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대병원이 외래진료를 위한 새 시설 '대한외래'를 개원했다. 출처=서울대병원

[이코노믹리뷰=황진중 기자] 인구 고령화로 의료비 증가가 꾸준히 상승하고,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더 나은 의료 서비스에 대한 요구가 급증하고 있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의료 서비스의 최종 사용자 또는 수혜자를 환자가 아닌 소비자로 인식하는 현상인 ‘의료 소비주의’가 빠르게 번지고 있다.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에 따르면 의사 등 의료 관계자들은 ‘환자’라는 단어는 의사가 주도해 진단과 치료가 이뤄지는 수동적인 자세가 강하게 나타나는 반면, ‘소비자’는 적극적으로 의료 과정에 참여하고 더 많은 서비스를 요구하는 자세가 나타난다는 것에 동의했다.

환자들이 의료진에게 더 좋은 서비스를 요구하게 되면서 의료 서비스는 최상의 품질과 안전 기준을 충족시키는 것은 물론, 적절한 비용과 편리성, 유연성 역시 갖출 필요가 있는 환자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 새로운 의료 트렌드에 따라 ‘스마트 병원’으로 변신 중인 한국 의료 서비스가 주목된다.

서울대병원 대한외래 “넓고 편안한 환경서 첨단 서비스 제공”

서울대병원은 지난달 새로운 진료 공간으로 오랜기간 준비한 외래 전용 건물 ‘대한외래’를 개원했다. 서울대병원 본관은 1978년 개원 시 동양 최대 규모로 건립됐다. 당시 예상 하루 평균 외래환자는 2000명이었지만, 이는 이날까지 약 9000명으로 크게 늘어 진료실과 편의시설 부족 등에 어려움이 있었다.

새로 개원한 대한외래는 지상 1층에서 지하 6층에 이르는 연면적 약 4만7000㎡ 규모로 각 진료과 면적이 기존보다 1.2~1.7배 넓어졌다. 지하 1층부터 3층까지에는 외래 진료실, 검사실, 주사실, 채혈실, 약국 등 진료공간과 식당을 비롯한 각종 편의시설, 직원휴게실 등이 배치됐다. 지하 4층부터 6층까지는 주차장이 자리 잡았다.

▲ 대한외래는 '이름없는 병원'을 구축해 환자의 개인정보를 보호하고 있다. 출처=서울대병원

대한외래는 입원실과 분리된 별도 공간에 건립됐다. 이는 혼잡도를 해소하고 감염 위험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최첨단 외래진료 시스템도 도입돼 진료의 질을 높였다.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환자정보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외래진료 모든 절차에서 환자 이름을 드러내지 않는 ‘이름없는 병원’을 구현했다”면서 “이름대신 진료 당일 받는 고유번호를 통해 진료실과 검사실, 수납 및 예약 창구에서 사용하게 된다. 이를 통해 환자의 프라이버시 보호는 물론 동명이인에 따른 혼란도 없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 대한외래는 음성인식을 문자화하는 '음성인식 솔루션'을 활용하고 있다. 출처=서울대병원
▲ 대한외래 의료진들이 스마트솔루션을 통해 환자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출처=서울대병원

‘장벽없는 병원’ 서비스의 일환으로 추진된 음성인식 솔루션도 주목된다. 대한외래에서는 외래 진료 시 의료진이 환자에게 꼭 당부할 중요사항을 마이크 등으로 입력해 문자화 하고 환자에게 전달한다. 환자는 모바일 앱을 통해 의료진이 강조한 설명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올해 안에 청각 장애인들을 위한 음성 문자화 솔루션을 통한 진료와 안내도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이비인후과 장애인 우선창구 등에 우선 설치될 예정이다.

분당서울대병원, ‘스마트 수술실’로 글로벌 패러다임 앞장

글로벌 수술 패러다임이 ‘스마트’로 전환되고 있다. 분당서울대병원은 국내 최고 스마트 정보통신(IT) 병원이라는 강점을 살려 글로벌 의료기기 회사들이 제공하는 패키지솔루션을 도입하는 대신 실제 병원에서 의료진에 꼭 필요한 기능을 집대성, 자체 스마트 수술 시스템과 교육 플랫폼을 구축해 주목된다.

