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당연히 집에서 제일 더러운 것은 똥통 즉 변기를 떠올린다. 아마도 그게 제일 더럽다는 고정관념에 사로 잡혀 있기 때문에 우리는 화장실을 나올 때 꼭 손을 닦으라고 교육 시킨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가 가장 더럽다고 생각하는 똥통보다 더 더러운 주위 환경 속에 파묻혀 지내고 있다.

일련의 보도를 보자면, 현금자동지급기, 변기만큼 더러워 (YTN, 2011. 1. 13), 교복-베개, 변기보다 더러워 (한국경제, 2011. 4. 12), 매일 만지는 컴퓨터 키보드, 화장실 변기 세균의 50배 (SBS, 2012. 4. 16), 책상, 컴퓨터, 휴게실, 변기보다 더러워 (경인일보, 2012. 5. 24), 자동차 핸들, 변기보다 더러워 (세계일보, 2012. 7. 24), PC방 마우스, ‘터미널’ 변기보다 더러워 (한국경제, 2010. 12. 21), 냉장고, 변기보다 10배 더러워 (파이낸셜뉴스, 2013. 2. 10), 여성핸드백, 변기보다 더러워 (스포츠한국, 2013. 4. 5), 모 패스트푸드식당 얼음, 변기보다 더러워 (아주경제, 2013. 7. 21), 수도꼭지, 변기보다 더러워 (아주경제, 2015. 6. 12), 도마, 싱크대, 수세미, 변기보다 더러워 (머니투데이, 2018. 3. 4), 스마트폰, 변기보다 10배 더러워 (한국경제, 2018. 1. 12), 청소 안 한 세탁기, 변기보다 더러워 (메디컬리포트, 2019. 2. 1.)으로 나온다.

이쯤 되면 우리가 먹고 입고 쓰고 자고 사용하는 것 중에서 과연 변기보다 깨끗한 것이 있을까 의심스러운 수준이다. 변기보다 더러운 수도꼭지에서 물을 받아 먹고, 변기 보다 더러운 곳에 보관해 둔 음식으로, 변기보다 더러운 도마 위에서 요리를 하고, 변기보다 더러운 세탁기에서 옷을 빨아 입고, 변기보다 더러운 곳에서 돈을 찾아서, 변기보다 더러운 얼음을 띄운 음료수를 마시며, 변기보다 더러운 차를 타고, 변기보다 더 더러운 곳에서 일하고 논다. 예전에 한참 유행했던 농담처럼, 거의 똥 밭을 헤매고 있는 꼴이다.

 

사실 똥통보다 깨끗한 것이 별로 없어!

아무리 깨끗한 걸레로 닦아 낸다고 한들 변기 보다 더러운 수도꼭지에서 나온 물로 씻거나 변기보다 더러운 세탁기로 빨래를 한다면 허사다. 아무리 깨끗한 물에 씻어둔 식자재라 하더라도 변기보다 더러운 냉장고에서 며칠씩 묵힌다면, 거기다 아무리 샤워를 하고 박박 때를 벗겨 낸들 변기보다 더러운 베개를 베고 잠을 자고 변기보다 더러운 옷을 입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다. 주위의 거의 모든 것이 사실은 똥통보다 더 더러운 것들뿐인데.

예전에 자연인을 찾아 다닌다는 모 연예인이 TV프로그램에서 한 얘기가 생각난다. 자연인의 흙 묻은 손이 더러워 보여서 그 손으로 주는 음식 받아 먹기가 꺼려졌지만, 생각해보면 ‘호주머니에 들어 있는 핸드폰, 돈, 차 키 같은 것들이 사실은 훨씬 더러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라’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흙이 묻거나 손톱 밑에 때가 있는 손으로 집어준 음식을 먹고도 지금껏 한번도 탈이 난 적이 없었다고 역설했다.

사람이 사는 주위 환경만 더 더러운 것이 아니다. 생각이나 행태도 우리가 놀라우리만큼 더러운 상황이 너무나 흔하다. ‘개똥 밭을 구르더라도 이승이 낫다’고 했다. 동물도 마찬가지 아닐까? 학대 받는 동물을 구한다는 명분으로 각종 지원금을 받아서 운영해오던 동물권단체의 대표가 소송 중이다. 구조하고 보니 보호소 공간이 부족해서 어렵사리 구조한 동물 200여 마리를 죽였단다. 인도적인 방법으로 수의사를 통한 안락사라고는 하나 견생(犬生)에서 볼 때는 기가 막히지 않았을까 싶다. 거기다 엉뚱하게 사용된 후원/기부금이나, 단체명의가 아닌 개인명의로 부동산을 사들인 것까지 혐의도 다양하다.

올 초 화제가 된 모 수산시장의 65세 횟감 판매원의 사연이 눈길을 끈다. 4년을 넘게 근무한 횟집에서 일을 못하게 될 처지에 놓이게 됐다. 업주에 의해 내몰리다시피 했는데, 다른 가게로 옮기면서 퇴직금을 요청하면서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 업주는 ‘시장에서 일하면서 퇴직금 타령하냐’며 구박하며 겨우 300만원을 송금했는데, 노동부는 700만원을 추가 지급하라는 권고안을 냈다. 그랬더니, 그 업주는 천원권 지폐 더미를 쌓아놓고 700만원을 세어가게 했다. 또, 다른 가게들을 동원해 일자리를 더 이어가지 못하게 압박했다.

