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로 퇴장한 테리사 메이 총리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테리사 메이 총리는 눈물을 흘렸다.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 총리 사퇴가 문제가 아니라, 대영제국 총리가 눈물을 흘린다는 사실이 문제였다.

2019년 5월 23일 목요일, 사퇴 압박을 받아온 메이 총리가 결국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6월 7일 금요일, 보수당 대표직에서 물러난다고 밝힌 것이다. 집권당 대표가 총리를 맡는 전통에 따라 총리직을 수행해왔으니, 대표직 퇴진은 결국 총리직 사퇴였다.

메이 총리는 “하원이 브렉시트 합의안을 지지하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사실 그대로였다.

2016년 7월 14일 총리 취임 후 2년 10개월 동안, 메이 총리는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긴 했다. 그러나 유럽연합(EU)과의 협상안이 하원에서만 3번 부결되었고, 올해 3월의 브렉시트는 10월로 연기되었다. 메이 총리는 2차 국민투표라는 승부수를 던졌지만, 노딜 브렉시트도 불사하는 보수당 강경파의 반발로 물러나게 되었다.

메이 총리는 영국의 2번째 여성 총리라는 사실이 영광이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자신이 마지막 여성 총리는 아닐 것이라고 강조했다. 구국의 영웅 마거릿 대처를 잇는 2번째 여성 총리였으니, 메이 총리는 스스로에 대해서 그런 자부심을 가질 만 했다.

그러나 그렇게 말했다고 해서, 누구 하나 메이 총리를 초대 여성 총리 마거릿 대처와 동등하게 취급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처는 메이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총리였다. 영국을 IMF 위기에서 구한 대처는 제2차 세계대전을 승전으로 이끈 윈스턴 처칠 수준의 존경을 받는 지도자이다. 메이 총리를 굳이 다른 총리와 비교해야 한다면, 아돌프 히틀러의 음모를 간파하지 못해 물러난 네빌 체엄벌린 총리를 떠올릴 수 있다.

보수당 해체 가능성을 언급하는 보리스 존슨

차기 총리로 거론되는 정치인은 많다. 현재 보수당 대표 경선에는 보리스 존슨 전 외무장관, 마이클 고브 환경부장관, 도미니크 랍 전 브렉시트부 장관, 맷 핸콕 보건장관, 제러미 헌트 외무장관, 에스더 맥비 전 노동연금장관, 앤드리아 레드섬 전 보수당 원내대표, 로리 스튜어트 국제개발부 장관 등 8명이 출사표를 던진 상태. 영국 공영방송 BBC는 향후 많으면 15명까지 경선 출마자가 늘어날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그 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인물은 보리스 존슨 전 런던 시장. 보수당 내부에서도 호불호가 갈린다. 하지만 존슨에게는 한 가지 분명한 장점이 있다. 브렉시트에 대한 단호한 철학과 원칙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존슨은 노딜 브렉시트도 불사하는 강경파다.

5월27일 월요일, 존슨 전 런던 시장은 텔레그래프 기고문에서 “유권자들이 (유럽의회 선거에서) 보수당에 마지막 경고를 보냈다.”며 “만약에 현재의 형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우리는 해고될 것이고 국가를 운영할 수 있는 권리도 상실할 수밖에 없다.”고 강변했다. 존슨 전 시장을 반대하는 보수당 온건파들은 국민을 협박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존슨 전 시장의 주장에는 설득력이 있었다. 집권 보수당이 지난 5월 23일 목요일 실시된 유럽의회 선거에서 9.1%의 득표율로 단 3석 밖에 얻지 못했다. 브렉시트를 둘러싼 당 내 분란으로 표심을 잃어, 보수당은 5년 전 선거 때보다 의석수가 15석이나 줄었다. BBC는 보수당이 1832년 이래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존슨 전 시장은 유럽의회 선거 결과가 보수당에 주는 메시지는 명확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보수당은 지지층이 지속 이탈하는 “영구 출혈의 위기에 놓였다.”라고 진단했다. 존슨 전 시장은 지지자들의 이탈을 막는 유일한 방법은 ‘브렉시트’라고 강조했다. 존슨 전 시장은 “브렉시트가 실패하면, 보수당 해체를 각오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영제국 쇠락의 기점 EU

누가 뭐래도, 국가 경쟁력의 핵심은 단연코 지도자의 역량이다. 물론 핵무기를 위시한 국방력, 석유와 천연가스를 비롯한 천연자원, 국민의 숫자와 교육수준, 과학 기술력과 산업생산성 등도 국가 경쟁력을 거론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요 요소이다. 그러나 이 모든 가치보다 절대적으로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지도자의 철학과 능력이다.

