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대학병원 모 과에 주니어스태프, 이제 막 교수를 시작한 의사 A모씨는 간호사들과 전공의 사이에서 악명이 높았다. 수술할 때 소리를 지르고 기구를 던지기도 했다. 지금은 그러다 감옥갈지도 모른다. 좀 옛날 이야기다.

욱하는 성질이야 그렇다 치고, 수술실력이 모자랐다. 조직 박리가 서툴러 엉뚱한 곳을 파들어가거나, 지혈이 서툴러 허둥대거나, 떼어내야 할 질병 조직을 다 못찾아 남기고 나오기도 했다. 실상을 알 리 없는 환자의 보호자들은 교수님 감사하다며 90도 인사를 하고 선물도 했다.

A교수 밑에서 보고 배우는 전공의 신세가 참으로 처량했다. 그의 실력을 아는 병원 직원들은 가족이  A교수 담당 과의 진료가 필요할 시 남몰래 타 병원으로 보냈다.

그렇지만 A교수에게 환자들은 물밀듯 밀려왔다. 해당 수술을 담당하던 원로교수가 은퇴를 앞두고 있어 환자를 줄여나가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원로교수가 은퇴하고 나서는 환자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이 A교수에게 몰렸고, 자연스럽게 그를 해당 분야의 명의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수술 실력이 허접했던 A교수는 그 후에 어떻게 되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진짜 명의가 되었다. 전공의들도 간호사들도, 동료 교수들도 자신의 가족이 그 병에 걸리면 A교수에게 의뢰하고 부탁한다. A교수에게 진료를 받으려면 6개월, 수술을 받으려면 1~2년을 기다려야 한다. 어찌된 일일까?

불편한 진실이지만, 의사는 환자를 통해 배운다. 실력이 미천할 때 시행착오의 대상이 된 환자에게는 참 미안한 이야기지만, 어쨌든 처음에는 버벅거리다가 환자를 통해 배우며 수술능력이 향상되는 것이다. 전공의뿐만 아니라, 갓 교수가 된 의사에게도 역시 그런 학습곡선(learning curve)이 존재한다.

물론 개인차가 있다. 전공의 시절부터 타고난 금손으로 불리는 수술 잘하는 의사가 있고, 허둥대거나 무디거나 거친 손을 가진 자도 있다. 후자의 학습곡선이 훨씬 더 느린 것은 당연한데 그나마 언젠가 잘하게 된다면 다행이다. 아무리 반복해도 나아지지 않는 손도 있다. 외과의사를 하면 안되는 손이다.

필자는 돌출입수술을 거의 20년간 해오고 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큰 가르침을 주신 은사님과 선배 덕택에 필자는 처음부터 돌출입수술이라는 고난이도의 수술을 별 어려움 없이 시작했다. 그리고나서 스스로 수술방법을 개량하고 디테일을 정제했다. 미적인 감각과 수술솜씨는 타고난 재능을 무시할 수 없지만, 더 연구하고 열중했다. 나와의 싸움이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돌출입 수술을 시작한 첫 1년 정도의 수술은 지금 시각에서는 진짜 초보적인 수술이었다. 그래도 대과(大過)없이 지나갔으니 다행이라 생각한다. 물론 필자가 한 돌출입 수술은 건강한 사람에게 하는 미용 수술이니, 가령 암조직을 다 못떼고 나온다든지 심장수술 후 심장이 안 뛰는 치명적인 실패를 겪을 일은 없었다.

얼마 전 필자의 가족이 모 대학병원에서 소위 맹장수술(급성 충수돌기염 수술)을 받았다. 필자가 의사인 관계로 가족에게 어떤 수술이 필요할 때면 'VIP 신드롬'이 두려워진다. 동종 업계 종사자의 가족이니 VIP 대우를 해 너무 잘해주려다가 되레 망치는 경우가 생길까봐서다. 흔한 맹장염 정도에 너무 ‘오버’하지 않아야 오히려 잘 될 거라는 믿음으로 집 가까운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처음 보는 교수에게 복강경으로 맹장수술을 받았다. 결과는 안타까웠다. 충수돌기는 잘 제거되었는지 몰라도 복강경을 넣었던 배꼽 상처에서 고름이 나왔다. 전신마취를 다시 하고 절개배농 수술을 했음에도 한 달 이상 고름이 찼다. 필자 눈에는 눈물이 찼다. 의사인 필자만 믿고 몸을 맡긴 가족에게 너무 미안해 잠 못 이루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담당 교수는 배꼽의 한 구멍을 통해 충수돌기염 복강경 수술을 한 케이스가 아직 채 몇 십 건도되지 않은 듯 했다. 물론 수백, 수 천 건을 수술한다고 해서 고름이 차는 감염을 항상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 상처 감염이 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꼭 의사의 과실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경험이 쌓일수록 수술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해지고 조직 손상이 최소화될수록 감염기회도 적어지며, 임상적인 ‘촉’이나 ‘감’도 좋아진다. 이런 것들이 모두 실력이다.

