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미중 무역전쟁이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드는 가운데, 중국 ICT 기업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 수위가 강해지고 있다. 특히 중국의 화웨이는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와 직면했다는 평가다. 구글과 인텔, 퀄컴과의 논란에 이어 영국의 Arm(암), 마이크로소프트와의 거래도 막힐 위기에 봉착했다. 대만에서는 일부 통신사가 화웨이 거래를 차단하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일본 기업과의 거래도 불안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화웨이 십자포화 맞는다
24일 업계 등에 따르면 미중 무역전쟁의 혼란속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화웨이 압박이 심해지고 있다. 행정명령 등을 통해 자국 기업과 화웨이의 거래를 막고있기 때문이다. 180일의 제재 유예 방침을 내리며 속도조절에 나서고는 있으나 사실상 화웨이 말살에 가까운 가혹한 조치들이 이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시작은 구글이다. 구글이 최신 안드로이드에 대한 화웨이의 접근을 차단한다고 밝힌 가운데, 화웨이의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전략은 크게 삐걱거릴 전망이다. 자국 시장에서는 큰 문제가 없겠지만, 유럽 등 글로벌 시장에서 화웨이 스마트폰으로 안드로이드를 이용하던 고객이 대거 빠져나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애플을 잡고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2위를 달리던 화웨이의 거침없는 행보에 제동이 걸렸다는 평가다. 자체 운영체제 훙멍을 공개하며 '문제없다'는 입장이지만 업계에서는 글로벌 시장 점유율이 크게 하락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인텔과 퀄컴 등이 화웨이에 칩과 부품을 중단하는 사례도 나왔다. 이는 글로벌 반도체 시장 전체를 출렁이게 만드는 대형 이슈며, 화웨이는 TSMC와의 협력으로 위기를 벗어난다는 계획을 세웠으나 현재로는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다. 최근 중국과 대만 양안관계에 정치적 군사적 위기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대만과 미국의 관계가 가까워지는 상황에서 대만 TSMC가 화웨이와의 협력을 이어갈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화웨이에 대한 십자포화가 집중되는 가운데, 이번에는 영국의 암이 화웨이와 거래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해 대형폭풍이 예고되고 있다. 암은 반도체 설계 업체며 시장의 절대적인 점유율을 가진 최강자다. 퀄컴 스냅드래곤과 삼성전자 엑시노스 등 대부분의 스마트폰 모바일 AP들이 암의 설계에 기반에 만들어지고 있으며 화웨이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암이 화웨이와 거래를 차단하면 가늠하기 어려운 후폭풍이 몰아칠 것으로 예상된다.

암이 화웨이와 거래를 차단하면 화웨이는 스마트폰 자체를 만들 수 없다. 구글이 화웨이와 결별하는 것은 최신 안드로이드 접근이 막히는 것을 의미하며, 화웨이가 길을 찾으려면 AOSP로 선회하면 된다. 안드로이드를 커스터마이징한 AOSP를 통해 운영체제를 구축하면 당장의 위기를 어느정도 넘을 수 있다는 계산이 성립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AOSP는 암의 설계가 없으면 성립 자체가 불가능하다. 만약 암이 화웨이와 돌아서면, 화웨이는 스마트폰을 만들 수 없다. 단순히 점유율이 낮아지는 수준이 아니라, 불가능하다. 여기에 인텔과 퀄컴의 칩 및 부품 공급도 중단되기 때문에 최소한의 가능성도 사라지게 된다.

구글과 인텔, 퀄컴, 암이 화웨이 스마트폰 경쟁력의 기본을 '압살'하는 행보를 보이는 가운데 일본 기업들의 행보도 심상치 않다. 화웨이에 부품을 제공하는 파나소닉과 도시바 등이 화웨이와 거래를 중단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23일 이러한 주장이 일본 현지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 파나소닉과 도시바는 당장 "사실과 다르다"는 성명을 냈으나, 업계에서는 미국의 제재를 의식한 일본 기업들이 화웨이와 결별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대만 통신사가 화웨이 스마트폰을 판매하지 않기로 결정,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중화텔레콤과 타이완모바일 등 현지 대형 통신사들이 화웨이 스마트폰을 판매하지 않기로 했으며, 이들은 표면적으로 안드로이드를 이용하지 못하는 화웨이 스마트폰 품질 문제를 고려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의 제재를 의식한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구글과의 결별로 화웨이 스마트폰 글로벌 시장 점유율이 낮아질 것이라는 우려의 현실화라는 측면에서 눈길을 끈다.

