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국내 모빌리티 업계가 혼전을 거듭하고 있다. 3월 사회적 기구 합의안 발표 후 각 진영의 분열양상이 빠르게 진행되는 가운데 당장 해결해야 할 사안들은 방치되고 의미없는 공회전만 계속되고 있어 업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온디맨드 플랫폼과 혁신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국내 모빌리티 업계에 대한 비판도 나오고 있다.

공회전과 새로운 가능성의 간극에서

택시 카풀 사회적 기구는 법인택시기사의 처우개선, 카풀의 제한적 허용, 플랫폼 택시 구축을 골자로 하는 합의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27일 현재 사회적 기구의 합의안 중 제대로 추진되고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법인택시기사의 처우개선 논의는 회사와 기사의 지루한 공방전만 이어지고 있으며 카풀의 제한적 허용을 두고 풀러스 등 일반 카풀 스타트업이 명확한 반대 입장을 내세우며 충돌만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플랫폼 택시도 마찬가지다. 웨이고가 가동됐으나 그 이상의 퍼포먼스는 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에 카카오 모빌리티와 택시 4단체는 23일 성명서를 발표해 정부의 역할을 주문하고 나섰다. 이들은 “사회적 대타협 기구 합의 이후, 현재까지 정부와 여당 그 어느 누구도 이를 이행하기 위한 후속조치를 전혀 이행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면서 “정부는 플랫폼 택시 출시와 관련하여 어떠한 회의도 공식적으로 소집한 바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현재의 갈등과 불신을 화해와 상생으로 전환하고, 택시업계와 모빌리티업계가 서로 윈윈 할 수 있도록, 정부와 여당에 규제 혁신형 플랫폼 택시의 출시를 위한 여건 조성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택시 4단체 중 사회적 기구의 사각지대에 놓인 개인택시업계의 ‘거친 행보’도 눈길을 끈다. 이들은 카풀의 등장이 자기들의 생존권을 위협한다고 주장하는 한편 쏘카의 VCNC 타다가 불법운송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쏘카 사무실은 물론 더불어민주당사, 자유한국당사 앞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어 실력행사에 돌입하는 중이다.

국내 모빌리티 업계가 각 이해 당사자의 파열음으로 공회전을 거듭하고 있으나 새로운 가능성 타진을 위한 다양한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마이크로 모빌리티다.

마이크로 모빌리티는 자동차가 아닌 전동 킥보드, 전기 자전거 등 퍼스널 모빌리티 플랫폼 서비스를 의미한다. 최초 모빌리티 모델이 자동차를 기점으로 탄생했기 때문에 지금은 기존 모빌리티 플랫폼과 연계할 수 있는 방향으로 비즈니스를 꾸려가는 현상이 자주 보인다. 실제로 우버는 점핑 바이크를 인수했으며, 현재 자동차와 자전거, 스쿠터를 위시한 다양한 종합 모빌리티 플랫폼이 가동되고 있다.

카카오 모빌리티는 지난 3월 6일 카카오 T 바이크를 출시했다. 인천광역시 연수구, 경기도 성남시와 손잡고 시범 서비스에 돌입했으며 일반 자전거와 달리 페달을 밟으면 모터가 바퀴에 동력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구동되어 적은 힘으로도 이용가능하다는 설명이다. 또한 별도의 거치대가 없어 대여와 반납이 자유롭기 때문에 목적지까지 쉽게 이동할 수 있도록 고안됐다. 카카오 T 바이크는 지난해 12월 업무협약을 맺은 삼천리자전거와 알톤스포츠가 제작한 24인치와 20인치 크기의 전기자전거로 구성됐다.

