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전현수 기자] 게임 업계와 게이머, 전문가 등 이해관계자들이 세계보건기구(WHO)의 결정을 주시하고 있다. 게임에 과몰입하는 사람을 ‘환자’로 규정할지 여부를 5월 말 결정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인구 대비 게임 이용률이 높고 게임 산업 규모도 전세계 5위권이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e스포츠 종주국이기도 하다. WHO의 결정은 여파가 클 것으로 전망된다. 게임과몰입이 중독으로 지정되면 국내 효자 산업에 치명상을 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왜 이런 논의 나오나

본격적으로 게임중독 문제를 수면위로 올린 건 미국 정신의학협회(APA)가 2013년 DSM-5에 게임장애를 포함시키면서다. DSM은 정신질환 진단과 통계 매뉴얼이다. 다만 APA는 이에 대해 아직은 과학적 연구와 근거가 부족해 추가 연구가 필요한 범주로 분류했다. 

그런데 지난 2017년 12월 WHO가 ICD-11에 게임장애(Gaming Disorder)를 정신질환 범주에 포함시킬 것이라는 소식이 나왔다. ICD는 WHO가 질병과 증상 등을 분류해놓는 국제질병분류 목록이라고 보면 된다. 뒤에 붙는 숫자 11은 11차 개정판이라는 의미다. 해당 소식이 전해진 이후 실제로 지난해 6월 공개된 WHO ICD-11에는 게임과몰입을 중독으로 분류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WHO는 올해 5월 20일부터 28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서 세계보건총회를 열고 ICD-11 개정안의 안건 통과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게임 과몰입이 ICD에 질병코드로 등재되면 게임 과몰입 사용자는 국제보건기구가 정한 분류에 따라 환자로 간주되고 의료적인 진단 기준과 치료법이 제시되는 셈이다. 개정안은 2022년 1월1일부터 각국 보건당국에 권고될 예정이다. 

각 회원국은 WHO가 정한 질병 코드를 필수로 적용해야 하는 건 아니다. 말 그대로 권고 사항이다. 다만 보건복지부 박능후 장관은 지난해 10월 열린 국정감사에서 WHO가 최종 확정할 경우 이를 받아들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ICD-11 개정이 확정되면 복지부는 통계청에 우리나라 질병분류 개편을 요구할 것이고 국회에선 이를 근거로 관련 법안을 발의할 것으로 보인다. 공식적인 ‘게임중독 환자’와 그들의 치료를 위한 보건정책이 등장하는 것이다. 

산업 타격 불가피

게임 과몰입 질병 코드 등재 여파로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건 산업의 타격일 것으로 전망된다. 게임 업계는 매출에 직격탄을 맞는다.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이 내놓은 ‘게임 과몰입 정책 변화에 따른 게임산업의 경제적 효과 추정’에 따르면 게임 과몰입 질병코드화로 인한 국내 게임시장 위축 규모는 2023년 1조 7796억원, 2024년 3조 1833억원, 2025년 4조 1945억원으로 전망된다. 

게임사는 질병코드화에 따른 마케팅 비용 증가가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봤다. 서울대 산학협력단이 2016년 기준 전체 게임산업 규모의 95% 이상을 차지하는 게임 제작배급 업체 147개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절반이 넘는 업체가 마케팅 비용의 증가를 예상했다. 게임 이미지 제고를 위해 마케팅에 투자를 많이 해야 하고 그에 따른 효과도 사회의 부정적인 인식 확산에 따라 감소될 것으로 파악되기 때문이다. 

고용은 위축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게임 업계 의견을 기반으로 추정한 결과 질병코드화가 이루어지면 게임 업계 종사자 수는 2022년부터 3년간 약 15% 감소할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전망의 원인은 자연스럽다. 게임 과몰입이 질병으로 인정되면 설령 과몰입 이용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게이머를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은 악화될 수밖에 없다. 사실 지금도 청소년이 게임을 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대체로 좋지 않다. 국내에만 있는 규제인 셧다운제 등이 이를 설명한다. 

보고서는 “게임업계 당사자들의 (게임 과몰입 질병코드화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결국 게임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투자나 노력에 대한 의욕을 저하시킬 여지가 충분히 존재한다”면서 “이는 현재 우리나라 콘텐츠산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게임산업의 국제 경쟁력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에서 게임은 콘텐츠 매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 1월 발표한 ‘콘텐츠산업 2018년 결산 및 2019년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국내 전체 콘텐츠산업 매출액은 전년보다 5.2% 증가한 116조3000억원으로 나타났다. 게임은 이 중 5번째로 높은 비중인 11.2%를 차지했다. 

수출액에서는 압도적인 비중을 보인다. 2018년 콘텐츠 수출액은 전년 대비 8.8% 증가한 75억달러를 기록했는데 이 중 게임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이 넘는 56.5%로 집계됐다. 캐릭터(9.5%), 지식정보(9.3%), 방송(7.3%) 등에 비해 압도적인 수치다. K팝 열풍으로 대표되는 음악도 6.8%에 그쳤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국내 게임 산업의 올해 매출액은 전년보다 5.8% 증가한 13조7000억원, 수출액은 7.5% 늘어난 5조782억원으로 예상했다. 

 
 
 

질병코드 등재 예고 1년 반 돼가는데…그간 ‘소극적 태도’ 아쉬움

일각에서는 해당 이슈에 대한 그간의 대응이 아쉽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 산업적 여파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게임 장애가 질병코드로 등재될 경우 받게 되는 산업의 부정적 여파를 구체적인 매출액 등 수치로 결과를 낸 보고서는 위에 제시한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의 보고서 외에는 찾기가 힘들다.

다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과거에 전례가 없던 사례를 수치로 예측하는 게 쉽지 않다는 한계가 있다는 반론도 나온다. 연구에 필요한 전제조건과 고려사항이 많아 해당 보고서를 작성한 연구팀도 많은 고민을 했다는 후문이다. 

질병코드 등재와 가장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게임 업계의 대응이 다소 소극적이라 아쉽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국내 게임사가 직접 나서서 적극적으로 반대 의견을 피력하는 모습은 찾기 힘든 게 사실이다. 이 문제에 대해 업계가 할 수 있는 조치는 어느 정도 제한이 있겠지만 해당 이슈에 대해 논의하는 각종 토론회에라도 참여 해줬으면 좋겠다는 토로가 나오는 이유다. 

다만 산업계에서는 직접적인 당사자이기 때문에 오히려 조심스러운 면이 있다는 입장이다. 한국게임산업협회 최승우 국장은 “게임 업계도 고민을 많이 하고 대응책을 내고 있지만 당사자이다 보니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면서 “그런 행동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토론회 참여에 대해서는 최근 토론회는 주무 부처와 협단체 관계자들이 주로 참여하며 산업적 여파보다는 사회적 측면의 논의가 주를 이룬다는 점이 하나의 원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승우 국장은 “게임산업협회는 국내외 협단체와 공조해 각 나라의 입장을 취합하고 WHO에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국내외 기관에서 취합된 연구결과 등을 게임 업계와 협단체에 전달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