마이크로소프트도 화웨이와 거래를 중단할 조짐이다. CNBC는 24일 마이크로소프트가 온라인 스토어에서 화웨이 노트북인 메이트 판매 중단에 돌입했다고 보도했다. 일각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가 구글처럼 운영체제 지원 중단 방침을 내릴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만약 마이크로소프트가 화웨이에 윈도 운영체제 지원을 막으면, 화웨이는 모바일에서 안드로이드, PC에서 윈도 모두 막히게 된다. 아직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지원 중단 방침이 확정되지 않았으나, 현실이 되면 화웨이는 글로벌 PC 시장서 사실상 퇴출된다.

드론부터 CCTV까지..폼페이오 "화웨이 거짓말"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은 화웨이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미국 국토안보부(DHS) 사이버안보·기간시설 안보국(CISA)은 20일(현지시간) 중국의 드론이 민감한 항공 정보를 중국에 보내고, 중국 정부가 여기에 접근한다고 발표했다. 화웨이 백도어 논리와 비슷하다.  CISA는 이를 두고 "기관 정보에 대한 잠재적 위협"이라고 경고했다. 사실상 민간 드론의 강자 DJI를 겨냥했다는 분석이다. 나아가 CCTV 업체 하이크비전에 대한 압박도 이어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화웨이와 DJI, 하이크비전에 대한 압박은 많은 노림수가 있는 다중포석이다. 우선 중국의 기술굴기를 꺾는 가장 쉬운 길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화웨이의 경우 글로벌 5G 네트워크의 강자로 군림하며 최근 유럽과 연합, 강력한 인프라 경쟁력을 구축한 바 있다. 이러한 화웨이의 예봉을 꺾고 중국의 기술굴기를 차단한다는 뜻이다.

화웨이와 DJI, 하이크비전이 미국의 안보에 위해된다는 해석도 나온다. 화웨이는 오래된 백도어 논란에 휘말렸으며 DJI는 드론의 특성상 항공정보 등에 민감하다. 하이크비전은 CCTV 업체기 때문에 감시의 성격을 가진다. 모두 중국 정부 배후설을 연결하기 제격이다.

이들 ICT 기업과 중국 정부 배후설을 연결하면 훌륭한 압박전술이 하나 더 추가된다. 올해는 천안문 사태 30주년이며 티베트 봉기 60주년, 5.4 운동 100주년, 신장 위구르 사태 10주년 등 중국 정부 입장에서 민감한 정치적 사건의 기념일이 겹쳐 있다. 중국 정부가 이를 기반으로 하는 다양한 정치적 행위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더욱 강력한 사회 통제를 시작한 가운데 미국은 이 민감한 시기를 무역전쟁 국면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잡기 때문이다.

중국의 기술굴기를 꺾고, 중국 정부와 ICT 기업의 유착을 주장하는 한편, 이를 중심으로 민감한 정치적 시기에 놓인 중국 정부를 흔들 수 있는 최고의 카드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실질적인 행보에 나서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24일 CNBC에 출연해 "화웨이는 중국 정부, 공산당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면서 "거짓말을 하는 중"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인민해방군 출신 런정페이 화웨이 창업주가 중국 정부와 연결되어 있다는 주장에 화웨이가 적극적으로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에 나서는 가운데, 폼페이오 장관은 화웨이와 중국 정부 유착을 사실상 단정하고 나선 분위기다.

화웨이 입장에서는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이 화웨이에 대한 국지적 압박이 아니라, 미중 무역전쟁 전반의 흐름속에서 화웨이를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 중국을 향해 "협상에 합의하면 화웨이 문제도 포함될 수 있다"고 말한 지점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는 미중 무역협상 재개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면서도, 미중 무역협상의 큰 틀에서 화웨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신호를 줬다는 평가다. 결국 화웨이 이슈는 미중 무역협상의 큰 틀에서 해결되어야 하며, 정치적 외교적 합의가 나와야 한다는 뜻이 된다.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이 지난해 체포될 당시부터 제기되던 '미중 무역전쟁과 화웨이 평행이론'이 입증된 셈이다. 화웨이의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다.

국내 기업은 어떨까
미중 무역전쟁의 흐름속에서 화웨이를 둘러싼 위기감이 커지는 가운데, 화웨이 스마트폰 전략이 기반부터 무너지면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인텔과 퀄컴의 화웨이에 대한 칩 공급이 중단되면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도 어려워지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리스크가 커진다.

통신업계는 어려움이 커질 전망이다. 특히 미국이 동맹국에 화웨이 장비를 쓰지 말아야 한다는 요청을 했다는 주장이 나오는 한편, 동남아시아에 화웨이 대신 한국 통신사들이 진출해달라는 권유가 나왔다는 말에 시선이 집중된다. 미국은 부인하고 있으나 국내 통신업계는 일정정도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문제다. 특히 화웨이 장비를 쓰는 LG유플러스의 고민이 크다. 그러나 LG유플러스를 포함한 국내 통신3사는 트럼프 행정부의 화웨이 압박 과정에서 정부로부터 어떠한 내용도 전달받지 못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