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동규 기자]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은 1974년 적자에 허덕이던 한국반도체를 인수하면서 반도체 시장 진입의 신호탄을 쐈다. 이 회장은 아들인 이건희 당시 동양방송 이사에게 반도체 관련 전권을 맡기면서 반도체 사업을 진두지휘케 했다. 1983년 2월 고 이병철 회장은 동경선언을 통해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 도전하겠다”고 내외신 기자들 앞에서 천명한다. 당시 삼성전자의 이런 선언에 대해 업계는 ‘미친 도전’이라면서 삼성의 반도체 사업 진출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삼성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란 듯이 이겨내고 현재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 1위 자리에 올라 있다.

▲ 삼성전자 반도체 클린룸 생산현장. 출처=삼성전자

삼성전자는 지난 4월 24일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분야 세계 1위 달성을 위한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했다.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에 이어 시스템 반도체에서도 세계 시장을 석권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업계선 이를 제 2의 동경선언이라고 보기도 한다. 동경선언 때와는 달리 현재 삼성전자의 반도체 체력은 매우 탄탄한 수준이다.

반도체 비전 2030의 골자는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에 133조원을 투자하고, 1만 5000명을 채용하겠다는 것이었다. 또 시스템 반도체 산업 생태계 강화를 위해 국내 중소 반도체업체와의 협력방안도 발표했다. 세부 내용을 보면 연구개발(R&D) 분야에 73조원을, 생산 인프라에 60조원을 2030년까지 투자한다.

삼성전자는 팹리스는 직접 나서기 보다는 국내 업체를 지원하는 상생협력의 방안을 택했고, 파운드리에서는 자사의 경쟁력을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을 내놨다. 팹리스 업체들에게 인터페이스, 아날로그, 시큐리티 IP 등 삼성전자가 개발한 설계자산을 호혜적으로 지원하고, 삼성전자가 개발한 설계·불량 분석 툴(Tool)과 소프트웨어도 지원키로 했다.

▲ 삼성전자 화성캠퍼스 EUV라인 전경. 출처=삼성전자

삼성 시스템 반도체 뿌리 ‘시스템LSI 사업부’

삼성전자는 1997년 시스템LSI 사업부를 발족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스템 반도체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1998년 미국 오스틴 공장을 준공하고, 2002년 CMOS 이미지 센서(CIS) 대량 양산을 시작했다. 이후 2005년 파운드리 사업을 시작했고, 2010년에는 모바일 AP 엑시노스(Exynos 3) 양산을 시작했다. 이후 2013년에는 800만화소 아이소셀 모바일 CIS를 양산했고, 2015년에 업계 최초로 14나노 핀펫 공정을 적용한 엑시노스7 옥타 양산을 시작했다. 이후 2017년 5월에는 파운드리 사업만 따로 분리해 파운드리 사업부를 출범시켰다.

파운드리 사업부 분리에 대해 김양재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과거 시스템 LSI 사업부 체계에서는 외부 팹리스 고객사가 삼성전자 파운드리에 위탁 생산을 맡길 때 기술 유출을 우려했는데 사업부 분리로 팹리스 고객 확보가 용이해지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삼성전자 시스템LSI 사업부는 삼성전자 DS부문 내 유일한 전문 연구개발(R&D) 전문 사업부로 생산라인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모바일 프로세서(AP), 모뎀, 센서, DDI(디스플레이 드라이버 IC)개발을 담당하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 부서에서는 각종 디지털·아날로그 IP설계, IC설계 및 평가, 설계·검증 방법론 개발, 소프트웨어 개발 등 다양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스템 반도체 1위 가능할까

삼성전자의 2030계획에서 강조한 것은 파운드리다. 팹리스에서는 중소업체들을 지원하면서 산업 생태계를 키우는 데 방점을 뒀다. 삼성의 파운드리 역사는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5년 첫 파운드리 사업을 시작해 2009년 로직 공정 연구소를 신설하고, 2012년에는 미국 오스틴 S2라인 가동으로 파운드리 생산을 확대했다. 이후 2015년 14나노 핀펫 공정, 2016년 10나노 핀펫 공정에 이어 작년 7나노 공정까지 이르렀다.

시장조사업체 IC 인사이츠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해 기준 세계 파운드리 기업 순위에서 매출액 기준 104억달러로 대만 TSMC(342억달러)에 이은 2위에 올라 있다. TSMC가 약 50%의 점유율, 삼성이 20%정도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업계는 삼성의 시스템 반도체가 매출액 기준으로 1위에 오를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보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대량 생산으로 축적된 노하우를 반도체 위탁생산인 파운드리 분야에서도 접목해 타 경쟁사들보다 나은 입지에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삼성전자는 세계 반도체 회사 중 파운드리와 시스템 반도체 브랜드를 갖고 있는 유일한 회사”라면서 “TSMC의 경우 자사의 시스템 반도체 브랜드 없이 전량을 위탁생산만 하고 있는데 삼성의 제조 서비스와 삼성만의 시스템 반도체 브랜드 제품을 합치면 2030년에 매출 기준으로 시스템 반도체 세계 1위에 오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안 상무는 “다만 삼성전자가 보다 더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도 강자가 되기 위해서는 설계분야에서도 두각을 보여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인재 확보가 수월하게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 업계 관계자도 “2030년까지는 앞으로 10년 후이기 때문에 예단하는 것이 무척 어렵다”면서도 “삼성전자가 팹리스에도 관심을 갖고 강점인 파운드리에서 더 드라이브를 걸면 1위 달성도 불가능한 목표로 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현재 삼성전자 팹리스 사업부의 주요 생산품은 AP, CIS, DDI다. DDI에서는 세계 1위, CIS에서는 세계 2위, AP에서는 3위에 올라 있다. 삼성전자는 AP에서는 5G One-chip과 전장, IoT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수요를 바탕으로 점유율을 올릴 계획이다. 스마트폰용 CIS에서 삼성전자는 현재 일본 소니에 이어 점유율 2위에 올라 있다. 박용인 삼성전자 시스템LSI 센서사업팀장(부사장)은 5월 9일 간담회에서 “픽셀 사이즈를 작게 만들면서 간섭 현상을 최소화할 수 있는 분리막 기술에서 삼성이 높은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어 언젠가 점유율이 확 전환되는 시점이 반드시 올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박 부사장은 시스템 반도체에서 한국 업체들의 약진도 전망했다. 그는 “이미지센서와 같은 시스템반도체는 아날로그적 기술과 지혜가 있어야 더 발전할 수 있는데 이런 부분에서 한국이 특화돼 있다고 본다”면서 “메모리 반도체에서 천천히 1위에 오른 것처럼 시스템 반도체는 이제 시작이라고 보고 있지만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