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재해는 줄일 수 있다. 우리나라 산업재해율은 OECD 최 하위권이다. 정부와 기업의 지속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난 10년간 재해율은 크게 개선되지 않고 산재공화국의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이코노믹리뷰는 오퍼레이션 컨설팅 회사인 가온파트너스와 함께 산업현장의 실질적인 재해감소를 위한 근본적 대책을 살펴보고, 안전사고 감소를 위한 새로운 관점과 대책을 제시하기 위해 산업안전 시리즈를 기획했다.

지난 해 정부는 “국민생명 지키기 3대 프로젝트”의 추진을 선언하며 자살, 교통사고, 산업재해에 의한 사망자를 2022년까지 절반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OECD 평균 수준에 조차 크게 못 미치는 부끄러운 지표를 범 정부차원에서 개선하겠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특히 미숙련 청년 노동자들의 안타까운 사고소식이 끊이지 않는 산업재해 분야에 대해 사고 다발 고위험 분야 집중 관리, 현장관리 시스템 체계화 등의 내용이 담긴 ‘산업재해 사망사고 감소대책’을 의결했다. 올해 초 개편된 산업안전보건법에는 모기업의 법적 책임 범위를 협력사의 안전관리 영역까지 확대하고 ‘위험의 외주화’를 막기 위한 내용을 담았다. 기업의 안전책임이 강조되면서 국내 주요 기업들도 안전경영을 최우선 과제로 인식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 전략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ICT 기술을 활용해 안전신문고 등 스마트 안전경영체계를 만들고, SK이노베이션은 ‘한솥밥 문화’를 바탕으로 협력사화 함께 안전경영을 실천하고 있다. 지난해 서울 서대문구 아현지사 화재사고를 겪은 KT도 미흡한 기존 안전관리 체계를 변화시키기 위해 통신 관련 안전유지, 화재예방 등을 도맡는 안전 전담부서를 신설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문제는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 해 현장에서 사고로 숨진 노동자는 1년 전보다 7명이 늘어난 971명이었다. 지난 1년간 정부와 기업이 산재감소를 위해 온 역량을 집중했지만 안전사고는 줄어들지 않았다. 그나마 안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고 크게 주의를 끌지 못하던 산업재해에 대해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졌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정부가 직접 팔을 걷어붙이며 나서고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우리나라 최고의 기업들이 첨단 관리기법을 동원해 대처하는데도 산업현장의 재해가 반복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가장 큰 원인은 현재 우리나라 산업현장의 재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기존과 다른 관점의 위험인식과 예방활동이 필요하다는 점에 있다. 산업재해의 발생 요인은 크게 설비적 요인, 기술적 요인, 인적 요인 3가지로 분류된다. 설비적 요인은 설비 자체의 안전상 결함으로 인한 사고이며 기술적 요인은 위험요인을 관리하고 대처하는 안전관리기술의 취약성에 기인한 사고를 의미한다. 인적 요인은 작업자 자신과 안전관리 책임을 갖는 관리자 등 직무수행에 참여하는 사람의 실수에 기인하는 사고다. 이 중 설비적, 기술적 요인은 산업재해를 과학적으로 해석하고 재해발생 모델, 재해예방 기법이 체계화 되기 시작한 1930년대 이래 지속적인 개선이 이루어져 왔다. 최근 국제원자력기구(IAEA) 보고서에 따르면 산재의 80%가 인적 요인에 의해 발생하며, 이 중 70%는 사고를 당한 노동자가 아니라 안전관리 책임을 갖는 조직의 책임으로 분석하고 있다.

인적 요인을 단순히 개인의 부주의 또는 안전의식의 결여로 치부한다면 산업현장에서 발생하는 80%의 재해는 대책도, 예방도 속수무책이다. 사람은 직무를 수행하면서 약 1000번에 한번 꼴로 실수를 하며 일반적인 직무의 경우 하루 약 2만번의 행위가 이루어진다. 관리자건 작업자건 하루 2번은 실수를 하게 된다.

매년 3일 이상의 요양이 필요한 중대재해가 13~15건씩 발생하던 중공업 업체에서 안전컨설팅을 실시했었다. 인적 요인에 의한 사고 분석을 포함한 종합적인 안전진단 후, 작업자 개인과 안전관리 책임자들의 역할을 재정립하고 실천위주의 안전활동 계획을 수립했다. 계획된 프로그램에 따라 체계적 활동을 전개하면서 약 2년간 사고발생이 ‘0’으로 유지되고 3년차에 들어 1건이 발생하는 이변이 연출됐다. 마술을 부린 것도 아니고 획기적인 첨단 기법이 새롭게 적용 된 것도 아니다. 안전사고의 발생 원인을 인적 요인 측면까지 면밀히 분석하고, 안전활동의 의미와 방법을 이해하면서 실천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했을 뿐이다.

산업재해는 조직 구성원과 그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무너뜨린다. 기업 또한 사회적 신뢰의 상실과 경제적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사안에 따라서는 기업의 지속 가능성 조차 보장 받기 어렵다. 조직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안전한 일터에서 가족을 위해 일하고, 아침 출근 때의 건강한 모습으로 가정에 돌아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누구의 책임 문제가 아니다. 노사 구분 없이 함께 노력해야 달성 할 수 있는 일이다. 우리 사회가 서로를 신뢰하고 함께 할 수 있는 한 단계 높은 ‘격’으로 올라서는 일이다. 안전한 일터를 위한 새로운 관점의 안전. 변화의 시작은 바로 ‘지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