▲ 분당서울대병원은 '스마트 수술실'을 통해 글로벌 스마트 병원 패러다임을 이끌고 있다. 스마트 수술실 내부 모습. 출처=분당서울대병원

분당서울대병원 스마트 수술 시스템에서는 의료진별로 수술 장비 셋팅이 가능한 ‘프리셋’ 기능과 스마트 터치 패널로 수술실의 전체 환경을 제어할 수 있는 통합 컨트롤 등이 가능하다. 분당서울대병원 관계자는 “일부 기능은 음성 인식 시스템을 연동시켜 말로 제어가 가능하다”면서 “의료진이 주변 환경에 신경을 쓰는 것보다 환자와 수술 자체에 집중할 수 있도록 구축됐다”고 만들었다.

▲ 분당서울대병원 관계자가 통합 컨트롤 패널을 조작하고 있다. 출처=분당서울대병원

복강경, 흉강경, 관절경, 로봇수술 등 환자에게 적은 영향을 미치는 ‘최소침습수술’의 중심지 답게 영상 수술 장비도 최고 의료기기가 설치됐다. 분당서울대병원 스마트 수술실에서는 근적외선을 활용한 영상유도수술(IGS, Image Guided Surgery)이 가능하고, 기존 Full-HD보다 4배 더 선명한 4K 수술내시경과 수술 시야를 입체적으로 볼 수 있는 3D 수술내시경을 동시에 지원하는 디스플레이도 도입돼 더 정교하고 세밀한 수술이 가능해졌다.

▲ 스마트 수술실에 배치된 8K VR 카메라 모습. 출처=분당서울대병원

수술 중 병원 내에서 고도의 의사소통이 필요한 병리검사는 수술실과 병리검사실에 설치된 화상연결 솔루션을 통해 실시간으로 의견을 공유하며 협진이 가능한 ‘원격 병리진단(Tele-Pathology)’ 시스템도 도입됐다. 수술실에서 글로벌 의사소통이 가능한 수술 생중계(Live Surgery) 기능도 구현됐다. 이는 인터넷이 연결된 곳이라면 세계 어디든 실시간 송출이 가능해 전문 의료진과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분당서울대병원의 스마트 수술실은 국내는 물론 차세대 의료인을 전세계에서 양성할 수 있도록 ‘교육 플랫폼’ 역할도 수행할 수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관계자는 “수술 중 일부는 환자의 동의를 거쳐 4K나 3D 영상, 또는 360도 카메라를 활용한 8K VR영상 등으로 제작된다”면서 “수술 교육 유튜브 채널에 교육 콘텐츠로 등록돼 첨단 의학 교육에 관심 있는 국내외 의학자들의 역량 향상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IT기업‧대형병원, 의료정보에 블록체인 활용 가속화

블록에 데이터를 담아 체인 형태로 연걸해 수많은 컴퓨터 등에 기록을 복제해 저장하는 분산형 데이터 저장 기술로 데이터 위조나 변조를 할 수 없도록 만들어 보안성이 뛰어난 ‘블록체인’ 기술이 개인정보보호 등을 위해 개인의료정보에 활용되고 있다.

의료에서 블록체인 활용은 크게 의료기록 관리, 의료보험 청구자료 처리, 임상연구와 임상시험 자료 관리 등에서 나타날 것으로 전망된다. 의료기록은 이날까지 정보를 생성하는 의료기관이 관리하고 있다. 이는 중앙집중형 관리체계로 병원마다 정보가 흩어져 환자 중심으로 통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헬스케어 블록체인 기업 메디블록과 경희치과종합검진센터는 지난달 치과 검진 전자의무기록(EMR) 시스템을 공식 출시했다. 이는 블록체인에 기반을 둔 환자 중심의 의료 정보 공유 서비스를 상용화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경희치과종합검진센터에 도입되는 시스템은 치아나 잇몸 상태뿐만 아니라 구강 구조, 얼굴 균형, 저작 기능등을 고려한 치과 검진 시스템이다. 이는 검진 비용을 최소화하고 치과 전용 컴퓨터 단층 촬영(CT)이나 3차원 얼굴 스캐너 등 최신 장비를 활용, 진료 계획을 객관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목표다.

