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글로벌 ICT 전자 업계에서 중국의 기술 대국굴기가 거침없이 발현되는 가운데, 최근 유럽을 중심으로 중국 업체를 견제하려는 행보가 감지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아직 모든 유럽이 중국 기업을 배제하는 등의 과격한 분위기는 없으나, 이면에는 '중국 기업을 믿기 어렵다'는 정서가 조금씩 보이고 있다.

▲ 중국의 ICT 전자 업체가 논란이다. 출처=갈무리

유럽의 변심?
미중 무역전쟁이 벌어지며 미 트럼프 행정부의 중국 견제가 벌어지는 가운데, 유럽은 상대적으로 정중동의 행보를 보인 바 있다. 미국이 보호 무역주의를 중심으로 '아메리카 퍼스트' 전략을 가동하면서 오랜 우방인 유럽과 각을 세웠고, 이 과정에서 미국은 동맹국들에게 중국 기업 배제를 노골적으로 요구했으나 유럽이 이에 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럽은 강력한 보호 무역주의를 펼치는 미국과 거리를 두며 순수하게 산업적 시각으로 중국과의 접점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가 중국의 일대일로 로드맵에 편입된 것도 그 연장선이라는 평가다.

그 연장선에서 유럽은 미국과의 기본적인 관계는 파탄내지 않으면서도 중국의 이권과는 손을 잡고 경제 발전을 이루려는 행보가 이어졌다. 특히 브렉시트를 앞둔 영국의 경우 더 적극적으로 중국의 손을 잡으며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 일각에서 소위 '파이브 아이즈' 붕괴 시나리오까지 나왔다.

문제는 최근 분위기다. 유럽은 전략적 선택을 통해 중국과 다양한 협력전선을 구축하고 있으나, 최근 중국 기업을 둘러싼 다양한 논란이 불거져 전전긍긍하고 있다. 특히 블룸버그가 지난 1일 영국의 통신사인 보다폰이 2009년과 2011년 사이 화웨이 백도어를 발견했다고 보도하며 논란은 확산되고 있다. 보다폰과 화웨이는 즉각 '사실무근'이며 당시 논란은 기술 오류에 불과하다고 선을 그었으나 이를 향한 의심의 눈초리는 더욱 짙어지는 분위기다. 두 회사는 지난 MWC 2019 기간 5G 체험 부스를 공동으로 마련하는 등 각별한 인연을 자랑한 바 있다.

ASML 기술 유출 사고도 뇌관이다.

1984년 네덜란드에서 설립된 ASML은 반도체 노광 장비 1위 업체며, 미세공정의 핵심 키워드는 극자외선(EUV·Extreme Ultra Violet) 노광(Lithography) 장비를 제작하는 곳으로 잘 알려졌다. 글로벌 파운드리 업계의 수퍼갑이며, 삼성전자와 TSMC에 장비 공급을 매개로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유일한 기업이다. 전형적인 연구개발 특화 기업이다.

연구개발에 따른 기술력이 사실상 기업의 모든 것인 ASML에서 최근 기술유출 논란이 벌어졌다. ASML의 전 직원들이 퇴사해 XTAL이라는 새로운 회사를 설립한 가운데, 이들이 중국과 연계되어 기밀을 유출시켰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최초 논란 당시 XTAL의 배후에 삼성전자가 개입되어 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으나, 이는 ASML의 공식 부인으로 해프닝이 됐다. 다만 현 상황에서 중국과의 연계에 대한 논란은 이어지고 있다. 역시 ASML은 부정하고 있지만 XTAL을 세운 전직 ASML 직원들이 중국 출신 직원들이라는 점에서 업계의 의심은 더욱 커지고 있다.

▲ 삼성전자의 EUV도 ASML에서 받는다. 출처=삼성전자

중국 화웨이와 5G 미래를 꿈꾸던 미국과 네덜란드 등이 코어 네크워크에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도 이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영국과 네덜란드는 최근 5G 장비 선정을 발표하며 화웨이 장비를 모두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핵심 장비에는 자국 장비를 사용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영국은 화웨이의 든든한 유럽 우군이라는 점에서, 네덜란드는 ASML의 모국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평가다. 가성비가 좋은 화웨이 장비를 모두 사용하지 않고, 중요하지 않은 네트워크에만 가성비를 이유로 화웨이 장비를 선택적으로 활용한다는 방침을 세웠다는 말이 나온다. 모두 화웨이를 100% 믿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보인다.

사실 화웨이는 중국 기술굴기를 상징하는 기업이며, 마오주의자로 유명한 런정페이 창업주로 인해 중국 정부와의 유착설에 시달리고 있다. 런 창업주는 중국 인민해방군 출신이며 화웨이 기업 구조는 베일에 가려져 있다. 화웨이는 최근 다수의 간담회를 통해 이러한 의혹을 부인하고 있으나, 업계에서는 독특한 화웨이의 집단지배구조 및 특유의 상명하달방식 등이 중국 공산당의 방식과 유사하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미국은 중국에 대한 강공 일변도다. 심지어 중국과 협력을 강화하던 퀄컴도 최근 거리를 두는 분위기다. 지난달 퀄컴은 중국에 설립한 조인트 벤처인 HXT 반도체를 폐쇄했으며, 이는 5G 시대를 맞이해 중국 기업의 기술굴기를 견제하려는 행보로 풀이되고 있다. D램 양산이 막힌 푸젠진화의 뒤에 미국 장비 수출 금지령이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인텔은 칭화유니와 5G 개발을 중단하기도 했다.

중국 기업의 공산당 유착설이 고조되자 결국 중국 정부도 행동에 나서고 있다. 5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지난 3월 양회(兩會)를 통해 개인정보 보호 법안 추진을 마련하고 있다. 최근 시진핑 중국 국가 수석이 미중 무역전쟁 막바지에 이르러 기업의 지식재산권 보호를 선언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중국 기업에 대한 업계의 의구심을 의식해 개방적인 생태계 창출에 나서려는 액션을 보여주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 런정페이 화웨이 창업주가 발언하고 있다. 출처=화웨이

우리 상황은 어떤가?
중국의 ICT 전자 인프라 및 자금은 국내 시장에도 다수 유입됐다. 텐센트는 카카오의 주요 주주며 이 외에도 유명 엔터테인먼트에 지분을 가지고 있다. 이는 알리바바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인터넷전문은행인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에도 중국 자본이 들어와 있다. 장비 측면에서는 LG유플러스가 화웨이의 손을 잡고 움직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기업에 대한 의구심을 무작정 무시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무작정 받아들이기도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초반 유럽처럼 중국 기업에 대해 '취할 것은 취하고' 그 외 벌어지는 다양한 이슈에는 더욱 강력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설득력이 실린다. 아직 백도어 및 핵심 이슈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발작적인 대응을 보일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의 준비는 필요하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