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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TV에서 프로 골퍼들이 시합을 하는 것을 매주 볼 수 있다. 시청자들은 어렵지 않게 매주 선수들을 만나 볼 수 있지만 사실 선수들은 스케줄을 소화해 내느라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1주일에 한 번 시합 스케줄이 짜여 있고 화요일, 수요일은 무조건 프로암 (프로와 아마가 함께하는 라운딩)에 나가도록 돼 있다.

그리고 목요일부터 금요일은 예선 라운딩이 있고 토요일과 일요일은 일명 무빙데이로 불린다. 보통 스케줄은 일 년에 걸쳐 미리 계획돼 있다. 내가 처음 미국LPGA에 입회했을 때는 일 년에 한 달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주 시합이 있었지만 경기가 침체되면서 시합이 줄어들었다.

미국 진출 첫 해 때는 무조건 비행기로 여행을 했다. 3개월 단위로 비행기 표를 예약하면 경비를 절약할 수 있었기 때문에 호텔이나 렌터카도 미리 예약을 해 놓고 준비를 철저히 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 다음 해부터 자동차 여행으로 바뀌었다. 꽤 많은 선수들이 차로 시합장소를 다니는 것을 보고 ‘ 차로 가면 힘이 들 텐데 왜 고생을 사서 할까?’ 라고 생각했었지만 1년 후 나는 그 이유를 정확히 알게 됐다.

이번 주에는 캘리포니아에서 시합이 있고 다음 주에는 뉴욕에서 시합이 있다면 당연히 비행기를 타야 한다. 왜냐하면 차로 간다면 이틀은 숨차게 운전을 해야 하기 때문인데 선수가 예선을 떨어지면 토요일, 일요일에 스케줄이 없어지게 된다. 그러면 다음 시합장소로 미리 이동해서 그 곳의 골프 코스 파악에 나서고 그린의 스피드나 시합준비를 미리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에 컷 오프가 되면 비행기 표를 바꿔 미리 떠난다. 하지만 예약한 날짜가 아닌 다른 날로 표를 바꾸려면 우선 페널티를 내거나 다른 표를 구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좌석이 확보가 된 것이 아니라 기다려야 하는 지루함도 있지만 기다려도 자리가 안 날 때도 많다. 그래서 선수들은 차로 여행하는 것을 선호하고 실제로 차로 출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성적이 좋아 라운딩을 일요일까지 하더라도 일요일 몇 시에 티업을 할 지 모르기 때문에 (성적에 따라 오전과 오후에 걸쳐 시간이 달라진다) 마음이 급하기도 하지만 가끔 비가 오든가 안개가 끼어 라운딩이 지연이라도 된다면 보통 다음날까지 시합이 이어진다. 문제는 비행기 좌석인데 자리가 없는 경우 다른 곳으로 돌고 돌아 목적지에 도착하게 된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캘리포니아에서 뉴욕까지 비행기로 갈 때 한 번에 간다면 5~6시간 정도 걸리지만 다른 곳을 경유해 간다면 기다리는 시간과 가끔 있는 지연시간까지 포함해 10~12시간이 걸린다. 이렇게 도착하고 나면 녹초가 되는데 선수들의 피를 말리는 것은 이 기다림의 녹초가 아니다. 선수는 비행기를 갈아탔는데 골프채가 다른 비행기로 갔다든지 두세 번 갈아타는 동안 미처 싣지 못한 경우도 종종 발생된다.

클럽이 선수보다 늦게 공항에 올 때는 그야말로 초조함에 피가 마른다. 나 역시 이런 경험이 있다. 풀시드가 없어서 월요예선(먼데이 켈러화인)을 거쳐야 했는데 월요일 아침 9시 티타임을 받은 나는 일요일 저녁 간신히 마지막 비행기에 올라 목적지에 도착한 후 짐을 찾기 위해 배기지 클램(baggage claim: 짐 나오는 곳) 에 서 있었다. 그런데 골프가방이 보이지 않았다.

