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중 양국의 긴장이 무역 영역을 넘어 대만이나 남중국해를 포함한 다른 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커졌다.    출처= 파이낸셜타임스(FT) 캡처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미국은 수년 동안 중국과의 관계에서 경제적 상호의존뿐 아니라 세계 안정축(stabilizing force)을 함께 구축해 왔다. 조지 부시 대통령 시절 재무장관을 지낸 행크 폴슨은 양국의 기업들이 양국 문제에서 ‘안전판’(ballast) 역할을 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무역분쟁을 확대하면서 이제 그런 시대는 갔다는 인식이 나타나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무역전쟁으로 중국 문제에 대한 미국 정부의 안정과 자제 동기가 줄어들면서, 양국의 긴장이 무역 영역을 넘어 대만이나 남중국해를 포함한 다른 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미국기업연구소(American Enterprise Institute)의 연구원이자 조지 부시 행정부의 관료를 지낸 잭 쿠퍼는 "이 문제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것은 이제 미국이 그런 안정판을 잃었거나,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라며 "지금의 문제는 무역 긴장과 안보 우려, 인권 우려 속에서 양국 관계가 보호되기를 원하는 지역구(유권자들)가 별로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군은 중국의 국방력 증강에 대해서도 경계심을 높이고 있다. 인권 옹호자들은 중국이 이슬람교도들을 타깃으로 감시 기술을 사용하고 내부 재교육 캠프를 운영하는 것에 대해서도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리고 한때는 중국을 중시하며 유화적인 입장을 취했던 일부 미국 기업 경영진들마저 지재산권 도용에서부터 현지 중국 기업과의 강제 제휴를 요구하는 법령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불공정한 관행에 분개하고 있다.

이런 긴장감을 조성하기 시작한 발단은, 2016년 대선 때 트럼프 대통령 후보가 중국이 공정한 플레이를 하지 않고 있으며 미국 정부가 그런 불균형을 깨뜨려야 할 때가 왔다고 주장하면서 미국인의 감정에 불을 지피면서 부터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며칠 동안 수 백억 달러의 중국 상품에 25%의 추가 관세를 위협하며 무역 문제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 노선은 무역뿐 아니라 국가안보에까지 뻗쳤다. 미국 국방부도 방위전략에서 중국이 어떠한 실질적인 군사적 이익을 얻지 못하게 하기 위한 이른 바 ‘패권 경쟁’(great power competition)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15일,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를 미국 상무부의 '경계기업 목록'에 추가해 미국 어느 기업과도 거래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상무부는 화웨이가 "미국의 국가안보나 외교정책 이익에 반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화웨이를 둘러싼 분쟁은 미국의 경제와 국가 안보 우려가 불가분의 것임을 보여주었다.

▲ 화웨이를 둘러싼 분쟁은 미국의 경제와 국가 안보 우려가 불가분의 것임을 보여주었다.   출처= Android Authority

보니 S 글레이저 국제전략연구소(CSIS) 아시아 담당 선임고문은 "우리가 국가 안보 분야에서는 경쟁하되 경제적으로는 긴밀한 유대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이 두 가지를 서로 분리된 것처럼 다루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그 동안 양국 관계의 우호적 협력을 주장했던 재계의 강력한 지지는 이제 사라졌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경기장 판도 자체가 근본적으로 변했습니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은 지난 40년 동안, 국교 정상화 이후 복잡하면서도 튼튼한 경제 협력 관계를 발전시켜 왔다. 오늘날 미국은 매년 5000억 달러 이상의 중국 상품을 수입하고 있다. 이는 양국이 1979년 외교적 돌파구를 마련한 이후 수십 년 동안 서로에게 경제적 미래를 약속하며 공급 체인을 구축해 온 결과다.

이 같은 현실은 트럼프 행정부의 세계 2위 경제 대국에 대한 접근 방식에 대해 보다 광범위한 의문을 제기한다. 그것은 중국과 경제적으로 이렇게 얽혀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과연 냉전 이후 보지 못했던 '패권 경쟁'을 전면적으로 감행할 수 있을 것인가하는 것이다.

이 논쟁은 냉전과, 급성장하는 미국과 중국간의 경쟁이 어떻게 다른 지를 잘 보여준다. 미국과 소련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수십 년간 경제적, 무역적 연관성이 거의 없었다. 냉전의 아버지라 불리는 외교관 조지 캐넌이 고안한 이른 바 ‘봉쇄 정책’은 궁극적으로 ‘소련 권력의 붕괴나 점진적 궤멸’을 추구하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중국에게 그런 봉쇄정책을 적용하는 것은 미국에 엄청난 경제적 위험을 가져올 것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민간 연구개발기관 랜드 코포레이션(Rand Corporation)의 정책 분석가인 알리 와인은 "나는 현재 미국이 취하는 입장이 중국을 제2의 소련으로 삼으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중국을 그렇게 취급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봉쇄 목표로 우리를 이끌고 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은 과거 소련보다 경제적으로 훨씬 강력하니까요."

트럼프 정부는 중국에 대한 무역과 국가안보 정책에서 장기적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엇갈린 메시지를 내놓았다. 트럼프 대통령을 포함한 일부 관리들은, 중국이 새롭고 공정한 규칙을 채택하는 한 중국과의 경제적 유대는 계속될 것이며 아마도 더욱 개선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또 다른 이들은, 미국이 중국의 불공정한 팽창주의를 억제하고 중국의 그러한 성장을 가능케 한 경제적 연결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 미국의 목표가 중국과의 상호적인 경제 관계를 더 개선시키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상호의존도를 더 낮추려 하는 것인지 미국 내에서 상반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출처= WHYY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의 자문역을 맡았던 엘리 라트너 신(新)미국안보센터(Center for a New American Security) 연구소장은 "당초 미행정부 입장에서 관세의 목적은 중국이 미국 기업에 시장을 개방하도록 압박하기 위한 지렛대를 구축해 미중 관계를 개선하자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부 다른 관리들은 중국과의 경제적 상호의존성이 미국의 큰 취약점이며 이를 해결해야 할 과제로 보고 있습니다. 과연 미국의 목표는 상호적인 경제 관계를 더 개선시키기 위한 것일까요, 아니면 상호의존도를 더 낮추려는 것일까요?”

라트너 소장은 미중 무역 관계 악화가 중국이 대만이나 남중국해에 대해 더욱 강경한 입장으로 선회하는 것을 초래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에 관한 한 오히려 미국 쪽이 더 의심스럽다고 있다고 말했다. 즉, 중국과의 무역 합의 실패를 빌미로 트럼프 행정부가 지금까지 협상타결을 위해 애써 감춰왔던 중국에 대한 더욱 가혹한 조치를 촉발할 것인가. 라트너 소장은 그러한 조치들이 결국 국가 안보 영역에까지 확대될 수 있음을 우려한다. 예를 들어 남중국해에서 보다 강력한 미 군사 개입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골드만삭스 전무 출신인 행크 폴슨은 더 이상 기업들을 ‘안전판’으로 부르지 않는다. 더 이상 미중 사이의 ‘안전판’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그는 미국 경제에 나타나는 위험성에 주목하면서 미국과 중국 사이에 '경제적 철의 장막'이 드리워질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그는 지난 2월 한 연설에서 "국가 안보에 대한 우려는 이제 사실상 우리 경제 관계의 모든 측면으로 스며들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뚝뚝한 망치를 사용하면 결국 모든 것을 망가뜨릴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해치려다 결국 자신이 다치면, 두 번째 기회를 위해 회복하기가 매우 어려운 법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