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동규 기자] ‘12시간’ 최태원 SK회장이 사회적 가치를 강조하기 위해 낸 시간이다. 최 회장은 28일 서울 광장동 그랜드 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SOVAC 2019(소셜밸류커넥트 2019)에서 오전 10시 이전부터 오후 10시 이전까지 근 12시간동안 행사장을 떠나지 않았다.

▲ 최태원 SK회장이 SOVAC 2019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SOVAC은 최 회장이 작년에 낸 사회적 가치 행사 아이디어가 구체화돼 열린 국내 최대 민간 주도 사회적 가치 행사다. 최 회장 주도로 기업, 단체, 학계가 공동 기획했다. 애초 1000명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사전 신청자가 5000명이 넘었고, 실제로 행사장을 찾은 이들도 4000명을 넘었다.

현장 분위기만 보면 어쩌면 행사라는 단어 보다는 ‘축제’라는 말이 더 어울리기도 한 자리였다. 이 축제에서 최 회장은 4000여명이 넘는 참석자들과 소통했다. 때로는 발언을 하기도 했고, 때로는 학생처럼 강연을 경청하기도 했다. 돌발 질문에 대해서도 여유롭게 자신의 소신을 피력했고, 자신이 왜 사회적 가치를 강조하게 됐는지에 대해서도 허심탄회하게 말했다.

▲ 최태원 SK회장이 SOVAC 2019 사회적기업 상품 전시부스에서 재활용 원단으로 제작된 옷을 입어보고 있다. 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12시간 축제의 장 누빈 최태원 회장

최 회장은 오전 10시부터 시작된 SOVAC 2019 공식 행사때부터 자리에 참석해 오전 세션을 모두 다 듣고, 식사도 주요 참석자들과 함께 했다. 최 회장은 오전 세션이 끝난 후 현장 기자들과 만나 사회적 가치의 중요성에 대해 말했다.

그는 “사회적 가치 창출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고, 실제로 돈을 버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사회적 가치”라면서 “행사를 열어 한꺼번에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어울릴 수 있는 네트워크의 장을 만들어 보자는 취지에서 이 행사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장애인 고용 확대 요청에 대해서도 최 회장은 “스스로 알아서 새로운 방법으로 문제를 풀어 나가는게 좋다고 생각해 먼저 고용을 하는 방법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해 장애인 고용 확대에 SK그룹이 적극 나서겠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최 회장은 이후 오후에 열린 20개의 개별 사회적 가치 관련 세션에도 참석해 강연을 경청했다. 또 행사장에 설치된 전시 부스를 둘러보면서 직접 물건을 구매하기도 했다. 이 같은 최 회장의 행보는 파격 그 자체였다. 현장에서 최 회장을 직접 본 한 참석자는 “최 회장이 이번 행사에서 사회적 가치에 대한 관심을 적극 내비치면서 직접 행사를 즐기는 모습이 신선했다”면서 “물론 최 회장 주도 행사라서 관심을 보이는 것이 당연한 것일 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파격적이고, 소탈한 모습을 보여주는 CEO의 모습을 볼 수 있어 괜찮은 거 같다”고 말했다.

▲ 최태원 SK회장이 SOVAC 2019 마무리 발언을 하고 있다. 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나는 공감능력 제로였다”...특별한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는

최 회장은 행사 말미에 열린 ‘사회성과인센티브 어워드’에서 마무리 발언을 통해 자신이 왜 사회적 가치에 관심을 갖게 됐는지 설명했다. 공감능력 제로의 냉혹한 기업인이 어떻게 사회적 가치도 생각하는 기업인으로 변하게 됐는지 말한 것이다.

그는 “약 20년 전 선대 회장님이 돌아가시고 IMF가 왔고, 제 인생의 상당 부분을 보면 살아남기 위해 전쟁을 해야만 했다”면서 “개인적으로는 10년동안 치열한 전쟁을 했다고 생각하는데 그 10년 동안 나는 착한사람과 거리가 먼, 반대로 이야기해보면 살아남기 위해서 무슨 일이라도 하는 지독한 기업인이었다”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최 회장은 “결국 살아남긴 했는데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일반 보게 돼있는, 공감능력 제로인 사람이 돼 있었고, 그렇게 하다보니 가슴속이 텅 비어버린 느낌을 받았다”면서 “그러다가 돈에 전혀 관심은 없고 사람에만 관심이 있는 저와 아주 반대인 사람을 만나게 됐는데 그 사람을 보면서 ‘내가 잘못 살아온거 같았다’고 느끼고 새로운 생각을 해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 공감능력을 그 사람을 통해 배워서 사회적 기업이 무엇인지 배우기 시작했고, 따뜻한 감성을 바탕으로 문제를 풀 수 있는 능력과 사회적 기업 문제와 성과 측정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돈 버는 것을 나쁘다고 보면 안된다

최 회장은 특정 계기를 통해 사회적 가치에 대해 관심을 표하게 됐다고 이야기했지만, 기업인으로서의 기본인 ‘수익 추구’를 버려서는 안된다고도 강조했다. 수익추구를 착한 일과 대비되는 이분법적인 사고로 보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는 “착한 일, 선한 일이 무엇인지 구분하는 이분법적인 사고는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저의 믿음은 사회적 가치를 만드는 착한 일로 돈도 잘 벌고 잘 살아야 한다는 점”이라면서 “그래야 더 많은 사람이 올 수 있는데 무조건 착한(선한)마음만 있는 사람만 모인다고 해서는 사회문제가 해결 안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최 회장은 “이런 취지에서 사회적성과인센티브(SPC)를 디자인해봤고, 착한 일을 얼마마 많이 했는지에 대해 보상을 제공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면서 “돈을 버는 것이 일의 걸림돌이라고 보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하기에 현실에 기반한 사회적 가치 추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의 SOVAC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행사 시작 전 참석자들이 적을까봐 걱정을 했던 최 회장의 근심도 12시간 후에 말끔하게 사라졌다. 그는 “1000명만 와도 성공이라고 생각했는데 사회적 가치를 중요시 생각하는 4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석했다”면서 “만약 내년에 더 많은 사람들이 행사를 찾는다면 어떻게 사람들을 수용해야 하는지 걱정이 되는데, 이 걱정은 즐거운 걱정”이라고 말했다.

사회적기업 상품 전시 부스에서 만난 한 사회적기업 대표는 “정부, 민간 주도 사회적 가치 행사는 많이 있었는데 대기업이 전면에 나서서 체계적으로 강연과 토론 등을 포함 시킨 큰 규모의 행사는 이번 SOVAC이 처음인데 앞으로도 이 행사가 지속되고, 이런 행사가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최 회장의 사회적 가치 구현 행보는 첫 발을 성공적으로 뗐다. SOVAC에서 최 회장이 경험한 12시간은 SK그룹의 사회적 가치 구현 행보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