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대법원은 주식회사 한진중공업(이하 한진중공업) 소속 근로자들이 정기상여금 등 법정수당을 통상임금의 범위에 포함하여 지급해 달라며 제기한 임금 청구 소송에서 근로자 측의 손을 들어주었다.

대법원은 2013년 통상임금에 대한 전원합의체판결을 통해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의 범위에 포함될 수 있지만, 근로자들이 이를 토대로 추가적인 법정수당의 지급을 구함으로써 사용자에게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재정적 부담이 발생하여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경우에는 정의와 형평관념에 비추어 ‘신의칙’에 위배되므로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대법원 2013. 12. 18. 선고 2012다89399 판결 참조).”는 판시를 한 바 있었고, 이후 사용자측에서 근로자들에게 통상임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 ‘신의칙’의 기준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란은 끊임없이 이어져왔다.

‘법률관계의 당사자는 상대방의 이익을 배려하여 형평에 어긋나거나 신뢰를 저버리는 내용 또는 방법으로 권리를 행사하거나 의무를 이행하여서는 안 된다는 추상적 규범’을 의미하는 ‘신의칙’이 통상임금 사건과 관련하여서는 어떠한 기준 하에 적용될 수 있는가에 대하여 대법원은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지난 14일 대법원은 ‘인천 시영운수 소속 버스기사가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통상임금 관련 소송’에서 “통상임금의 재산정에 따른 근로자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를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는 이유로 배척한다면, 기업 경영에 따른 위험을 사실상 근로자들에게 전가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근로자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가 사용자에게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여 신의칙에 위배되는지 여부는 신중하고 엄격하게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19. 2. 14. 선고 2015다217287 판결 참조).”는 판결을 통해 통상임금 청구소송과 관련해서는 신의칙의 적용을 제한해 근로자들에게 다소 유리하게 판단할 뜻을 내비친 것이 전부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한진중공업 통상임금 판결은 신의칙 적용의 판단기준을 일부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인 100여건의 통상임금 사건에 대해서도 승패를 가늠하게 하는 하나의 시금석이 될 가능성이 높다.

본지가 입수한 판결문에 따르면, 대법원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① 이 사건 소송을 제기한 근로자들을 제외한 나머지 근로자들은 이른바 ‘임금채권의 시효’가 이미 완성되어 더 이상 회사 측에 이 사건과 같은 쟁점의 임금청구를 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는 점 ② 이 사건 근로자들이 청구하는 임금의 규모는 5억 원에 불과한 반면, 회사의 매출액은 매년 5조 ~ 6조원, 인건비는 1,500억 원이나 된다는 점 ③ 회사가 매년 보유하고 있는 현금성 자산도 800억 원이나 된다는 점 ④ 회사의 현금흐름을 보건대 2015년 이후 영업활동으로 인한 현금 유입이 원활하여 회사가 추가 법정수당을 변제할 재원이 충분하다고 보인다는 점 등을 근거로 회사가 이번 사건으로 직접적으로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충분한 근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확인되었다.

말하자면, 대법원은 향후에도 같은 쟁점으로 회사를 상대로 소를 제기할 근로자들이 더 있는지, 회사의 매출 규모, 인건비 및 현금성 자산 규모 대비 청구된 임금의 규모와 현금 흐름 등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사진=한진중공업 제공

현재 이 사건은 원심 법원인 서울고등법원으로 파기 환송된 상태로, 서울고등법원은 대법원이 파기 환송한 취지에 따라 이 사건 근로자들이 청구한 임금청구에 대하여 ‘신의칙’이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판단을 내리게 된다. 그러나 지금의 한진중공업 경영 상황으로 본다면 원심 법원인 서울고등법원은 이번에는 오히려 한진중공업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높다. 소송의 대상이 되는 사실관계에 대한 판단은 ‘사실심변론종결시’ 즉 ‘사실심’인 항소심 선고가 내려지기 직전의 마지막 변론기일을 기준으로 하는데, 대법원이 지난달 선고에서 판단 기준으로 삼은 ‘사실심변론종결일’인 2016년 6월 17일 당시와 2019년 현재의 한진중공업 경영 상황은 현격한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한진중공업은 지난 2월 자회사인 필리핀 수빅 조선소 회생신청으로 자본잠식이 발생해 주식 매매거래가 일시 정지된 적이 있으며, 이러한 경영 부실에 대한 책임을 물어 대표이사를 교체하기도 하였다.

앞으로 한진중공업이 어느 정도 수익을 회복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만약 다시 원심 판결이 내려지기 전까지 대법원이 ‘판단시점’으로 삼았던 2016년 6월 17일 이전의 상태를 회복하지 못한다면, 원심 법원은 대법원의 제시한 ‘신의칙’적용에 대한 판단기준을 따르면서도, “2016년 당시와 달리 지금은 이 사건 근로자들이 청구한 임금 청구가 한진중공업의 경영상황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취지로 다른 판단을 내릴 수도 있는 것이다. 끝날 때까지는 끝났다고 할 수 없는 한진중공업 통상임금 청구 사건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