국민 소득이 높은 나라가 선진국이 아니다. 자국 국민을 경쟁국보다 행복하고, 강하게 만들 수 있는 지도자를 보유한 나라가 진짜 선진국이다. 동서고금의 진리이다.

윈스턴 처칠이 타계했을 때, 프랑스 대통령 샤를 드골은 “영국은 더 이상 대국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제2차 세계대전은 아돌프 히틀러와 처칠과의 대결이었다. 처칠이 없었다면, 유럽에 이어 영국까지 독일에게 넘어갔을 것이다.

유럽연합(EU)는 바로 그 처칠이 제안해서 탄생한 것이다. 1946년 9월, 처칠은 취리지 대학에서 유럽합중국 건설을 주창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걸려 EU가 탄생했다.

처칠의 이상은 유럽가족공동체였지만, 속내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건설한 막대한 군수시설을 해소할 출구를 유럽에서 찾겠다는 의도였다. 어쨌든 그렇게 시작은 됐다.

그러나 전범국가 독일, 피해국가 프랑스의 화해까지 주선해서 첫 단추를 꿴 유럽공동체는 뚜껑을 열어보니, 생각 밖의 일이 벌어졌다. 주도권을 쥐고 흔들게 된 나라가 독일이었다. 유럽의 중심에 위치하고, 산업경쟁력이 뛰어났으며, 오스트리아까지 포함하면 1억 인구에 육박한데다, 구소련과 대치하는 통에 미국의 적극적 후원까지 받았다. EU는 패전국 독일에게 ‘한 입에 싸서 드시라.’고 유럽을 통째로 맡긴 것이었다.

그런데 그나마도 이런 사실도 처칠이 처음 유럽공동체를 제안한 20년 뒤 마거릿 대처 총리 때에 이르러서야 알게 되었다. IMF 구제금융 위기를 극복하고, 포클랜드 전쟁에서 영국을 구한 대처는 EU 가입을 마냥 꺼렸지만, 보수당 강경파에 밀려 임기 중에 중도 퇴진했다. 보수당 강경파는 대처를 내쫓고, 파운드화를 쓰는 조건으로 EU에 가입했다. 그때까지 그들은 EU를 통해 대영제국의 영화를 재현할 도구라 믿었다.

예측할 수 없는 영국의 미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도자에게 부여된 사명은 하나. 바로 부국강병이다. 부국강병 이상의 가치는 없다. 아무리 화려한 수식을 붙여도, 부국강병을 넘을 수는 없다.

메이 총리 퇴진 이후, 가장 유력한 차기 총리로 지목되는 존슨 전 시장. 존슨 전 시장이 강력히 추진하는 노딜 브렉시트는 과연 영국을 부국강병으로 이끌 수 있을까? 몹시 화가 난 듯 뵈는 존슨 전 시장은 브렉시트가 왜 부국강병책인지 답하지 않는다.

존슨 전 시장은 그냥 잔뜩 화가 난 표정이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존슨 전 시장이 왜 화가 났는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브렉시트를 하지 않으면 경제적 손실을 보기 때문인지, 과거 마이클 고브 환경부장관에게 배신당해 그런 것인지, 이유를 알 수 없다.

오히려 존슨 전 시장의 표정에 대한 우려는 영국 밖에서 더 높다. 존슨 전 시장이 총리가 되어 노딜 브렉시트가 이뤄지면, 세계 금융 허브가 런던에서 뉴욕으로 옮겨질 수도 있다고 관측하거나, 브렉시트 반사이익으로 파리 부동산이 상승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존슨 전 시장은 브렉시트가 최선인 양 브렉시트 추진이다.

영국은 지금 혼란의 연속이다. 그나마 차기 총리로 존슨 전 시장이 유력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영국 일간 더 타임스는 존슨 전 시장의 집권 가능성을 39%로 본다.

하지만 존슨 전 시장이 아닌 다른 누가 총리가 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그리 되면, 세계는 영국에 대해 어떤 전망도 할 수 없다. 영국은 언론의 예상과 관측을 뛰어넘는 광기의 국가로 전환될 테니 말이다. 그럼 그때는 브렉시트가 아니라, 영국이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