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스 위의 정물 2014, 캔버스에 유화, 82×82㎝(The Still Life on the Box 2014, Oil on canvas, 82×82㎝)

구자승 작가가 정물을 그릴 때 보여주는 태도가 빠르게 흐르는 시간을 정지시키며 흔들리는 대상을 돋보기로 보듯이 정확하게 보고자 한다. 이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자 했던 동어반복(同語反覆)의 사상과도 맥락을 같이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구자승의 정물은 자연을 바라보는 냉엄하면서도 인색하기조차 한 객관주의 화풍인 그의 풍경화나 인물화에서 보듯이 전반적으로 삶의 일상성 속에서 초탈해 있고자 하는 의지를 반영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지기도 한다.

▲ 소머리 있는 정물 2013, 캔버스에 유화, 162×97㎝(The Still life with Cow Atom 2013, Oil on canvas, 162×97㎝)

그의 그림을 보면서 고대 그리스시대의 화가들이 고수했던 이지주의(理智主義) 화풍을 연상케 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제우시스는 한 소년이 포도를 들고 있는 그림을 그렸다.

그랬더니 날아가던 새가 그 포도를 들고 있는 그림을 그렸다. 그랬더니 날아가던 새가 그 포도를 쪼으려고 달려들었다.

새의 눈에는 그려진 포도가 진짜 자연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신라시대의 솔거이야기를 연상케 하지만, 그려진 대상이 살아있는 자연처럼 보이게 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포도는 살아있는 것으로 보았지만, 포도와 함께 그려진 소년을 새가 보지 못했다는 것은 이야기의 모순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 유산 민경갑 선생님과 호제뷰어 프랑스 평론가와 함께

그러나 정말 자연을 살아있는 것처럼 그리려고 한다면, 자연과 자연이 아닌 것이 변별되어야 한다는 것도 당연한 이치이다. 제우시스의 그림에서 이지주의적인 냄새를 맡게 되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구자승(ARTIST KOO CHA SOONG,具滋勝,서양화가 구자승,구자승 작가,구자승 화백,KOO CHA SOONG)의 정물에서도 그런 냄새가 난다.

△글=박용숙|동덕여대 교수,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