 상호 순환출자도 바뀔 수 있다.

르노는 현재 닛산에 43.3%의 지배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닛산은 르노에 15%의 의결권 없는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프랑스 법에 따라 특별 투표권이 부여된 르노의 주식을 15%이상 보유하고 있다.

닛산과 르노는 2015년에 주식보유 협정을 개정해 르노가 닛산에서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을 제한했는데, 이는 닛산이 프랑스 주정부로부터 간섭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

▲ 르노와 피아트 크라이슬러의 합병에 닛산까지 가세하면 연간 1560만대를 생산하는 독보적 세계 1위의 자동차 회사가 탄생하게 된다.   출처= Nikkei Asian Review 캡처

피아트 크라이슬러는 이번 제안에서 프랑스 정부의 르노 지분율을 7.5% 수준으로 낮추는 방안을 제안했다. 그렇게 되면 프랑스 정부는 특별 투표권을 상실한다. 피아트는 향후 합병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닛산의 르노 지분도 7.5%까지 줄여 닛산이 2015년에 설치해 놓은 안전 장치가 무너질 수도 있다.

현행 협정 하에서 닛산은 르노 지분을 25%까지 끌어올릴 수 있게 되어 있다. 이는 르노가 닛산의 경영에 간섭했다고 판단될 경우 일본 법에 따라 르노의 닛산 의결권을 취소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만약 피아트가 르노와의 합병 과정에서 닛산의 르노 지분을 7.5%로 제한하게 되면 그런 안전장치가 무력화될 수 있다.

르노와 피아트 크라이슬러간의 협상을 추진한 당사자들은 닛산이 협상 테이블에 참여하기를 희망한다며 "모든 참여자들의 부족한 점을 서로 보완해 주는 글로벌 프레임워크가 구축될 수 있다면, 연간 1560만 대의 자동차를 생산하는 세계 자동차 산업의 독보적 리더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는 누구도 강요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현재의 상태로 영원히 머물기 원한다면 그것도 좋겠지요. 그러나 우리는 무엇이 최선인지 실용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일본 회사에게는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