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동규 기자] 하나만 잘하기도 힘든 세상이다. 이것 저것 어설프게 사업을 하다간 죽도 밥도 안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이유에서 특정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박수받을만한 일이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평정한 대한민국이 이제 반도체의 또 다른 시장인 시스템 반도체에 도전한다. 시스템 반도체도 잘하기 위한 한국의 미친 도전이 시작됐다.  

 

한국은 반도체 강국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수식어 하나가 빠졌다.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강국이다.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는 세계 시장의 과반 이상을 점유하고 있지만 메모리 반도체를 제외한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는 세계 점유율 3%정도다. 메모리를 제외한 시장을 일반적으로 비(非)메모리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업계와 정부에서 현재 공식적으로 통용되는 용어는 시스템 반도체다. 반쪽짜리 반도체 강국에서 완전한 반도체 강국이 되기 위한 업계와 정부의 노력이 시작되고 있다.

 

시스템 반도체 넌 누구냐?

시스템 반도체는 데이터 연산, 제어 등 정보처리 역할을 수행하는 반도체다. 데이터를 저장하거나 기억하는 메모리 반도체(D램, 낸드)와는 다른 역할을 한다. 인체에 비유하자면 뇌에서 판단, 연산, 이미지 수집 등을 담당하는 역할을 시스템 반도체가 하는 것이다. 생산 방식과 구조에서도 차이가 난다. 메모리 반도체가 소품종 대량생산이라면 시스템 반도체는 다품종 소량생산 방식을 택하고 있다. 생산 구조에서도 메모리는 설계 업체가 양산까지 도맡는 반면, 시스템 반도체는 설계와 생산업체가 분리돼 있다.

시장 규모에서도 시스템 반도체는 메모리 반도체보다 크다. KTB투자증권의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세계 메모리 시장 규모는 1066억달러, 시스템 반도체 시장은 3457억달러로 전망됐다. 물론 작년 말부터 메모리 반도체 업황이 악화돼 시장 규모가 위축된 것도 있지만 시스템 반도체 시장이 메모리 반도체 시장보다 크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시스템 반도체 시장은 크게 설계를 담당하는 팹리스(Fabless), 위탁 생산을 하는 파운드리(Foundry), 조립과 검사를 담당하는 OSAT사업으로 구분이 된다. 팹리스의 대표 회사는 ARM, 퀄컴 등이 있고, 파운드리 대표 회사는 TSMC, 삼성전자다. OSAT대표 업체로는 ASE Group, Amkor 등이 있다. 팹리스와 파운드리 사업을 동시에 영위하는 IDM(Integrated Device Manufacturer)로는 인텔, TI, NXP등이 대표 회사다.

 

SWOT 분석으로 보는 시스템 반도체

한국의 시스템 반도체를 강점(Strength), 약점(Weakness), 기회(Opportunity), 위협(Threat)의 SWOT 분석으로 보면 왜 한국이 시스템 반도체 역량을 강화해야 하는지를 보다 더 명확하게 알 수 있다. 특히 기회 부분에서 한국이 시스템 반도체를 해야 하는 이유를 제대로 알 수 있다.

시스템 반도체의 강점으로는 메모리 반도체보다 경기변동의 영향을 덜 받는다는 점이 꼽힌다. 수요자의 요구사항에 맞춰서 주문형 제작방식을 택하기 때문에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에 따른 급격한 시황의 변화가 없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메모리 반도체는 공급 과잉이 발생할 경우 현재와 같이 D램이나 낸드 가격이 확 떨어져 반도체 업체의 수익성 악화에 직격탄이 될 수 있지만 시스템 반도체는 고객사의 요청에 따라 주문을 받은 후 만들기 때문에 안정적인 수익 추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한국 시스템 반도체의 약점으로는 10년간 제자리 걸음인 시장 점유율이 꼽힌다. 정부에 따르면 한국 시스템 반도체 글로벌 시장점유율은 2018년 기준 3.1%다. 여기서 대기업을 제외할 경우 점유율은 1%대로 뚝 떨어진다. 글로벌 상위 50위 팹리스 기업 중 한국의 기업도 단 1개다. 규모의 영세성, 특정 대기업 고객에만 의존, 인력 부족 등이 약점으로 지목된다. 여기에 더해 디스플레이 드라이버 IC(DDI), 휴대폰용 이미지센서(CIS)등 국내 전방 산업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산업 수요와 연계된 일부 품목에만 한정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차량용 반도체를 포함한 유망 분야 시스템 반도체는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기회는 한국이 왜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 집중해야 하는지 가장 명확한 이유를 보여 준다. 한국은 자동차, 전자 분야에서 현대자동차, 삼성전자, LG전자와 같은 글로벌 대기업을 보유하고 있다. 한마디로 시스템 반도체를 사용할 쟁쟁한 수요기업이 국내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5G,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차, 로봇 등의 국내외 시장이 늘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 분야에는 필연적으로 시스템 반도체가 들어가야 한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한국의 전자산업이 더 강화되려면 시스템 반도체가 강하게 서포트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면서 “이런 측면에서 한국이 시스템 반도체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위협은 시스템 반도체 경쟁국들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 꼽힌다. 한국의 현재 시스템 반도체 역량은 파운드리를 제외하고는 웬만한 국가보다 뒤쳐져 있다. 특히 팹리스에서는 미국, 대만, 유럽, 중국에도 밀리는 수준이다. 퀄컴, 브로드컴, 엔비디아와 같이 미국에 본사를 둔 팹리스 업체들이 세계 팹리스 업체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팹리스 업체 본사 소재지 기준 매출 점유율은 미국이 53%로 가장 높았다. 그 뒤를 대만(16%), 중국(11%), 유럽(2%), 일본(1%)순으로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