쏘카는 일레클과 손을 잡았다. 전기 자전거인 일레클의 배지훈 대표는 "이동 수요가 가장 활발하고 집중돼 있는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처음으로 전기자전거 공유 서비스를 시작한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면서 “그런 만큼 인프라 관리, 플랫폼 운영, 수요공급에 따른 배치 최적화 등 쏘카의 전국 단위 차량 운영 및 관리 노하우가 일레클 서비스 안정화와 고도화에 핵심적으로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 쏘카의 일레클이 보인다. 출처=쏘카

전동 킥보드도 조금씩 외연을 확장하고 있다. 씽씽 등 다양한 플레이어가 등장하며 관련 시장도 커지고 있다. 2015년 일본 후지경제 연구소에 의하면 글로벌 퍼스널 모빌리티 시장 규모는 2015년 4000억원에서 2030년 26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한국교통연구원도 국내 퍼스널 모빌리티 시장이 2016년 6만 대 수준에서 2022년 20만 대 규모로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그 연장선에서 기존 자동차 중심의 모빌리티 플랫폼과 마이크로 모빌리티의 합종연횡 가능성에도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 씽씽이 출시되고 있다. 출처=씽씽

온디맨드 플랫폼, 그리고 혁신의 딜레마

국내 모빌리티 업계가 각 이해 관계자들의 내전으로 시끄러운 가운데, 최근 온디맨드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와 눈길을 끈다.

현재 공유경제 기업으로 스스로를 포장한 기업은 많지만, 이들은 엄연히 온디맨드 기업으로 분류된다. 한정된 자원을 공유하거나 긱 이코노미를 추구한다는 가면을 쓰고 있으나 강력한 플랫폼이 존재하는 순간 이들의 비즈니스는 온디맨드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한정된 자원을 합리적으로 소비하려는 공유경제에 플랫폼이 관여해 수수료를 받는 순간 논리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이용자 입장에서 수수료를 내고 한정된 자원을 합리적으로 소비하는 것은 일부 공유경제의 틀에 들어가지만, 문제는 공급자다.

타다의 경우 공급자는 기사다. 이들은 타다라는 강력한 플랫폼에서 철저한 '을(乙)'이며 그들의 생사여탈권은 오로지 타다 플랫폼에 달렸다. 기사들은 심지어 타다의 직원도 아니다. 별도의 용역업체를 통해 기사가 수급되는데 이는 타다는 물론 다른 모빌리티 업계도 비슷하다. 기사들은 용역업체로부터 타다에 추천되어지며, 이는 현행법 상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문제는 기사들이 플랫폼의 철저한 을로 활동하며 온디맨드가 보여주는 최악의 고용시장 우려가 나오는 지점이다. 물론 VCNC는 기사들에 대한 다양한 안정장치를 마련해 이러한 우려에서 한 발 물러났으나, 업계에서는 온디맨드 플랫폼의 노동시장 경직성 논란이 커지는 상황에서 ‘쉽게 간과할 문제’는 아니라고 보고 있다.

이 문제는 혁신에 낙오된 이들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필요로 한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최근 이재웅 쏘카 대표를 비판하며 “혁신을 따라가지 못한 사람들도 생각해야 한다”고 발언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온디맨드 플랫폼에 따른 노동경직성 논란, 나아가 혁신에 적응하지 못하는 많은 구산업 생태계 플레이어에 대한 기본적인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다만 온디맨드 플랫폼의 그림자를 두고 벌어지는 논란은 차치해도, 혁신을 따라가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과도한 안전장치는 오히려 ‘독’이 될 것이라는 주장도 만만치않다. 모빌리티 플랫폼이 추후 자율주행차 시대로 접어드는 과정에서 혁신을 따라가지 못하는 이들을 ‘박제’하는 것은 그 자체로 사회적 낭비자 더 잔인한 처사기 때문이다. 신사업이 구산업을 대체하는 것이 혁신이고 시대의 대세라면, 구산업 생태계를 무리하게 살리기 위해 막대한 사회적 투자를 단행하거나 구산업 생태계를 오랫동안 고통스러운 죽음에 방치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구산업 생태계 플레이어들의 연착륙을 돕거나, 혹은 자연스럽게 특화된 신사업 플레이어로 변신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