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이 시작되는 시기에 다행히 미세먼지가 없어 기쁜 마음으로 오늘의 도시풍수 칼럼을 연재해 본다.

지난번 암사동에서 ‘부원군파묘’를 잠깐 언급한 적이 있다. 오늘은 그 묘와 붙어 있는 고덕동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 한다.

참고로 '부원군파묘'는 암사동편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으니 본지의 암사동 편을 참고하기 바란다.

먼저 강동구 고덕동의 작명의 유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여기에는 한 명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는 고려 말기 형조참의를 지낸 ‘이양중(李養中)’ 이다.

그는 태조 이성계의 건국을 반대하여 이곳에 숨어 살던 터인데 그 나라에 대한 충절과 절개가 곧아 사람들이 그를 추앙하였다. 高德洞 한자명이 높을고에 큰 덕이다. 이양중의 나라에 대한 절개가 얼마나 높았으면 지역 명이 높고 큰 덕이라는 이름이 작명되었을지 참으로 그가 궁금해진다.

그에 대해 좀 더 알아보자. 출생과 사망은 알 수 없다.

본관은 광주(廣州) 이고 자는 자정(子精) 호는 석탄(石灘)이다. 여울탄이라는 한자를 사용하는 것을 보니 물가임이 분명한데 고덕동이 물가에 있는 것을 보아 그의 호에는 고덕동이라는 터가 영향을 주지 않았는가 추측된다.

그는 고려수절신((高麗守節臣)중 한 사람인데 고려수절신이란 고려가 멸망하기 전 과 후 태조 이성계의 등극을 반대하며 살해되거나 두문동에 들어간 이들을 말하며 이들은 두문동 외 고향으로 내려가 붓을 꺾고 농사를 지은 사람들을 말한다. 그의 출생과 사망의 정보가 정확하지 않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고려수절신이었던 것을 미루어 살해당한 것을 의심도 해 보았다. 그러나 그의 과거 행적을 보면 그랬을 것 같진 않다.

그 이유는 어려서부터 태종 이방원(李芳遠)과 친구로 지냈으며, 태종이 즉위한 뒤 한성부윤(漢城府尹)으로 임명하였으나, 벼슬을 받지 않았고 이후에도 태종이 여러 차례 그가 사는 곳을 찾았으나, 한결같이 평복 차림에 직접 빚은 술로 대접하면서 벼슬하기를 꺼렸기 때문에 태종도 고려 왕조에 대한 이양중의 뜻을 꺾지 못하였다. 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막역하게 지냈던 그를 살해했을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요즘 같은 분위기면 어릴 적 함께 자란 친구가 왕이 되었다면 얼씨구나 좋다 하면서 부와 명예를 탐했을 법도 한데 그렇지 않았고 그 점이 일반인들에게 귀감이 되어 지명으로까지 불릴 정도면 그의 절개가 참으로 대단했다는 점이 인정된다.

이러한 지역명과 인물을 자랑하는 고덕동은 한강을 기준으로 위치상 '부원군파묘' 옆으로 강일IC까지 그리고 고덕역까지 위치한다.  3.74㎢, 인구 4만 1284명(2008)이고 강동구의 최동북단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강동구청장이 이정훈 청장인데 그의 관상이 역마살이 많고 청수(淸水)한 관상임을 감안하면 많이 돌아다녀 지역을 개발하기 위한 목적이 뚜렷해 보이는 관상이다.

현재 강동구는 개발에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다. 

구청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4월에만 게시된 공사입찰 건수가 20건이 다소 넘어 보였다. 

앞서 언급했듯이 고덕동은 한강을 인접해 있다.

한강에 인접했다는 것은 풍수적으로 재물을 상징하는 특히 큰 물줄기인 한강은 큰 부를 불러다 줄 수 있는 지역이라는 점 그리고 조망권이라는 부동산가치 상승의 요인으로 작용될 수 있는 점. 

인근 녹지와 공원이 많은 일종의 숲세권과 같은 자연친화적이라는 점. 5호선 고덕역이 현재 개통되어 있다는 점. 등은 이곳이 도시인프라에 입장에서 주거지역으로 그 도시적 형태가 잘 잡혀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도시풍수의 중요요건인 세를 얻었는가를 살펴보면 한강으로 인해 득수(得水)는 했지만 산의 기세를 얻진 못했다. 

인근에 강한 산세가 금암산 기운인데 이 산과 고덕동의 거리가 6km가 넘고 길동자연생태공원의 낮은 언덕과 금암산과의 거리로 보아 그 산세의 기운이 끊겨 있기 때문이다.

만약이 이 터가 산세의 기운까지 맞닿아 있었다면 참 좋았겠다 는 생각을 했지만 부동산개발에 있어서는 좀 다르다. 물을 얻고 산을 얻은 곳은 부동산개발에 용이하지 못하고 많은 면적을 갖기 어렵다. 때문에 득수 즉 물을 얻은 조망권과 주거지로써의 건강한 토지조성의 제법 큰 개발 면적이 향후 고덕동의 개발을 더욱 가속화 할 것이라 생각한다.

즉 풍수상 다소 아쉽지만 부동산개발과 투자로써의 가치는 더욱 높아졌다는 이야기다.

물을 얻은 위치상에서 튀어나오거나 들어간 곳이 좋은데 이곳은 튀어나오는 곳에 위치는 했으나 볼록한 자리는 아니기에 다소 아쉽지만 이후 튀어나온 미사지역의 개발에 따라 빛을 발 할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양중의 굳은 절개처럼 고덕동이 산업지구보다는 주거지역으로써 보다 쾌적하고 충신이 많이 배출 될 수 있는 학군으로 발달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보았다.

‘부원군파묘’도 있고 이양중이 배출된 터인걸 보면 인재가 많이 배출 될 수 있는 지역의 기운이 높은 터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