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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대목] “스티브 잡스는 거짓말쟁이다”
   

◇스티브 잡스가 2005년 6월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졸업식 축사를 하는 모습. 출처=스탠퍼드대 홍보영상

2005년 6월 스티브 잡스가 미국 스탠퍼드대 졸업식 축사를 위해 스타디움에 마련된 강단에 올라섰다. 청바지와 샌들 차림을 졸업가운으로 가린 잡스는 운집한 2만 3000명 앞에서 유명한 연설을 했다.

“여러분은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찾아야 합니다.(중략) 아직 그런 일을 찾지 못했다면, 계속해서 찾아보세요. 현실에 안주하지 마세요. (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If you haven't found it yet, keep looking. Don't settle.)”

미 조지타운대 컴퓨터공학과 칼 뉴포트 교수는 저서 <열정의 배신>(부키 펴냄)에서 잡스의 연설이 커리어와 직업 선택에 관한 잘못된 조언인 ‘열정론(Passion Hypothesis)’을 부추겼다고 비판한다. 열정론이란 ‘직업에서 행복을 얻으려면, 우선 자신의 열정이 어디로 향하는지 파악한 후 그 열정에 맞는 직업을 찾아야 한다’는 가설이다.

뉴포트 교수는 “열정론은 무책임하고 위험하기까지 하다”고 주장한다. 자신이 탐구한 결과 대부분의 성공한 사람들은 애초에 열정을 품고 있지 않았으며, 열정은 일을 사랑하게 되는 방법과도 무관하고, 열정론을 맹신하다가는 현실의 벽에 부딪혀 실패하기 십상이라고 지적한다.

뉴포트 교수는 스티브 잡스조차 열정론을 따르지 않았다고 ‘폭로’한다. 그에 따르면, 젊은 시절의 잡스는 IT회사 창업에 열정을 가진 인물로는 보기 어려웠다. 오리건주에 있는 리드칼리지 재학시절 잡스는 장발에 맨발 차림으로 미국역사와 댄스를 연구하고 동양 신비주의에 심취해 있었다. 사업이나 전자 기기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대학 중퇴 후 한동안 수련공동체 ‘올 원 팜’을 다니며 돈벌이를 위해 비디오게임회사 ‘아타리’의 야간 근무자로 일했다. 그 일을 그만두고는 수개월간 인도로 영적 여행을 다녀와 ‘로스 앨토스 젠 센터’에서 선(禪) 수련을 했다.

1974년 컴퓨터 시분할 업체 ‘콜 인 컴퓨터’의 알렉스 캄라트 CEO가 IT전문가 스티브 워즈니악에게 고객용 단말기 디자인을 의뢰했다. 워즈니악은 친구인 잡스에게 그 일을 맡겼다. 그런데, 1975년 가을 잡스가 아무 말 없이 수련공동체로 가버렸다.

그 일이 있고 나서 ‘파퓰러 일렉트로닉스’라는 잡지 표지에 세계 최초의 조립식 컴퓨터가 소개됐다. 컴퓨터광이라면 누구나 집에서 만들 수 있는 조립모형 세트 컴퓨터가 등장한 것이다. (당시 하버드대생 빌 게이츠는 이 새로운 컴퓨터에 필요한 프로그래밍 언어인 베이직을 개발하는 회사를 세웠다. 바로 마이크로 소프트(MS)다.)

잡스는 워즈니악에게 조립식 컴퓨터의 회로판을 디자인하여 지역 애호가들에게 판매하자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처음 계획은 회로판을 개당 25달러에 만들어 50달러에 파는 것이었다. 100개를 팔면 제작비와 디자인비를 제하고 1000달러라는 짭짤한 이문이 남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자기 일로 바빴던 워즈니악은 남는 자투리 시간을 활용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후 전설로 내려오는 스토리가 펼쳐진다. 어느 날 잡스는 맨발로 마운틴뷰의 컴퓨터가게 ‘바이트숍’을 찾아가 자신들이 만든 회로판을 팔아달라고 제안했다. 그러자 가게 주인 폴 터렐은 아예 조립까지 끝낸 완제품 컴퓨터를 가져오면 대당 500달러에 사주겠다고 역제안을 했다. 납품 요구물량은 50대(!)나 됐다.

이를 계기로 잡스는 예상보다 많은 돈을 벌었다. 잡스는 본격적으로 스타트업 설립을 위한 자금마련에 나서게 됐다. 저자의 말마따나 “예기치 못한 횡재 덕에” 애플이 탄생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잡스의 전기(傳記)작가 제프리 영은 “그들의 계획은 좀스럽고 별 볼 일 없었다. 세상을 집어삼키려는 야심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저자는 “만약 젊은 시절의 잡스가 자신의 조언대로 오직 자신이 사랑하는 일만 추구했다면, 지금쯤 그는 로스 앨토스 젠 센터에서 가장 유명한 강사가 되어 있었을지 모른다”고 말한다.

한편, 저자는 "열정을 따르지 말라"면서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실력을 쌓고 ▲지위보다 자율성을 추구하며 ▲작은 생각에 집중하고 큰 실천으로 나아가게 된다면 누구나 자신의 일을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조언한다.

주태산 주필  |  joots@econovill.com  |  승인 2019.05.05  17:3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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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의 배신, #주태산, #스티브 잡스, #스탠퍼드대, #열정론, #워즈니악, #빌 게이츠, #제프리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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