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기업들은 오늘날만큼 많은 돈을 빌린 적이 없다.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침체는 빚 투성이의 미국 기업들 때문에 더 심각해질 수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비정상적으로 낮은 금리에 고무된 미국 기업들은 고용, 인수, 거기에 주주들에 대한 후한 보상에까지 흥청망청 돈을 쓰면서 사상 최악의 부채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데 경제가 잘 나가고 있고 기업들이 빚을 갚기에 충분한 돈을 벌고 있기 때문에 아마도 그와 같은 부채를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다음 경기 침체는 많은 기업들이 얼마나 많은 부채를 안고 있었는지를 속속들이 드러낼 것이다. 그때 가면 그런 회사들은 일자리를 줄이고, 시설을 폐쇄하고, 자산을 매각하며 차입을 줄이기 위해 무진 애를 써야할 것이다. 그 중 어떤 기업들은 퇴출될 것이다.

헤지펀드 스카이브릿지 캐피털(SkyBridge Capital)의 트로이 가예스키 투자최고책임자(CIO)는 "기업의 채무가 높다는 것은 성장 충격이 오면 지출을 유지할 능력이 제한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것이 다음 침체가 이전의 어느 침체보다 더 심각할 것이라고 예측하는 이유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은 20일 연설에서 "경기가 둔화될 경우 레버리지가 높은 기업들은 노동자를 해고하고 투자를 줄여야 하기 때문에 경기 침체를 더 심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해고된 근로자들은 그들 자신의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어 나머지 경제 전반에 걸쳐 계단식 효과를 가져온다. 그리고 기업들의 차입을 가능하게 해 준 투자자들은 위축될 것이고, 이것은 다른 회사들의 자금조달마저 어렵게 만들 것이다.

스카이브릿지의 가예스키 CIO는 "투자자들이 느낄 고통은 상당히 클 것"이라고 지적했다.

높은 기업 부채, 모든 사람들을 ‘정지’ 상태로 만들어

사실, 미국의 기업은 오늘날만큼 많은 돈을 빌린 적이 없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신설된 재무부 금융연구원(Office of Financial Research)에 따르면 GDP 대비 비금융 기업 부채 비율은 1947년 이후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기업 부채의 증가는 대출 이자가 얼마나 낮았는지를 고려하면 충분히 이해는 된다. 연준은 금융위기 이후 성장을 촉진하기 위한 방편으로 수년 동안 금리를 제로 가까이 유지함으로써 기업의 차입을 장려해 왔다.

가예스키 CIO는 "미국 중앙은행이 미국 기업에게 공정하게 무이자로 돈을 나눠주었을 때 아마도 누구라도 그것을 이용하고 싶어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지금 연준은 기업들에게 신중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파월 의장은 "기업 부채가 기업과 투자자들에게 모든 것을 일시 멈추고 반성하라고 권고할 수준에 도달한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주식시장이 거의 사상 최고를 기록하고 있고, 1분기 미국 GDP 성장률도 3.2%로 예상보다 높게 나타나면서 많은 기업들이 아직 그러한 경고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기업 세금 감면으로 기업 이익이 사상 최고에 이르면서, 부채를 갚을 수 있는 충분한 여력을 주었다. 신용평기기관 피치(Fitch Ratings)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고금리 채권(high-yield bonds) 가운데 디폴트 비율은 1.7%에 불과했다.

▲ 무려 300억 달러에 가까운 장기 채무를 안고 있는 글로벌 식품회사 크래프트 하인즈는 올 들어 사업이 부진하면서 주가가 26%나 폭락했다.  출처= CNBC 캡처

크래프트 하인즈, 테슬라, GE

하지만 곳곳에서 균열이 나타나고 있다.

피치에 따르면 올 2분기 들어서만 이미 100억 달러(12조원) 가까운 고금리 채권이 디폴트 처리되었다. 1분기보다 채무불이행 총액이 2배로 늘자 피치는 2019년 채무불이행 전망치를 상향 조정했다.

그리고 일부 주요 기업들은 과도한 차입으로 집중 비난을 받고 있다.

무려 300억 달러(36조원)에 가까운 장기 채무를 안고 있는 글로벌 식품회사 크래프트 하인즈(Kraft Heinz)는 올 들어 사업이 부진하면서 주가가 26%나 폭락했다. 워렌 버핏도 투자한 이 거대 식품 회사는 배당금을 줄이고 몇몇 브랜드를 매각함으로써 부채 수준을 완화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혁신의 대명사 테슬라(Tesla)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도 부채다. 투자자들이 치열해지는 경쟁과 중국과의 무역 전쟁으로 인한 자금난을 우려하면서, 이 전기자동차 제조업체의 주가는 올들어서만 40% 가까이 폭락했다.

제너럴 일렉트릭(GE)도 최근 부채 문제가 대중에게 그대로 노출되었다. 미국 산업화 시대의 1등 공신이었던 이 상징적인 대기업은 급기야 배당금을 1페니로 줄이고, 일자리를 줄이고, 1세기 동안 구축해온 제국마저 해체해야 했다.

그러나 기업부채가 다음 위기의 원인이 되지는 않을 것

스카이브릿지 캐피털은 다음 경기 침체의 가장 큰 위험 요인으로 기업 부채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 회사의 매도 권고는 정크 채권과 관련이 있다.

가예스키 CIO는 "원인이 무엇이든, 가장 극심한 고통은 기업 대출에서 나올 것"이라며 "경기가 침체에 접어들면 기업 부채는 '폭발성’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그나마 좋은 소식은 서브프라임 사태와 달리, 기업 부채가 다음 붕괴의 원인이 될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다.

파월 의장도 "현재의 기업 부채가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한 주택담보대출 붐과 유사하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 부채의 증가가 아직 그렇게 걱정할 만큼 ‘통제 범위를 넘은 수준’은 아니며 ‘자산 거품’에 의해 촉발된 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또 “오늘날의 금융시스템은 기업 부문의 손실을 감당할 만큼 충분히 강력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은행들은 규제 당국의 지침에 따라 2008년의 재발을 막기 위해 충분한 자본을 축적해 왔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다행스러운 소식은 지난 1년 동안 기업 부채의 증가가 둔화되었다는 징후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역설적으로 현재의 경제 팽장이 얼마나 더 지속될 수 있는지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음을 반영한다. 투자자들은 통제되지 않기로 악명 높은 석유 산업에게까지도 부채를 줄이도록 압박하고 있다.

파월도 미국 기업들에게 더 이상 레버리지를 늘리는 행위는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부채가 다시 급증한다면, 강한 펀더멘털로 뒷받침되지 않는 한, 취약성이 현저하게 높아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