65세의 나이에 시장에서 횟감을 다듬으며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에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갑질을 퍼부었다. 사업주는 종업원에게 퇴직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 노동에 대한 정당한 가치를 인정 받지 못하는 사례가 우리 주위에 너무나 많아서 유별나 보이지도 않지만, 그것이 내 가족의 일이 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회를 너무나 좋아하지만, 가끔 어시장에서 하루 종일 물에 팅팅 불어있는 손가락을 본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실제로 나의 이모가 마산 어시장에서 장사를 하셨는데, 마디마디 트고 갈라진데다 독이 있는 생선 가시에 찔려 부어 있는 손가락들, 차마 제대로 쳐다 보기도 어려웠다.

아직도 뉴스를 보면서 생경한 단어나 어휘의 뜻을 찾아 보는 일이 많다. 축약된 신세대 조어들이 그렇지만, 알았더라도 나이 탓에 잊어버린 뒤에 정확한 뜻을 또 찾아 보는 일이 잦다. 최근에 자주 나오는 그루밍이 그렇다. 침팬지들이 서로의 털을 손질해주는 그런 뜻으로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뒤에 ‘성폭력’이라는 말이 붙어 있었다. 이쁘게 다듬어 주는데, 성폭력이라니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까, 뉴스를 보면서도 한참을 생각했다.

수년째 공황장애에 시달리던 이십대 초반의 한 여성이 사회적 권위에 유명세까지 떨치던 정신과 의사에게 당했던 성폭력이 그 내용이었다. 기사에서 그 환자에게 의사는 ‘신(神)’적인 존재나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그만큼 믿음을 가지는 존재였기에, 신으로부터의 꾀임에 의한 관계나 회유는 거부할 수 없었을 것이다. 미국의 23개 주에서는 심리상담사와 환자간의 성관계는 동의 하에 진행되었더라도 상담사가 처벌받게 되어 있단다. 한국임상심리학회 차원에서도 이 둘 간의 성관계를 금지하는 윤리규정은 갖췄다. 하지만 범죄로 보기엔 어렵다는 것이 지금까지 우리 현실의 법적 판단이다.

 

“작은 도둑은 도둑놈, 진짜 큰 도둑은 도둑님?”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우리 사회가 가지는 모순점 하나는 천원을 훔치면 불쌍한 것이고, 만원을 훔치면 쪼잔한 놈이 되고, 몇 백만원을 훔치면 못된 놈이 되지만 수십억을 훔치면 대단한 놈이 되고 수백 수천억원을 훔치면 부러운 님이 된다.

전 직장에서 최고경영자였던 사람이 수백억원의 횡령과 배임으로 구속 수감되었다가 형기를 마치고 출소를 했다. 그 사람이 회사를 그만둘 시점엔 모두가 손가락질 해댔지만, 한참 뒤에는 명절 때마다 예전에 손가락질 했던 임원들이 인사를 다닌다는 얘기를 들었다. 현금 많은 갑부가 되어 있는 그에게 잘 보이면 혹시나 떡고물이라도 떨어지려나 하는 기대감이다.

최근 국내에서 2차전지사업으로 소문난 두 회사간에 치열한 법정 공방전이 벌어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한 회사가 상대 회사로부터 2년 여 동안에 전지사업본부의 연구개발, 생산, 품질관리, 구매, 영업 등 전 분야에서 76명의 핵심인력을 빼갔다는 것이다. 핵심인력과 함께 기술유출까지 진행 되었다는데, 입사 지원 서류를 받을 때 수행한 상세업무 내역은 물론, 진행한 프로젝트의 리더 그리고 동료들의 실명까지 요구했다고 한다.

한 기업이 하이테크 산업 시장에서 강자로 섰다는 것은 오랜 기간 동안의 연구와 막대한 투자의 결과이다. 특허나 지식재산권으로 당연히 보호 받아야 한다. 또, 경력자들은 동종 업계로 두어 해 정도는 이직도 금지되는 것이 상례다. 그런데 국경을 넘어서 기업들간의 경쟁이 심화되는 현실에서는 현업에 종사하는 핵심인재들을 꼬드겨서 빼간다. 한 때 중국이 우리나라 산업의 여기저기서 무차별적으로 사람을 빼갔다. 그 때문에 산업 지형도 많이 바뀌었다.

예전에 법률 세가지가 바뀌면서 건전한 벤처기업에서 하루아침에 불법 기업이 되었던 적이 있었다. 월급도 밀리고 생활이 말이 아닌 상황에 처했는데, 하루는 돈 깨나 있는 지역 총판장이 저녁을 먹자고 했다. 강남의 유명 일식집에서 맛있는 술과 음식을 잘 얻어먹고 나오는데, 수표 한 장을 슬며시 호주머니 밀어 넣었다. 순간 금액 확인도 하지 않고, 호주머니에 들었던 수표를 있는 힘껏 구겨서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월급도 못 받고 어려우실텐데, 애들 과자라도 사주세요.”

그러면서 떨어진 수표를 집어 다시금 내 손바닥 위에 올려놨다. 다시 수표를 바닥에 던지고, 그러기를 몇 번을 반복했다. 옆에 있던 선배가 딱하다는 듯 쳐다보며 한마디 거들었다. “뭐, 이상한 부탁 하려는 것도 아니고, 그냥 받아둬.”

수표를 마다하고 차를 타고 오는 내내 얼마짜리 수표였을까 궁금하기는 했다. 마침 다음날이 어린이 날이었는데, 생계가 곤란해진 마당에 어찌해야 할 지 하는 고민으로 눈물이 핑 돌았다. 결국엔 다 똥통 보다 더러운 세상인데, 깨끗하게 사는 게 사실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