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동규 기자] 올해 4월은 한국 시스템 반도체 업계에 있어 기념비적인 달로 기록될 전망이다. 삼성전자의 시스템 반도체 육성전략 발표에 이어 정부도 시스템반도체 비전과 전략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민과 관이 ‘시스템 반도체 코리아’를 위해 함께 뛴다는 이야기로, 업계에서는 이번 민관 시스템 반도체 발전 전략에 대해 큰 기대를 걸고 있다. 특히 파운드리보다는 팹리스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만큼 팹리스 업체들의 기대가 크다.

팹리스 업체 A사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정부의 시스템 반도체 발전 방안 중에서 가장 와닿았던 것은 파운드리를 중소 팹리스 업체들도 활용할 수 있게끔 해줬다는 점”이라면서 “이 부분이 현재 팹리스 업체들이 가장 바라고 있던 것”이라고 말했다.

 

파운드리 개방...한국 팹리스 업계 성장의 밀알

삼성이 4월 24일 발표한 ‘반도체 비전 2030’에는 팹리스 지원 방안이 담겨있다. 주로 상생협력에 방점을 두면서 팹리스 업체들에게 삼성전자가 개발한 설계자산을 지원하고, 설계 불량 분석 툴과 같은 소프트웨어도 지원키로 한 것이다. 이어 4월 30일 정부가 발표한 ‘시스템 반도체 비전과 전략’에서도 팹리스 지원 내용이 주된 전략으로 담겨 있다.

특히 정부는 팹리스와 파운드리간 상생협력 생태계 조성을 강조했는데 국내 팹리스와 파운드리간 상생협력을 위해 파운드리를 적극 개방하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다품종 소량 생산 지원을 위한 MPW(Multi Project Wafer)지원, 외주 IP개발 추진, 팹리스 제품 설계 및 테스트 인프라 지원으로 팹리스의 제품개발 기간을 단축하게 한다는 것이다.

파운드리 개방은 특히 국내 팹리스 업계의 1순위 희망사항이었다. 팹리스 업계 관계자는 “특정 용도의 시스템 반도체를 설계해도 이를 직접 생산해 테스트해 보려면 파운드리에 위탁해 생산해야 하는데 메모리 반도체와 달리 일정 수준의 규모의 경제가 발생하지 않아 국내 대형 파운드리 업체들은 팹리스 업체들의 물량을 잘 받지 않았었다”면서 “이번 시스템 반도체 발전 전략을 보니 파운드리 개방이 나온 만큼 팹리스 업체들의 기대감이 크고, 특히 중소형 팹리스들에게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연구원도 “국내 팹리스는 대부분이 규모가 작다. 설계한 시제품을 직접 생산해 봐야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데 현재까지 한국은 파운드리 업체 수도 적었고, 대기업은 소형 팹리스의 물량을 잘 받지 않았다”면서 “이번 삼성과 정부의 파운드리 개방 전략은 국내 팹리스 업체들에게 큰 도움을 주는 핵심 전략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 이코노믹리뷰 김동규 기자

팹리스 인재확보 신경써야

전문가들은 한국 팹리스 업체들이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인재확보가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어떤 산업에서든 마찬가지로 인재확보와 산업의 성장은 비례하기 때문이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시스템 반도체에서 반도체 설계를 담당하는 인재 확보는 대기업인 삼성전자에서도 항상 고민하는 부분”이라면서 “반도체 전공 교수부터 학생까지 최소한 1만명 정도는 신규 인력이 반도체 설계 부문으로 들어와야 한국 시스템 반도체 산업이 성장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보통 전공을 보면 설계에는 전자과 출신들이 많고, 제조공정에는 물리, 화학, 신소재 전공이 많고, 장비에는 기계공학과 출신이 많은데 이를 조금 융합해 예를들어 ‘반도체 물리학’과 같은 전공을 한 인재가 많이 있어야 시스템 반도체 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양팽 연구원도 “시스템 반도체는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제품이 필요한 분야인데 이를 위해서는 설계 하나만 공부한 인재보다는 인문학 등 다른 지식을 함께 가진 인재가 더 참신한 제품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정부도 이번 시스템 반도체 전략에서 인재 확보에 신경 썼다. 정부는 민관 합동으로 2030년까지 약 1만 7000명 규모의 인력을 양성할 계획이다. 국내 주요 대학에 반도체 특화 계약학과를 신설해 3400명을 육성하고, 석·박사 융합형 전문인력을 4700명 육성할 계획이다. 여기에 더해 설계, 실제 칩 제작과 같은 실무교육 강화를 통해 8700명의 인재를 양성키로 했다.

팹리스 업계 인재 육성은 국가별로도 차이가 난다. 미국은 인텔, 퀄컴, TI와 같은 시스템 반도체 강자들이 자체적으로 인재를 잘 키워서 정부가 육성계획을 발표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대만은 TSMC를 중심으로 한 파운드리에서 강력함을 보이는데 인력확보를 위해서 대학교에 전담 교수들이 많이 충원돼 있다.

중국은 팹리스와 파운드리를 한꺼번에 키우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반도체 관련 미국 유학생 중 30%가량이 중국·대만쪽 학생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이유에서 중화권 국가 반도체 기업이 시스템 반도체 강국인 미국에서 유학을 한 학생들을 좋은 조건으로 데려올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있다.

익명을 요청한 한 팹리스 업계 관계자는 “파운드리 개방도 팹리스 업체들에게 매우 중요하지만 창의성이 있는 인재를 영입할 수 있을 만큼의 대우를 한국 팹리스 업체들이 해주고 있는지는 모르겠다”면서 “이 부분에도 정부의 지원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