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동규 기자] ‘캐즘(Chasm)’은 새로운 기술 혹은 제품이 시장에 출시돼 처음에는 잘 팔리다가 대중적으로 보급되기까지 수요가 약간 정체되는 시기를 뜻하는 말이다. 다른 말로 죽음의 계곡(Death Valley)라고도 불린다.

전기자동차 시장도 출시된지 130년이나 지난 지금까지 상당히 긴 캐즘을 지나고 있다. 그러나 여러 연구원과 시장조사업체 등은 2018년부터 세계 전기차 시장은 캐즘을 벗어나고, 올해부터는 캐즘을 탈출하는 시그널이 명확히 보인다고 입을 모은다. 전기차 시장의 확대는 필연적으로 전기차의 에너지원인 전기차 배터리 시장도 함께 성장시킨다.

▲ 삼성SDI의 배터리가 탑재된 BMW i3. 이코노믹리뷰 김동규 기자

2018년 전기차 판매량 시장 전망치 웃돌아

박재범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의 리포트에 따르면 올해는 전기차가 캐즘에서 벗어나는 원년이 될 것으로 전망됐다. 박 연구원은 “작년 글로벌 전기차 시장(HEV제외, EV, PHEV포함)에서는 197만대 수준의 판매량을 기록했는데 이는 예상치였던 137만대를 60만대 이상 넘어선 것”이라면서 “올해도 전기차 판매량은 약 400만대로 예상되는데 이는 올해 전체 자동차 판매량 예상치인 9250만대의 4%를 넘어서면서 전기차가 죽음의 계곡서 빠져나오는 기념비적인 한해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블룸버그뉴에너지파이낸스(BNEF)에 따르면 2040년에는 전 세계 자동차 시장서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율은 55%정도일 것으로 전망됐다.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은 2017년 110만대에서 2025년 1100만대까지 증가하고, 2030년에는 3000만대로 급상승할 것으로 예상됐다.

BNEF는 “중장기 전기차 판매 증가는 주요 시장에서 인프라가 얼마나 빨리 확충되는지 여부와 공유차량(Shared Mobility)의 성장 속도에 영향을 받을 것”이라면서 “지역적으로는 중국이 2025년에 전 세계 전기차 시장의 약 50%를, 2030년에는 39%의 비중을 차지하면서 세계 전기차 시장을 이끌 것”이라고 분석했다.

▲ 글로벌 전기차 수요 전망치. 출처=SNE리서치, 신한금융투자

올해 하반기 폭스바겐 그룹 전기차 선봉장 전망

앞서 나온 전망을 뒷받침 하는 주요 근거로는 세계 유수 완성차 업체들이 하반기부터 전기차 출시에 적극 나선다는 점이 꼽힌다. 특히 폭스바겐 그룹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이순학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의 7일 보고서에 따르면 폭스바겐은 아우디 e-트론과 ID 해치백 출시를 통해 전기차 시장 선점에 나선다. 아우디는 4월부터 SUV 전기차인 e-트론의 판매를 시작했다. 현재까지 약 1000대 이상의 판매량을 넘긴 것으로 추정되고, 노르웨이와 독일에서 주로 판매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우디가 예상하는 e트론의 올해 판매량 전망치는 4만 5000대 수준이다.

아우디는 4월 열린 상하이 모터쇼에서도 Q2L e트론을 공개했다. 중국 시장을 겨냥한 소형 SUV모델인데 중국 공장서 생산되고 올 여름부터 판매가 시작될 전망이다. 폭스바겐은 SUV 전기차인 ID룸즈도 공개했는데 이 차량은 2021년부터 중국 시장서 본격 판매될 것으로 예상됐다.

올해 배터리 시장 규모 작년 1.7배 성장 전망...배터리팩 가격 지속 하락

전기차 시장이 캐즘을 벗어나 개화기에 들어서면서 이들 전기차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전기차 배터리 시장 역시 함께 커질 것으로 전망됐다. 포스코경영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올해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작년 1200억달러(142조 3900억원)에서 올해 2040억달러(240조 670억원)로 약 1.7배 성장할 것으로 예상됐다.

한국의 대표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인 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도 작년 수주액을 모두 합치면 약 110조원 정도로 추정되는데, 이는 반도체의 연간 수출액인 141조원의 78%에 이른다. 물론 업계 일각에서는 수주가 실제 매출로 이어져야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시선도 있다. 그러나 전기차 시장의 증가와 더불어 한국 배터리 제조사들에게 수주를 맡기는 전기차 업체가 많아진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 전기차 배터리팩 가격 추이. 출처=BNEF

여기에 더해 지난 10년간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는 배터리팩 단가도, 전기차 완성체 업체들의 생산 확대를 부채질하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전기차 가격에서 배터리팩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인 수준에서 부담 가능한 수준으로 점점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BNEF에 따르면 2010년 전기차용 배터리팩 가격은 kWh당 1160달러였다. 당시 전기차 배터리 용량이 20kWh라고 치면 2만 3200달러(2730만원)이 배터리 팩 가격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가격은 점차 줄어들어 2018년 기준으로 kWh당 배터리팩 가격은 176달러(20만 7000원)수준으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60kWh용량의 전기차 기준으로 배터리팩 가격은 1만 560달러(1243만원)정도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배터리 셀에서 기술개발을 통해 에너지밀도가 좋아지면서 kWh당 가격이 점차 하락하고 있다”면서 “배터리 셀 뿐만 아니라 모듈, 팩 기술도 함께 향상시키면서 원가절감 노력을 한 것, 일정 수준의 규모의 경제가 이뤄진 측면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배터리 팩 가격이 내려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