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LG전자가 16일 로봇청소기와 세탁기, 냉장고 등에 탑재되는 AI칩(Artificial Intelligence Chip)을 개발했다고 16일 발표했다. 이는 단순한 AI칩 개발 이상의 가치가 있으며 LG전자의 생태계 전략의 투트랙 로드맵을 잘 보여준다는 평가도 나온다.

▲ LG전자의 다양한 가전에 AI칩이 적용될 예정이다. 출처=LG전자

"잘 하는 곳은 우리가 한다"
LG전자는 가전의 왕자로 군림하며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TV에서는 OLED TV 중심의 경쟁력을 차근차근 쌓아 올리는 한편 그 외 가전에서도 기본적인 체력이 강하다는 평가다. LG전자 H&A사업본부는 올해 1분기 매출액 5조 4659억원, 영업이익 7276억원을 달성했으며 매출액과 영업이익 모두 분기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매출액은 국내시장에서 건조기, 스타일러, 공기청정기 등과 같은 신가전의 판매가 늘었고 유럽, 아시아 지역의 판매 호조로 전년동기 대비 11% 늘었다.

영업이익은 프리미엄 제품의 판매 확대와 원가 절감에 힘입어 전년동기 대비 30.5% 증가했다. 개별 사업본부 영업이익이 분기 7000억원을 넘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영업이익률도 생활가전 분기 사상 최대인 13.3%다.

TV를 담당하는 HE사업본부는 매출액 4조 237억원, 영업이익 3465억원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했다. 영업이익은 중남미 등 신흥시장의 환율악화로 전년동기 대비 감소했지만, 올레드 TV 등 프리미엄 제품의 판매에 힘입어 영업이익률은 8.6%를 기록했다.

LG전자는 가전 인프라를 빠르게 구축하며 미래 비전을 타진하는 과정에서 자체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100%라고 말할 수 없지만, 최대한 내부 응집력을 다지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는 뜻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번에 발표된 AI칩이다.

AI칩은 인간의 뇌 신경망을 모방한 인공지능 프로세서인 LG뉴럴엔진을 내장해 딥러닝 알고리즘의 처리성능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것이 특징이다. 영상 및 음성, 제품기능을 통합적으로 구현하며 강력한 보안엔진을 가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나아가 광각렌즈의 왜곡을 보정하고 어두운 곳에서도 밝고 선명한 영상을 얻을 수 있는 이미지 프로세싱 기능, 보다 빠르고 정밀한 3차원 공간인식 및 지도생성(SLAM, Simultaneous Localization And Mapping)을 위한 공간인식 엔진 등 다양한 기능으로 무장했다.

▲ LG전자 AI칩에 시선이 집중된다. 출처=LG전자

AI칩의 가장 특기할만한 특징은 온디바이스(On-Device) 인공지능이다. 네트워크가 연결되지 않아도 인공지능 기능을 독자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뜻이다. 보안엔진과 함께 개인정보유출 가능성을 차단하는 강력한 기술로 평가된다. LG전자는 해당 AI칩을 청소기와 세탁기 등 일반 가전에 순차적으로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LG전자 CTO 박일평 사장은 “LG전자 AI칩은 최적화된 인공지능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며 “이는 LG전자 인공지능인 LG 씽큐의 3가지 지향점인 진화, 접점, 개방을 보다 강화하여 고객에게 더 나은 삶을 위한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LG전자 가전 경쟁력의 큰 그림을 엿볼 수 있다. LG전자는 가전 영역에 탁월한 기술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자체 생태계를 강하게 구현하는 중이다. TV의 웹OS와 같은 도발적인 운영체제 가능성 타진이 가능한 이유다. 여기에 자체 AI칩을 탑재하며 인공지능을 경계로 하는 새로운 ICT 플랫폼 전략도 구현하고 있다는 평가다. LG전자 관계자는 "가전에서는 꾸준히 자체 기술력을 탑재하고 있다"면서 "내부 인프라 구축을 통해 우리만의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전략은 추후 '생활가전의 로봇화'로 이어질 개연성이 크다. LG전자가 의욕적으로 로보스타 인수 등 로봇 경쟁력을 빠르게 키우며 가전의 미래를 로봇에 집중시켜 인공지능을 매개로 하는 탄탄한 자체 생태계를 마련할 수 있다는 뜻이다.

▲ LG V50 씽큐가 지난 10일 출시됐다. 출처=LG전자

스마트폰 전략 '파트너십'
LG전자 가전 영역이 모든 기술을 자체적으로 흡수해 내적 생태계를 키우는 자신감을 보인다면, MC사업본부 중심의 스마트폰 전략은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핵심 기술을 외부 파트너와 협력해 인프라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퀄컴과의 협력이다. LG전자의 스마트폰은 대부분 모바일 AP를 퀄컴의 스냅드래곤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오픈 생태계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오픈 생태계는 그 자체로 다양한 가능성 타진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핵심 기술력을 보유하지 않기 때문에 리스크도 크다. LG전자의 5G 스마트폰인 LG V50 씽큐가 퀄컴과의 모바일 AP 수급 문제로 출시가 한 차례 늦어진 이유가 단적인 사례다. 비즈니스의 주도권을 외부와 나누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LG전자 스마트폰 경쟁력이 자체적인 인프라를 구축하는 가전과 다르게 오픈 생태계를 추구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단순히 스마트폰 모바일 AP에서는 핵심 경쟁력을 갖추지 못해서다. LG전자는 한 때 모바일 AP를 자체적으로 구축하려고 했으나 결국 실패한 역사를 가지고 있고, 이는 퀄컴과의 협력으로 이어진 바 있다.

결론적으로 LG전자 가전은 이미 탄탄한 체력을 가진 상태에서 자체 생태계에 대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고, 스마트폰은 반대의 경우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스마트폰의 미래가 가전과 비교해 약점만 가진 것은 아니다. 5G 생태계를 중심으로 스마트폰에서 시작되는 초연결의 불꽃을 가전과 얼마든지 연결할 수 있으며, 오픈 생태계 자체도 자체 생태계와 비교해 무궁무진한 기능 확보라는 측면에서 장점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LG전자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생태계 구축에 자신있는 분야는 자체 인프라를, 그렇지 않은 부분은 기민한 외부 파트너와의 협력으로 일종의 전화위복을 노리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영역에서 오픈 생태계를 유지하면서 그 외 브랜딩 중심의 자체 생태계를 착실하게 아래에서 쌓아 올리는 분위기다. 이러한 투트랙이 접점을 찾는 순간 LG전자의 새로운 희망이 베일을 벗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