가끔 오버사이즈는 다른 곳으로 나오기 때문에 관계자에게 큰 짐은 어디로 나오는지 물어보니 가방이 도착 하지 않았다는 황당한 대답이 나왔다. 다음 비행기로 도착할 테니 호텔에 가서 기다리거나 다음날 아침에 나와 보라는 말이 이어졌다. 내일 첫 비행기 도착시간은 아침 9시라는데 그럼 무엇으로 시합을 한단 말인가? 일단 호텔로 와 걱정과 뜬 눈으로 밤을 새고 다음날 아침 골프장으로 향했다.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미리 도착해 연습에 몰두 중인 선수 중 내가 쓰는 클럽과 가장 비슷한 클럽을 찾아내 빌려 쓰거나 시합 때마다 선수들을 후원하는 업체들에게 클럽을 세팅해 나가는 방법이 있었다.

소문은 빠른지라 연습장에서 연습을 하던 선수들은 자기클럽을 들고 와 본인의 클럽을 휘두를 수 있도록 배려를 해줬고, 짧은 시간에 대출 클럽을 세팅하고 가방까지 빌렸지만 결정적으로 퍼터가 문제였다. 아무리 같은 회사고 모델이 같아도 퍼터만큼은 선수 손에 길들여져 특별한 터치로 교감을 한다. 그래서 절대로 똑 같은 것. 아니 비슷한 것 자체가 없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다른 선수의 클럽을 빌려 1번티 박스로 향하는 선수의 심정. 이런 경험을 한 번도 안 한 선수는 별로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선수들은 몸이 편한 비행기 여행보다는 자동차여행을 선호한다.

갑자기 오래 전 학창시절 나의 절친이었던 염성미 프로가 생각이 난다. 국가대표 출신이고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훌륭한 선수다. 고등학교 때 벌어진 주니어 시합 때 그녀는 밤새 연습하고 퍼터를 집에 두고 오는 황당한 실수를 했다. 당황해 하던 친구를 위해 사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아는 분의 퍼터를 빌려 시합에 출전했다. 다행히 좋은 성적(내 기억으로는 이븐파를 기록) 으로 라운딩을 마치고 그 퍼터를 시합 내내 빌려 쓴 기억이 문득 생각난다.

그러나 그녀와 달리 나는 엉뚱한 샷의 연발과 퍼팅의 난조로 예선에서 떨어졌다. 쓰라린 마음으로 라커에 들어와 보니 방금 도착한 골프 가방이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황망한 마음으로 골프가방을 보고 있노라니 선수들이 위로 차 자기의 경험을 하나 둘씩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P선수는 아예 가방이 도착하지 않아 분실 처리가 됐다는데 그런 경우 항공사에서 배상을 해 준다. 그러나 그 선수는 자신이 지닌 고가의 기능성 화장품이 모두 날아갔다고 속상해 했다.

어찌됐건 그런 사건들이 있은 후 나름 현명함이 생기는 자기만의 노하우로 이런 선택들을 하게 된다. 첫째, 비행기보다는 차를 이용한다. 둘째, 비행기를 탈 때 꼭 이런 말을 한다. “다 필요 없으니 골프가방만 도착하게 해 주세요.” (팁을 두둑이 주면 절대 분실이 없다. 어떨 때는 가장 먼저 짐이 나오기도 한다). 셋째, 선수는 비행기로 움직이고 캐디는 차로 이동하면서 캐디가 차에 클럽을 싣고 온다. 넷째, 페덱스로 부친다.

이러한 해프닝들은 일반인들이 볼 수 없는 선수들만의 고충이다. 그러나 점점 노하우를 알게 되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다보니 클럽이 도착하지 않아도 느긋해 진다. 오히려 ‘이번 기회에 다른 클럽의 감은 어떤지 생생하게 느낄 기회’ 라며 피할 수 없을 상황은 즐기는 노련함마저 생긴다.

어쨌든 집에서 편안하게 TV를 보는 시청자들은 투어 프로들에게 이런 고충이 있다는 것을 전혀 상상치 못할 것이다. 선수들의 고충은 의외로 사소한 것에 있다. 이런 저런 스토리를 뒤로 한 채 오늘도 TV를 보면 태연히 시합을 하고 있는 선수들을 볼 수 있다. 그들이야말로 진짜 프로다!

여민선 프로 minnywear@gmail.com
LPGA멤버, KLPGA정회원, 자생 웰니스센터 ‘더 제이’ 헤드프로, 방송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