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승현 기자] 국제유가가 23일(현지시간) 무역전쟁 장기화 우려와 이란 긴장 완화 등에 큰 폭 하락했다.

이날 선물시장인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6월 인도분은 전거래일 대비 5.7%(3.51달러) 폭락한 배럴당 57.91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이날 낙폭은 최근 1년 새 가장 컸다.

영국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브렌트유 7월 인도분은 전날에 비해 4.5%(3.23달러) 하락한 배럴당 67.76달러를 기록했다.

시장 참가자들은 미·중 무역협상과 중동지역 정세 등을 주시했다. 특히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장기화 우려로 글로벌 경제 둔화와 원유 수요 감소 전망이 유가 폭락을 이끌었다.

미국의 화웨이 제재 이후 각국 주요 기업들이 화웨이와 거래를 중단한다고 밝히면서 우려가 증폭됐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이날 CNBC와 인터뷰에서 화웨이가 중국 정부와 협력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거짓말이라면서 세계 각국은 더 투명한 시스템을 원한다고 압박했다. 그는 중국은 미국이 '잘못된 행동'을 고쳐야만 대화가 지속할 수 있다고 하는 등 강경한 입장을 유지 중이다.

이란을 둘러싼 중동지역의 긴장이 다소 완화된 점도 유가 하락을 부추겼다. 이란과 미국의 무력충돌 우려는 그동안 유가를 끌어 올린 주요 변수다.

그러나 미국 국방장관 대행이 대이란 태세의 핵심은 전쟁 억지이지 전쟁이 아니라는 견해를 밝혀 무력충돌 우려는 다소 줄었다. 폼페이오 장관도 "이란이 협상하는 것이 최선의 이익이라고 결론을 내린다면, 우리는 전화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해 협상에 대한 기대를 자극했다.

그는 "원유시장의 공급이 잘 유지되도록 열심히 노력했다고 확신하며, 이를 지속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면서 "앞으로도 공급이 잘 유지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등 주요 경제지표도 부정적이었다. 시장 정보제공업체 마킷이 이날 발표한 미국의 5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50.6으로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9월 이후 약 1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경기 위축을 의미하는 '50' 선에도 바짝 다가섰다.

앞서 나온 5월 유로존 합성 PMI와 일본의 5월 제조업 PMI 등도 일제히 부진했다. 독일 기업의 경기 신뢰도를 나타내는 ‘Ifo 기업환경지수’도 5월에 97.9를 기록해 시장 예상에 못 미쳤다.

원유 시장 전문가들은 WTI가 배럴당 60달러를 뚫고 내려오면서 유가의 하락 흐름이 이어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수요 둔화 우려도 한층 커졌다.

존 킬두프 어게인 캐피탈 이사는 "WTI 배럴당 60달러는 매우 중요한 지지선"이라면서 "다음 지지선은 배럴당 52달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이런 움직임이 단기간에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현재 올해 원유 수요 증가율을 4%로 예상하는데, 이는 올해 남은 기간 상당히 빠른 수요의 증가를 가정한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