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대 후반에 사회에 나온 뒤로 줄곧 나를 괴롭혀 오던 것이 있었다. 지금은 그 때 보다 조금 덜하긴 하지만 여전히 계절이 바뀔 때면 몸 여기 저기서 피어나는 가려움증이다. 일명 아토피성 피부염. 군 복무 시절까지는 피부가 전혀 이상이 없었다. 그러던 것이 졸업 즈음에 이공계에서는 생각지도 않는 방송국이나 신문사로 취업을 준비하면서 속이 썩어 문드러졌던 모양이다. 친구 자취방을 아지트로 삼아 공부하던 내게 피부가 가끔 발작적으로 뒤집어지곤 했다. 그 방은 다른 대학교 근처에 있어, 공부는 그 학교 도서관을 이용했다. 물론 구내 식당도.

방이 불결해서 ‘옴’이라도 걸린 것이 아닌가 싶어, 용하다는 의원과 약국을 꽤나 다녔다. 당시엔 웬만한 의원보다도 시내 중심가에서 크게 하는 약국, 특히 피부병에 잘 듣는 약을 지어 파는 곳들이 유명했다. 하지만 그 용하다는 약국에서도 고개를 갸웃거릴 수 밖에 없었다. 시간이 절대적이었던 나로서는 병원이며 약국을 다니는 것도 시험 기간을 피해야 했다. 다행이 ‘옴’ 같이 전염성은 아니라는 진료결과에 만족해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용하다는 곳은 며칠에 한번씩 오게 하면서 이 약 저 약 두루두루 써보게 하면서 얻어걸리는 방식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환자들이 약국 판매대 앞에 줄지어 서 있는데, 옆구리나 팔뚝을 한번 슬쩍 본 것만으로 제대로 된 진단과 처방을 낼 수가 없지 않을까 싶다.

 

이것 저것 써보다가 얻어걸리는 데, 용하다고?

그런 일은 결혼 하고 나서도 한번 더 있었는데, 피부과로 유명해서 서울 곳곳에 동일한 병원 이름이 걸려 있는 대단한 곳이었다. 평일 진료 예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오후 시간을 비우고 방문을 했는데, 젊어 보이는 그 의사 역시 흘깃 옆구리 쪽의 피부를 보더니 ‘이 약부터 써 봅시다’는 애매한 얘기를 했다. 순간 실망감을 감추고 질문을 던졌다.

“그 말은 이것 저것 한번 시도해 보자는 것인가요?”

의사는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그렇다”고 했다. “그럼, 됐습니다.”는 말을 남기고 바로 나왔다. 나오면서 거기서 조제한 만병통치약 같은 연고를 받아오긴 했으나, 별반 효과는 없었고, 그 병원을 다시 찾는 일은 없었다.

메디컬 드라마가 많아지다 보니, 배우들도 어설픈 흉내만으로는 시청자의 주목을 끌기가 힘들다. 대부분이 외과 병동에서 벌어지는 일들로, 긴급함이 요구되는 의료 현장에서의 숨막히는 전개가 주종을 이룬다. 때문에 화려한 기술이 주를 이룬다. 그런 장면을 볼 때마다 그냥 의술을 보유한 사람이 아니라 의느님에 가깝다는 느낌이다.

영화나 드라마는 그런 화려함 뒤에 감춰진 내용들은 신경 쓰지 않는다. 화려한 테크니션이 주를 이루고 있는 현실에서 시간과 정성을 무기로 한 명의의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런 명의의 모습을 짧은 동안에 이미지로 구현하기도 힘들뿐더러 보는 이로 하여금 관심을 불러오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명의로 알려진 사람들의 치료를 보면 대개가 답답하게 보일 수 있다. 나타난 병증에 대한 직접적인 치료약 보다는 가급적 그 병증의 뿌리를 뽑기 위한 오장육부의 건강을 위해 서서히 병증을 잡아나가는 방법을 택한다. 또 명의의 약은 가급적 환자에게 미치는 악영향을 줄이기 위해 약의 세기가 낮은 것들 위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그 효과가 느리게 나타난다. 가난한 자의 설움이라고 해야 하겠지만, 돈과 시간에 쫓기는 사람들은 그런 명의의 더딤에 마냥 기댈 수만은 없다. 때문에 명의의 손길 보다는 싸고 세고 즉효가 나타나는 곳으로만 찾아가게 된다.

그런 곳의 약은 효과가 바로 나타난다. 내가 그랬다. 젊은 시절의 체력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피부에 좁쌀만한 붉은 것들이 나타나면 며칠은 참다가 가려움이 심해진다 싶으면 회사 근처 약국에서 약을 지어 먹었다. 불과 한 두 첩만으로도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그런데 문제는 얼마 가지 못해 비슷한 증상이 재발되곤 했다. 그렇게 십 수년을 지내는 동안 대충 포기하고 지낸다. 증상은 가볍지만 불치가 되어 버린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업무의 효과가 잘 드러나지 않는 커뮤니케이션의 특성은 이 업의 종사자들을 가장 괴롭히는 것 중의 하나이다. 협찬이며 광고, 접대비에 각종 부대비용까지 돈은 많이 쓰면서도 과연 제대로 효과는 보고 있나 의구심을 가지는 경영진들이 많다. 특히나 고만고만한 회사 이슈들이 있음에도 어떤 때는 언론이 괴롭히는 것 같지 않게 여겨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본전 생각이 간절할 것이다.

