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동규 기자] 시스템 반도체는 매출 기준으로 세계 반도체 시장의 50~60%를 차지하는 거대한 시장이다. 특히 메모리 반도체에 비해 수요 공급 불일치로 인한 시장 불황의 영향을 덜 받는다는 점에서 회사가 안정적인 수익성을 추구하는데도 좋은 제품이다. 국가적으로도 메모리 반도체에 비해 안정적인 수출 예측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장점을 보인다. 한마디로 반도체 시장에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시스템 반도체라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시스템 반도체 없으면 안 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와 함께 많이 회자되고, 일상 생활속에서도 등장하는 신기술들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시스템 반도체가 필수적이다. 당장 세계 최초로 한국서 상용 서비스를 시작한 5G 통신기술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스마트폰이나 관련 기기에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데이터를 처리해야 하는 일이 발생한다. 이를 위해서는 스마트폰의 두뇌격인 AP의 기능도 더 좋아져야 하고 다양해져야 한다.

문병기 한국무역협회 동향분석실 수석연구원은 “5G, 자율주행차, IoT(사물인터넷) 등 킬러 애플리케이션의 보급 확대로 대용량 메모리 반도체 수요 증가와 새로운 시스템 반도체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면서 “새로운 서비스를 구현하기 위한 시스템 반도체에 대한 수요는 시스템 반도체 후발 주자인 한국 기업의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도 “진정한 반도체산업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메모리만 잘하면 안 되고 보다 안정적인 경쟁력을 가진 시스템 반도체 역량 강화가 필요하다”면서 “메모리 반도체의 역사를 보면 미국에서 일본, 일본에서 한국으로 주도권이 넘어가는 과정을 거친 만큼 후발주자의 위협이 언제나 강한 분야라서 시스템 반도체를 강하게 만들어야 한국이 진정한 반도체 강국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시스템 반도체에는 표준화된 제품이 인텔이 독점하는 CPU정도로 보면 되고, 나머지는 수많은 전자제품에 따라 다양한 반도체가 사용되고 있다”면서 “자동차와 같은 모빌리티분야는 현재 시장이 막 열리고 있는 단계라서 이쪽에 집중하면 한국도 승산이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4월 30일 시스템 반도체 비전 선포식을 통해 시스템 반도체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스마트폰 하나에도 시스템 반도체 50개가 들어가고, 자동차에는 1000여개의 시스템 반도체가 장착되고 있는 만큼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전기, 전자 제품부터 빅데이터, IoT, 인공지능 등 4차 산업혁명의 핵심 분야들은 시스템 반도체가 있어야 실현될 수 있다”면서 “한국이 강점을 갖고 있는 자동차·전자 등 세계 상위권의 제조업 역량으로 시스템 반도체 수요를 얼마든지 창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파운드리도 그 중요성이 점점 커질 것으로 전망됐다. 다품종 소량생산 확대 등 다양한 칩에 대한 수요 증가로 시장 성장세가 전망되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는 파운드리 시장 전망을 2018년 710억달러에서 2023년 981억달러로 38.2%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반도체 주요국, 시스템 반도체 산업 선도

현재 세계 주요 반도체 국가들은 시스템 반도체 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 기존의 강자는 그 자리를 더 강화하려 하고 있고, 후발주자들은 선도국가를 추격 중이다. 미국은 세계 시스템 반도체 시장의 70% 가량을 점유하고 있는 시스템 반도체의 초강국이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세계 10대 시스템 반도체 기업 중 6개가 미국 기업이었다. 인텔(26.6%), 퀄컴(6.6%), 브로드컴(6.3%), TI(6%), 엔비디아(4.2%), AMD(2.4%)가 대표 시스템 반도체 미국 기업이다.

미국이 시스템 반도체에서 강점을 보이는 이유는 ‘선택과 집중’전략 때문이다. 인텔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메모리 반도체로 반도체 시장에 뛰어든 인텔은 1970년대 시스템 반도체 사업을 시작한 후 1980년대 초반부터 CPU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인텔은 일찌감치 메모리 반도체 보다는 시스템 반도체가 더 부가가치가 높을 것이라는 것을 파악한 후 시스템 반도체 중 범용성이 있는 CPU에 집중했다. 엔비디아도 그래픽 카드를 제조하다 인공지능(AI)시대에 시스템 반도체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인지한 후 GPU에 집중해 세계적인 시스템 반도체 회사가 됐다.

중국은 미국을 쫓는 강력한 후발주자다. 중국은 메모리 반도체와 시스템 반도체를 동시에 육성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거대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지난해 기준 팹리스 시장점유율 세계 3위에 올라섰다. 2017년 기준 세계 팹리스 매출 순위에서 중국 기업은 2곳이나 10위 안에 올랐다. IC인사이츠에 따르면 2017년 세계 팹리스 매출 순위에서 중국의 하이실리콘과 유니그룹은 각각 7위와 10위에 올랐다.

중국 하이실리콘은 화웨이 최신 스마트폰에 사용되는 모바일 AP를 설계할 정도의 높은 기술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문병기 한국무역협회 연구원은 “메모리와 파운드리 등 반도체 제조 산업은 대규모 설비투자뿐만 아니라 축적된 노하우가 필요한 반면 팹리스는 설계자의 역량이 중요한 사업인 만큼 짧은 시간 안에 성과를 내기 유리하다”면서 “우수한 인재가 풍부한 중국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고 말했다.

대만도 팹리스와 파운드리의 유기적 협력을 바탕으로 팹리스 시장 점유율에서 지난해 기준 세계 2위에 올라 있다. 대만은 파운드리에서도 세계 1위 기업인 TSMC를 보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