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 선다 피차이 구글 CEO,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제프 베조스 아마존 CEO. 이들은 실리콘밸리의 영웅이자 글로벌 ICT는 물론 모든 경제산업군에서 파괴적인 영향력을 보여주는 거물들이다.

우리는 흔히 거물이라면 태산같은 존재감을 바탕으로 근엄하고 흔들림없는 리더십을 상상한다. 그런데 실상을 보면 약간 재미있는 대목이 있다. 글로벌 무대를 종횡무진하며 선망의 대상이 되고있는 이들이 알고보면 서로 아옹다옹,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 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최근 벌어진 개인정보보호 설전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말부터 팀 쿡 CEO와 마크 저커버그 CEO 등이 이와 관련된 설전을 벌이더니 이제는 언론 기고문을 통해 서로를 ‘디스’하고 있다. 실제로 한 때 마크 저커버그의 동료였던 크리스 휴즈가 페이스북의 과도한 개인정보유용을 지적하자 마크 저커버그는 뉴욕타임스 기고를 통해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구축하고 있다”고 반발했으며 선다 피차이 역시 기고를 통해 “개인정보보호는 사치품이 아니다”면서 팀 쿡이 이끄는 애플의 프리미엄 전략을 비판했다.

우리말로 ‘키보드 워리어’도 있다.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스페이스 엑스가 조만간 스타링크 프로젝트를 통해 약 1만2000개의 인공위성을 우주로 날린다고 발표하자 제프 베조스는 카이퍼 프로젝트를 통해 “우리는 약 3만개의 인공위성을 쏘아올릴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자 일론 머스크는 트위터를 통해 제프 베조스를 향해 ‘따라쟁이’라는 뉘앙스의 말로 그를 비판했다.

이들의 행보를 보고 있으면 처음에는 추억의 만화영화 ‘톰과 제리’를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하면 부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이들도 당장의 수익 비즈니스나 돈, 상품을 두고 충돌하는 경우가 있으나 그럴 때는 회사와 회사의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한다. 그런데 빅 아이디어. 즉 세상의 패러다임을 세우는 일에는 마치 천진난만한 아이들처럼 수다를 떨며 서로를 ‘디스’하고 자기의 생각을 밝힌다.

인공지능 로봇에 대한 시민권 부여 논쟁, 데이터 활용에 대한 논쟁처럼 당장의 수익과는 관련이 없어도 매우 중요한 이정표가 될 수 있는 핵심 사안을 먼 미래를 보고 논의하고 충돌하는 문화. 이는 고스란히 전체 산업군의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중국 알리바바 창업주 마윈은 내기를 즐긴다. 그는 샤오미의 레이쥔과 공개적인 실적경쟁을 내기의 대상으로 삼고, 완젠린 완다 회장과도 공개 내기를 벌였다. 가십으로 치부할 수 있지만 이 과정에서 이커머스의 성장과 오프라인과의 시너지 등 다양한 시사점이 대중에 깊숙이 각인됐다. 이러한 대화나 내기, 이벤트가 큰 그림으로 무대 위에 펼쳐질 때 진짜 역사가 시작된다.

우리에게는 이런 문화가 있나. 없다고 본다. 지금이라도 우리 방식으로 한 번 고안해보자. 태산같이 무거운 자리에 앉아 근엄하게 아래를 굽어보는 CEO도 필요하지만, 이제는 거대한 패러다임에 거침없이 자기의 의견을 말하고 토론하는 아고라형 CEO도 나올 때가 되지 않았을까. 참고로 마윈 회장은 레이쥔, 완젠린 회장과의 내기에서 모두 졌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