후배들 중에는 경영진이 이렇게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의구심을 가질 때라 관측되면, 친하게 지내는 언론을 동원해 일부러 문제를 들추는 기사를 쓰게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기사가 나오고 즉각적으로 대응하는 커뮤니케이터를 보면 의구심 들던 마음이 다시금 돈 값 하는 것으로 마음이 바뀐다. 그리고 또 한동안은 믿고 맡긴다.

 

리스크에 대한 악화를 미연에 막는 것이 명의다

회사에 심각한 리스크가 발생된 상황에서 각종 언론이 들쑤시고 있는 상황이라면, 몸이야 고달프지만 커뮤니케이터만큼 사내에서 중하게 대접 받는 이도 드물다. 사내에서 열리는 주요 전략회의, 기획회의, 사장단 미팅 같은 주요 자리 배석은 물론이고, 수시로 최고 경영진이 부르거나 찾아가서 독대도 할 수 있다. 게다가 언론 취재나 기사는 즉각적으로 반영되기 때문에 주요 경영진과의 미팅이나 보고는 시간 제약도 없다.

여기저기 병증이 발발된 상황에서는 피부 발진에 연고를 바르고, 열이 나면 해열제도 투여하고, 고름이 생긴 곳은 째고 짜내게 된다. 마찬가지로 이미 상황이 벌어진 뒤라면, 취재 기자에 대응을 하기 위해 기획, 재무, 영업 팀을 들쑤시고 다녀야 하고, 심각하게 접근해오는 매체에는 선심성 협찬이나 광고라도 해야 하기에 경영진도 찾아 다니게 된다. 더 심한 경우라면 검찰이나 경찰 같은 기관도 찾고 관련 기자실을 두리번거리기도 한다. 이 정도가 되면 커뮤니케이터의 몸값은 상종가로 치닫는다.

사실 이 정도로 활약할 수 있으면, 대단한 커뮤니케이터로 인정 받을 만 하기는 하다. 하지만 진짜 명의 수준의 커뮤니케이터는 되지 못한다고 말하고 싶다. 진짜 명의는 악화되기 이전에 병증을 낫게 한다. 혹시 발발한 병증이 심해진다고 하더라도 체력적으로 병증을 이겨낼 수 있게 했기에 최악의 상황으로 가지 않는다.

명의처럼 정말 제대로 된 커뮤니케이터라면 회사 내의 여러 가지를 진단하여 예상되는 이슈를 미리 짐작하고 이에 대비한 커뮤니케이션을 미리미리 진행한다. 그런 이슈에 관심을 보일만한 매체를 미리 파악해서 대응한다. 언론이 궁금증에 문제로 인식하고 파헤치기 전에 그런 의구심을 푼다. 평소에 아무 일이 없을 때 두루 두루 관계를 맺어 우호적인 분위기를 먼저 조성한다. 하지만 그 대상이 하도 많아서 대부분의 커뮤니케이터들은 이런 관계 조성을 미리부터 포기한다.

이런 관계 하에서 웬만한 이슈라면 이상한 문제로 불거지지 않도록 언론에서도 팩트 체크부터 세심하게 신경을 쓰게 된다. 설령 심각한 사안이라도 ‘아’로 써야 할 것을 괜한 오해 불러올 ‘어’로 쓰지는 않는다. 그런 관계가 없는 상황이라면, 그냥 써도 아픈 기사를 아주 예리한 각으로 가장 아프게 써 대는 경우가 많다.

제대로 된 커뮤니케이터들은 평소에 늘 바쁘다. 별 일이 없을 때에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나고, 조금이라도 더 관계를 넓이기 위해 애를 쓴다. 반면에 별 일이 없을 때에는 유유자적하게 지내고, 알아둬도 출입처 변경이 밥 먹듯 예사인지라 그냥 흘려버리는 사람도 많다. 그런 커뮤니케이터일수록 사고 터지고 바빠진다. 물론 사후약방문이라고 바쁘게 뛰어다녀봐야 별 소득도 없지만 말이다.

별 일도 없는데 쓸데 없이 밥값만 축내고 돌아 다닌다고 욕 먹는 커뮤니케이터도 많다. 병증 초기에 명의의 침 한방이 나중의 대수술을 대신하듯이, 평소에 먹는 국밥 한 그릇이 나중에 발생하게 될 기업 이미지의 치명타를 막을 수 있다.

스타트업에서 시작하면서 기업의 모든 것을 다 해봤겠지만, 언론과 여론을 상대하는 일은 기업이 어느 정도 규모 이상으로 커졌을 때에야 생기기에, 이를 경험해본 CEO는 극히 드물다. 때문에 경험 없는 분야에 인사이트를 가지라고 얘기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눈에 보이는 것에만 급급해 하지 말고, 명의 같은 커뮤니케이터가 제대로 된 것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얻어 걸리기만 바라는 신뢰하지 못하는 주치의에게 몸을 맡기는 것 만한 불행도 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