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쿡> 린더 카니 지음, 안진환 옮김, 다산북스 펴냄.

“스티브 잡스가 떠나도 애플은 살아남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만큼 우세한 지배력을 발휘하지는 못할 것이다.”(포브스 2011년 10월).

사실, 세상은 그렇게 비관했다. 비관론은 팀 쿡이 후계자로 등장하자 더욱 심해졌다. ‘따분한 살림꾼’ 쿡이 과연 맥·아이팟·아이폰을 창조한 ‘혁신의 아이콘’ 잡스를 대체할 수 있을지 모두가 회의적이었다. 잡스 이후 8년, 과연 애플은 ‘종말’을 맞았나. 전문가들 예상처럼 애플은 내리막길에 접어 들었을까. 20년간 애플을 취재한 저자는 이 책에서 과소평가되고 왜곡되어온 ‘조용한 천재’ 팀 쿡을 적극 해명한다.

◇잡스, 쿡을 선택하다

2011년 8월 어느 날 쿡은 잡스의 전화를 받았다. “우리 집으로 와주게” “언제 가면 될까요?” “지금 당장” 쿡은 이렇게 잡스를 승계했다. 6주 뒤 잡스가 세상을 떠났다. 쿡은 세상이 기대한 잡스의 후임이 결코 아니었다. 그는 언론에 모습을 제대로 드러내거나, 신제품 발표 무대에서 멋진 프레젠테이션을 한 적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은밀하게 후계자로 키워지고 있었다. 생전에 잡스가 병으로 자리를 비웠을 때마다 잡스를 대행한 것은 다름아닌 쿡이었다.

쿡은 ‘제 2의 잡스’가 되려고 애쓰지 않았다. 잡스도 쿡이 그만의 방식대로 애플을 이끌어주길 기대했다. 지난 2014년 9월 언론인 찰리 로즈와의 인터뷰에서 쿡은 이렇게 말했다. “잡스가 나를 선택할 때 내가 자신과 같지 않다는 것을,  ‘잡스의 복사본’이 아니라는 것을 몰랐을까요? 그가 과연 후임자를 즉흥적으로 골랐을까요? 잡스가 얼마나 오랜 시간 심사 숙고했을지 안 봐도 알 수 있잖아요. 나는 항상 그렇게 선택된 데에 대해 막중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악명 높은’ 조직문화 바꾸다

잡스 사후 핵심인재들이 대거 이탈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쿡은 잡스로부터 물려받은 경영진 대다수를 포용하고 단합시켰다. “냉혹하고, 살벌하며, 불편한” 것으로 악명높은 애플의 사내 분위기에는 ‘문화혁명’이 일어났다. 과도한 팀간 경쟁과 사내 갈등이 사라졌다. 그것을 조장하던 몇몇 간부는 정리됐다. 쿡은 팀 간에 교차협력과 조화를 요구했고, 이에 따라 조직 내에 담을 쌓고 소통을 꺼리던 ‘사일로’ 같은 조직문화는 타파됐다.

◇공급망관리로 수익 극대화하다

잡스의 애플은 제품만을 중시했다. 그 바람에 늘 자금난에 시달렸다. 특히 재고·원가·공급망 관리가 엉망이었다. 혁신적인 제품을 내놓고도 수요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해 막대한 손해를 떠안고는 했다. 1998년에 운영 담당 수석 부사장으로 영입된 쿡은 공급망 관리의 귀재였다. 그는 구매부터 제품 생산, 전달에 이르는 전 과정을 혁신했다.

쿡은 완제품 재고를 줄이려면 무엇보다 판매창구 관리를 통한 정확한 판매량 예측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즉각 애플 제품의 오프라인 판매 창구를 최소화하고 애플스토어를 통해 대량판매를 시작했다. 판매 데이터가 확보되자 ‘제조 시스템의 능률화’에 집중했다. 당시 애플의 각 부품은 세계 곳곳에서 제조되어 미국과 싱가포르 등지에서 완제품으로 조립되고 있었다. 유통비용이 막대했다. 쿡은 100여 개의 생산공장을 20여 개로 줄이면서 모든 제품 생산을 대만과 중국으로 집중시켰다. 애플의 핵심인 운영체제, 소프트웨어, 디자인, 핵심 부품 개발을 제외한 모든 것을 아웃소싱했다. 폭스콘과는 파트너십을 강화했다.

쿡의 획기적인 ‘아웃소싱 이니셔티브’로 애플 합류 7개월 만에 재고는 30일 치에서 6일 치로 급감했다. 애플의 고질병이던 재고 문제가 해결되자 애플의 영업이익률이 한때 40% 안팎까지 뛰어 올랐다. 영업이익률은 기업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수익성 지표다. 지난해 3분기의 경우 애플의 영업이익률(25.6%)은 삼성전자 스마트폰 사업(IM부문)의 영업이익률(8.9%)의 약 3배였다.

◇지구상 최고의 ‘현금부자’ 되다

지난해 8월 2일 애플의 시가총액이 1조 달러(약 1188조 5000억원)를 돌파했다. 쿡이 취임할 당시 시총(3500억달러)의 3배 이상이었다. 그것은 ‘꿈의 시총’이었다. 재임 7년새 현금보유고(2672억달러. 317조 5672억원)가 4배나 늘었다. 지구상에서는 애플보다 현금이 많은 부자는 오직 미국 정부(2710억 달러. 322조 835억원) 뿐이다.

◇’살인기계’ 애플, 모범기업 되다

잡스의 애플은 제품 이외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혹평을 받았다. 세금을 회피했고, 자선 기부는 전혀 하지 않았다. 아시아권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독성 화학물질에 중독되게 만들었다. 내부에는 항상 살벌한 경쟁적 분위기가 감돌았고, 독선적인 그를 견디지 못해 수많은 인재가 애플을 떠나갔다. 잡스의 애플은 ‘살인기계’로 불렸다.

쿡은 애플을 사회적 기업, 모범기업으로 만들며 ‘기업가치’를 높이고 있다. 그는 잡스와 달리 프라이버시나 인권, 환경보전과 같은 대중적 현안에 기꺼이 자기 의견을 피력한다. 지구의 자원을 고갈시키지 않기 위해 업계 최초로 재생 에너지와 임업, 지속가능한 제조 분야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차별 없는 교육을 실현하기 위해 흑인 및 장애인을 대상으로 코딩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그는 공개적으로 커밍아웃하기도 했다.

쿡은 한 콘퍼런스 기조연설에서 애플의 공급망에 불거진 노동자 학대 논란에 대해 경고했다. 그는 “모든 노동자가 차별 없이 경쟁력 있는 급여를 받으며 안전한 노동 환경을 보장받는 그날까지 애플은 결코 안주하지 않을 것이며, 노동자를 돌보지 않는 공급업체는 어떤 곳이든 애플과 계약 해지 수순을 밟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오늘날 우리 업계에서 애플처럼 노동자를 위해 환경 개선에 열중하는 기업은 단 한 곳도 없다”고 단언하기도 했다.

◇쿡이 설계하는 애플의 새 미래

쿡의 애플은 '새로운 10년'을 준비하고 있다. 로봇 자동차 개발도 한창이다. 애플워치부터 아이폰 X, 에어팟, 하이앤드 시장을 평정한 컴퓨터까지, 쿡의 손에서 탄생한 제품들처럼 애플의 로봇 자동차도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 지 관심이 모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