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전현수 기자] 게임을 많이 하는 건 병일까?

이 주제로 격렬한 논쟁이 펼쳐지고 있다. 일각에선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다”고 주장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질병으로 규정할 만한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고 반박한다. 이는 언뜻 보면 공평한 대립 같지만 사실 기본적으로는 전자가 유리한 논쟁이다.

비판은 쉽고 자극적이다. 수없이 많은 게임 이용자 사례 중 비정상적 사례 몇 개를 골라 문제 삼으면 되기 때문이다. 평소 총게임을 즐기던 게이머의 총기 난사 사건, PC방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 등을 언급하며 “이래도 치료가 필요 없나?”라고 묻는 식이다. 평소 게임에 관심이 없는 사람일수록 메시지는 명료하게 전달된다. 

반면 게임은 죄가 없다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좀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건전하게 게임을 즐기는 대다수 사례를 제시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힘이 떨어진다. ‘게임과몰입은 질병’이라는 문장 그대로 과몰입 증상을 보이는 사람의 행동에 대해 그것이 게임 탓은 아니라는 걸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두 의견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의학 집단과 게임 산업 관계자들이 대립한다. 의학 집단 내에서도 의견 차이가 발생하기도 한다. 일반인들은 크게 연령과 성을 기준으로 의견이 나뉘는 양상이다. 정부 부처 내에서도 두 가지 목소리가 나온다. 보건복지부와 여성가족부는 게임과몰입 질병코드화를 찬성하는 반면 문화체육관광부는 이에 맞서는 형국이다.

 

“게임과 몰입은 병”

질병 등재를 찬성하는 측은 일부 게임 과몰입 이용자가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고 있으며 이 부분에 대한 정식 치료가 개입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게임 자체를 나쁘게 보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다만 게임 과몰입으로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받는 사람이 있는 건 사실이고 그들을 위해 예방과 치료를 병행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주장은 지난해 6월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 장애(Gaming Disorder)를 질병으로 분류한 내용이 포함된 ICD-11(국제표준질병분류 11차 개정판)을 공개하며 힘을 얻고 있다. ICD-11 개정안은 최종적으로 오는 5월 말 통과 여부가 결정된다. 의료계는 WHO가 제시한 진단기준을 근거로 하면 우리나라 게임 장애 환자 비율은 전체 이용자의 2% 정도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게임 과몰입 질병코드의 국내 도입에 긍정 의사를 밝힌 바 있다. 보건복지부 박능후 장관은 지난해 10월 11일 열린 국정감사에서 “WHO가 최종적으로 게임장애를 질병화하는 것으로 확정하면 이를 바로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일부 국회의원들이 지난해 국정감사를 통해 국내 게임중독 질병코드 도입을 촉구했다. 바른미래당 최도자 의원은 지난해 10월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게임장애가 국제질병분류에 포함되며 이에 따른 국내 보건 체계의 대응이 필요하다”면서 “KCD(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국제적인 질병 분류 기준인 ICD에 변화가 감지되니 국내 기준인 KCD에도 발 빠르게 적용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 의원은 “게임 업체들은 게임중독자 치료를 위한 게임중독예방치유부담금을 부과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같은 달 진행한 여성가족부 국정감사에서는 자유한국당 윤종필 의원이 당시 이슈가 된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의 이유가 게임 중독 탓이라고 언급하며 논란이 됐다. 윤종필 의원은 “게임중독자의 뇌는 마약중독자의 뇌와 비슷할 정도로 중독성이 매우 강하다”면서 “여성가족부는 게임중독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성가족부 진선미 장관은 이에 동의하며 방안을 찾아보겠다고 답했다. 

 

“근거 없는 과잉의료”

게임장애 질병코드 등재를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명확한 근거와 사회적 합의 없이 이루어지는 과잉의료라는 점을 지적한다. 또한 게임과몰입 현상의 원인이 게임이 아닌 개인의 환경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정신의료계가 집단의 이익을 위해 질병코드 등재를 찬성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게임중독이라는 개념 정의와 판단 기준이 확립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게임중독 진단을 위해서는 이를 측정하기 위한 구체적인 지표가 있어야 하는데 부정적인 결과를 내놓는 연구들 대부분이 그 기준으로 IAT(Internet Addiction Test)라는 걸 사용한다. 그러나 IAT는 20여년 전 제시된 척도이며 그 문항 또한 적용하기에 매우 낡았다는 한계가 있다. 

아시아의 많은 연구진들이 연구를 시작할 때 게임중독이라는 개념을 제대로 정의하지 않고 게임 중독의 원인을 찾는 방식으로만 접근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중독이 애초에 존재한다고 가정하고 연구를 시작하는 건 올바른 방법이 아니라는 말이다. 한마디로 제대로 된 근거가 파악되지 않은 시기에 WHO가 성급하게 게임 과몰입을 질병으로 분류하려 한다는 설명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WHO의 게임장애 질병코드 등재를 반대하는 의지를 표명했다. 문체부 박양우 신임 장관은 지난 5월 9일 판교의 게임 업계 임원 및 관계자들과 함께한 간담회에서 “근거나 명확한 기준 없이 추정에 의한 결정은 안 된다고 판단해 WHO에 반대 의견서를 전달했다”고 말했다. "결과가 나오면 관련 부서들과 논의를 통해 후속조치도 이어가겠다"고도 덧붙였다. 

게임문화재단도 WHO에 게임장애 질병코드 등재 철회를 요청했다. 게임문화재단은 이번 조치는 명백한 과잉의료화 사례이며 질병 범위를 무리하게 확장시켜 WHO가 인류의 복지가 아닌 의료산업을 위해 봉사하게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내용의 서한을 전달했다. 

게임 과몰입이 공식적인 질병으로 분류되면 정신 의학계는 자연스럽게 혜택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일각에선 그들이 이런 목적을 위해 질병코드 등재를 주장한다는 의혹도 제기한다. 연세대 윤태진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는 지난 5월 3일 문화연대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게임 과몰입이 질병으로 인정받으면) 병원은 최소한 몇 년 동안 비보험 치료로 경제적 인센티브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청소년의 게임 과몰입 문제는 게임 자체 문제가 아닌 부모의 과잉 간섭과 학업 스트레스 등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는 연구 결과도 반대 측 의견에 힘을 실어준다. 건국대학교 정의준 교수 연구팀은 지난 5년간 초·중·고등학생 청소년 2000명을 대상으로 추적 조사를 진행한 결과 이 같은 결과를 얻었다.

연구 결과의 요지는 대부분의 게임 과몰입 청소년은 시간이 지나면 별다른 조치 없이도 정상으로 돌아왔으며 게임 과몰입을 유도하는 요인은 게임 자체보다는 부모의 과잉 기대, 학업 스트레스, 자기통제 부족 등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정의준 교수는 “WHO는 충분한 연구결과가 없는 상태에서 게임 중독 질병 등재를 주장하고 있다”면서 “그들의 논리는 연구를 통한 충분한 근거 기반이 아니고 질병 등재에 대한 경고를 위한 환기 용도로 사용할 뿐이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