메디블록 관계자는 “자체 개발한 치과 검진 EMR 시스템으로 의료진은 문진표 작성 시 전신겅강상태, 구강건강 인식도 및 습관 등 모든 설문을 전산화해 필요한 정보를 파악하고, 진단결과를 여러 진료과가 공유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개인건강기록(PMR) 서비스와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희귀난치질환 환자들의 건강 정보를 안전하게 수집, 이를 활용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휴먼스케이프는 최근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스마트 병원과 ‘암 환자 데이터 공동연구’ 협약을 체결했다.

휴먼스케이프가 제공하는 솔루션은 환자들의 건강 정보를 제약사, 연구기관 등에서 데이터로 요구할 때 환자들에게 데이터 활용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지급하는 서비스다. 데이터 유통과정에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 이를 투명하게 관리해 환자의 치료 기회 확대를 도우면서 환자가 스스로 PMR에 대한 통제권을 보유할 수 있도록 만든다.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스마트 병원은 의료 편의성을 높인 환자용 모바일 앱을 개발하고, 의료진의 진료 안정성과 효율성을 개선하는 모바일 EMR 등을 시작했다. 서울성모병원 스마트 병원과 휴먼스케이프는 공동연구를 통해 전립선 암 환자의 PMR을 연구에 활용 가능한 데이터로 가공해 환자들에게 유의미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다.

병‧의원서 무인접수 확대…업무효율‧편의성 높여

사람을 통하지 않고 진료를 접수하는 ‘키오스크’를 활용하는 병‧의원도 늘어나고 있다. 이는 환자들이 직접 접수와 수납, 처방전 발급 등을 할 수 있는 무인기기다.

▲ 대한외래에서는 '무인 키오스크'를 활용해 접수 등을 할 수 있다. 출처=서울대병원

서울대병원 대한외래에서는 ‘외래 진료 통합 관리시스템’을 도입, 복잡한 진료 절차를 간소화했다. 환자가 키오스크를 통해 접수를 하면 이는 진료순서 관리 전광판과 연동돼 검사 시행여부, 수납, 진료 예약시간 등이 환자 개개인에게 맞춰져 일목요연하게 안내된다.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외래 진료 통합관리시스템에 표기되는 자동안내 기능 덕분에 의료진은 진료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된다”면서 “환자가 진료 전 측정한 신체계측 정보는 병원정보시스템(HIS)에 연동돼 진료 효율성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병‧의원용 키오스크를 제작하고 유통하는 기업으로는 유비케어가 꼽힌다. 유비케어의 무인접수 키오스크는 렌탈상품으로 이용할 수 있어 병원의 초기 비용 부담을 낮출 수 있다. 유비케어는 관계사 비브로스와 협력해 지난해부터 병‧의원에 무인접수 태블릿을 제공했다. 올해부터는 키오스크 제품도 선보이고 있다.

▲ 유비케어가 제공하고 있는 병-의원용 무인 키오스크 제품 모습.출처=유비케어

유비케어 관계자는 “LG CNS와의 제휴를 통해 상반기까지 LG CNS의 로봇 서비스 소프트웨어가 탑재된 무인접수로봇 상품을 상용화하는 등 무인접수 제품 라인업을 확대한다는 전략”이라면서 “이를 위해 LG CNS와는 ‘로봇을 기반으로 한 병‧의원용 서비스 및 솔루션 사업 추진’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스마트 의료와 관련, 일각에서는 의료의 질 하락, 대형병원 쏠림 우려 등을 내세우고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스마트 진료의 향후 정책 방향은 의료의 효율성과 질 향상을 위해 현행법 상 허용되는 의사-의료인 사이의 협진을 활성화할 것”이라면서 “격오지 군부대, 교정시설, 원양선박과 도서‧벽지 등 취약지의 의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추진 중인 시범사업에 대한 성과를 평가, 이를 고려해 제도화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또 “스마트 진료는 이후 충분한 사회적 논의과정을 거쳐 합리적인 방향으로 제도개선방안을 모색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