언제쯤 수술의 고수가 될까? 초보운전이 몇 달 정도 지나면 근거없는 자신감(소위 근자감)으로 사고를 내곤 한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같은 수술을 50 케이스쯤 했을 때 소위 근자감을 경계해야 하고, 100 케이스쯤 했을 때 수술이 어렵다는 것을 다시 느끼게 되며, 500 케이스쯤 했을 때 수술이 이런 것이구나 깨닫게 된다. 1000 케이스쯤 했을 때는 기본적인 수술 이외에 환자를 위해 더 해줄 수 있는 플러스알파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패가 갈린다. 더 해 줄수 있는 것을 기를 쓰고 해주면 명작을 만들 수 있지만, 그걸 포기하면 20% 부족한 결과가 나온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안전과 시간절약 면에서는 후자가 더 유리하다. 플러스알파를 포기하고 기본수술만 하면 빨리빨리 더 쉽게 끝낼 수 있다. 그래서 집도의는 자신의 안위를 위해 안전하지만 20% 부족한 곳으로 숨기 쉽다. ‘이만하면 됐지 뭘 더해‘ 하며 수술을 끝내는 순간, 모차르트가 되지 못하고 살리에르가 된다.

플러스알파를 해결하려고 기를 쓰면 수술시간이 오히려 늘어난다. 이렇게 1500 케이스쯤 했을 때 자타가 공인하는 경지에 오를 수 있게 되고, 2000 케이스쯤 되었을 때는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돌출입수술에서 가장 중요한 알파 중 하나는, 앞턱끝의 길이와 위치를 동시에 조절해주는 일이다. 입이 들어갔는데 턱이 길어진 말 상이 되면 아름다울 리 없다. 앞 턱끝 길이를 줄여주면 이번엔 2차각이 남는다. 이것도 포기해서는 안 된다. 기를 쓰고 다듬어준다. 이런 이유로 수술시간이 다소 늘어난 지 꽤 되었다.

오랫동안 꼼꼼히 알아보고 나서야 (감사하게도)필자를 찾아오는 돌출입 환자들을 진료하면서도 본인은 어리석게도 가족의 수술을 잘 알아보지 않고 덥석 모르는 의사에게 맡겨버렸다니, 생각해보면 후회스러운 대목이다.

20년 전쯤 처음으로 돌출입수술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시기에, 겨우 이 삼십 케이스의 수술 경험을 가진 필자를 찾아온 환자들이 있었다. 그 환자들에게 수술을 겨우 30번 해봤다고 자백하지는 않았다. 30 케이스의 일천한 경험으로 배를 갈라도 사실 뱃속의 질환이 잘 해결되었는지 환자는 알 수가 없고 배의 상처는 거의 비슷하다. 성형수술은 이와 달라서 수술의 결과가 몸의 꼭대기, 얼굴에 그대로 드러난다. 살벌한 일이다. 이런 외줄타기로 여기까지 온건 축복이다.

수술을 채 백 개도 안해보고 권위자라고 홍보를 하기도 하고, 수술을 빨리 빨리 끝낼 수 있다며 명의를 자처하기도 한다. 돌출입 수술에 있어서도 그렇다. 그러나 환자의 선택을 말릴 수는 없다. 제 복이다. 의사인 필자도 가족이 맹장수술 받을 때 어리석은 선택을 했는데, 세상 누굴 탓하랴.

봄이 왔나 했는데, 이내 가을이 될 것 같아 두렵다. 결국 명의가 된 A모 교수는 이제 곧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다고 한다. 누구나 인생에 가을이 찾아온다. 영화 '파리로 가는 길'(2016) 의 원제는 'Paris can wait'이다. 파리는 늘 그렇게 기다려줄 지 모르지만, 시간은 의사도 환자도 마냥 기다려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