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레시피 대로 빵을 만든다. 업그레이드라고 해야 레시피를 기본으로 재료·모양·제조법을 일부 바꾸는 정도다. 일본의 천재 셰프 스기쿠보 아키마사는 레시피를 제쳐두고 상상부터 한다. 원하는 빵의 맛·형태·크기·식감·향기를 머릿속에서 그린다.

무엇보다 고객이 그 빵을 처음으로 한 입 베어 물었을 때의 표정과 느낌을 중요하게 고려한다. 첫 번째 한입으로 씹을 양, 혀에 가장 먼저 닿는 재료를 정하고 어떻게 먹어야 가장 균형감이 있을지, 손으로 잡기 쉬운 모양은 뭔지 등을 구체적으로 떠올린다.

이렇게 고안한 빵들은 기존 레시피로는 도저히 만들어 낼 수 없다. 이 때부터 그만의 빵 만들기가 시작된다. 설정된 맛의 목표와 빵 디자인에 맞춰 밀가루·발효법·반죽법·수분·가스 빼기·중간 발효·오븐 등을 선택한다. 연구하고, 실험하며,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고된 과정의 연속이다. 일본 도쿄 요요기공원 근처 빵집 ‘365일’에서는 이렇게 60여 종의 빵이 탄생했다.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빵들이다.

신간 <365日 생각하는 빵>(나무수 펴냄)에는 가장 인기 있는 시그니처 빵 13종이 소개돼 있다. 식빵·바게트·크루아상·단팥빵·카레빵·초코빵·크로캉·쇼콜라 등의 탄생 과정과 제조비법이 소상히 나온다. 제빵업계 뿐 아니라 모든 제조업에 적용될 수 있는 ‘디자인 싱킹’(design thinking) 모범사례이기도 하다.

◇흔히 딱딱해서 잘라버리는 크러스트까지 맛있게 먹도록 고안된 '365일' 빵집의 식빵. 사진출처=<365일 생각하는 빵>

◇가장자리도 맛있는 식빵=식빵을 먹을 때 두꺼운 가장자리(크러스트)는 대부분 잘라 버린다. 맛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크러스트가 식빵의 안쪽 부드러운 부분(크럼)을 보호하는 역할인 줄로 오해한다. 그게 마음에 걸려 궁리했다. 크러스트도 맛있게 만들 순 없을까?

일반적인 레시피에 따르면, 식빵은 1차 발효 후 가스 빼기로 글루텐을 강화한 뒤 반죽을 분할하고 절단면을 공 굴리듯 굴려 부드럽게 만든다. ‘둥글리기’ 후에는 중간 발효를 거쳐 성형하며, 최종 발효를 거듭한 후 구워낸다.

스기쿠보 아키마사가 찾은 비법은 이러했다. 가스 빼기 과정을 생략한 채 최종 발효를 한다. 가스 빼기 과정이 생략돼 빵 굽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글루텐만 만들어 지기 때문에 질기지 않은 빵이 나온다.

식빵의 가장자리 크러스트를 얇게 하려면 데크오븐보다 컨벡션 오븐이 효과적이다. 컨벡션 오븐은 오븐 내부의 열기가 대류한다. 반죽 속까지 열이 빠르게 도달하기 때문에 빵의 겉면이 두꺼워지거나 단단해지기 전에 구워낼 수가 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크러스트가 얇아지게 된다. 또한 반죽 자체에 수분이 많으면 열전도율이 높아져 안쪽까지 빨리 익는다. 이런 방식으로 식빵을 만들면 크러스트와 크럼(식빵의 안쪽 하얀 부분)이 식감에서 별 차이가 없어지게 된다.

스기쿠보 아키마사는 식빵을 완성한 뒤 크기를 정했다. 미니 사이즈(가로 5cm, 세로 5cm, 길이 14cm)다. 이 것을 총 여섯 장으로 썰어 팔기로 했다. 조사해보니, 단골손님들의 평균 가족수는 세 명이었고, 미니 사이즈여야 세 식구가 신선한 식빵 한 덩어리를 당일 소비할 수 있다고 봤다.

◇팥소의 윗부분에 공간이 있다. 이 곳에 단팥의 은은한 향을 담아주기 위해 팥소를 냉동화하고, 반죽을 새롭게 만들었다. 사진출처=<365일 생각하는 빵>

◇단팥빵의 비밀=스기쿠보 아키마사는 새로운 단팥빵을 고안했다. 반죽은 초기 단계에 버터를 모두 넣는다. 베이커스퍼센트가 22%다. 밀가루가 100이면 버터가 22 배합된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점성(끈적한 성질)을 띠는 글루텐이 약한 편이라 완성되면 질감이 부드러워 쓰윽 잘 씹힌다. 기포가 조밀해 입안에서 녹는 느낌이 좋다. 팥소는 홋카이도 도카치현에서 특별 재배된 단팥을 흑설탕으로 뭉근하게 삶아 으깨어 만든다.

기본을 설정한 뒤 이런 고민을 했다.

‘과거에는 팥소가 한 가득 들어 있어야 좋다고 여겼는데 지금도 그런가? 질감 측면에서 반죽은 버터가 많이 들어가 풍미가 꽤 진하지만 팥소는 가벼운데 균형을 잡아야 하지 않나?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와아~이런게 진짜 단팥빵이구나’하는 행복감을 주려면 팥소의 위치를 어디에 둘까? 부드러운 반죽으로 부드러운 팥소를 감싸 형태를 내는 것은 고난도의 제빵기술인데 이걸 쉽고 빠르게 할 순 없을까?’

연구 끝에 나온 비법은 다음과 같다.

'고객들은 팥소의 양보다 질을 중시한다. 팥소를 조금 줄이고 대신에 반죽과 팥소 사이에 약간의 빈 공간을 만들어 그 곳에 팥의 은은한 향을 잡아둔다. 팥소에 포도씨오일을 넣어 팥의 식감에 조금 무게를 얹는다. 단팥빵 아래쪽에 팥소가 자리잡아야 맛이 극대화된다. 팥소를 중심으로 윗부분 반죽은 좀 더 두껍게, 아래쪽은 얇아야 한다. 단팥을 조금씩 나눠 담는 틀을 만들어 빵 한 개뿐 씩 팥을 담고 냉동시킨다. 딱딱한 냉동팥소를 반죽으로 감싸 원하는 모양을 내기(성형)는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