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동규 기자] LG화학이 2차전지 관련 핵심기술 등 영업비밀 보호를 위해 SK이노베이션을 미국 법원에 제소했다. LG화학은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International Trade Commission)와 미국 델라웨어주 지방법원에 SK이노베이션을 ‘영업비밀(Trade Secrets) 침해’로 29일(현지시간) 제소했다고 30일 밝혔다.

▲ LG화학 배터리 생산라인에서 연구원들이 배터리를 보고 있다. 출처=LG화학

LG화학은 ITC에 2차전지 관련 영업비밀을 침해한 SK이노베이션의 셀,팩, 샘플 등의 미국 내 수입 전면 금지를 요청하는 한편, SK이노베이션의 전지사업 미국 법인(SK Battery America) 소재지인 델라웨어 지방법원에 영업비밀침해금지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LG화학, 2차전지 기술 유출 관련 구체적 자료 발견

이번 소송은 LG화학이 면밀한 조사 결과 SK이노베이션이 전지사업을 집중 육성하겠다고 밝힌 2017년을 기점으로 2차전지 관련 핵심기술이 다량 유출된 구체적인 자료들을 발견했기 때문에 제기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서 소송을 제기한 이유는 미국 ITC 및 연방법원이 소송과정에 강력한 ‘증거개시(Discovery)절차’를 두어 증거 은폐가 어렵고, 이를 위반 시 소송결과에도 큰 영향을 주는 제재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증거개시절차는 미국소송의 당사자는 보유하고 있는 소송과 관련된 각종 정보 및 자료에 대해 상대방이 요구할 경우 제출할 법적 의무가 있으며, 이를 통하여 소송 대리인들은 상대방의 증거자료에 접근이 가능한 것을 말한다.

LG화학이 제기한 2차전지 영업비밀 침해에 따른 수입금지요청에 대해 ITC가 5월 중 조사개시 결정을 내리면 내년 상반기에 예비판결, 하반기에 최종판결이 날 것으로 예상된다.

LG화학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2017년부터 불과 2년 만에 LG화학 전지사업본부의 연구개발, 생산, 품질관리, 구매, 영업 등 전 분야에서 76명의 핵심인력을 대거 빼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는 LG화학이 특정 자동차 업체와 진행하고 있는 차세대 전기차 프로젝트에 참여한 핵심인력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이 LG화학의 주장이다.

LG화학은 지금도 SK이노베이션이 핵심기술 유출 우려가 있는 LG화학의 핵심인력을 대상으로 추가적인 채용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의 입사지원 서류에는 2차전지 양산 기술 및 핵심 공정기술 등과 관련된 LG화학의 주요 영업비밀이 매우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담겨 있는 것을 확인했다”면서 “입사지원 서류에는 LG화학에서 수행한 상세한 업무 내역은 물론 프로젝트 리더, 프로젝트를 함께한 동료 전원의 실명도 기술하도록 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LG화학은 “이를 위해 입사지원 인원들은 집단적으로 공모해 LG화학의 선행기술, 핵심 공정기술 등을 유출했으며 또한 이직 전 회사 시스템에서 개인당 400여건에서 1900여건의 핵심기술 관련 문서를 다운로드 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 SK이노베이션 미국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 기공식. 출처=SK이노베이션

LG화학 “SK이노베이션에 경고했지만 대처안돼 법적 대응”

LG화학은 이번 법적 대응에 앞서 2017년 10월과 2019년 4월 두 차례 SK이노베이션측에 내용증명 공문을 통해 ‘영업비밀, 기술정보 등의 유출 가능성이 높은 인력에 대한 채용절차를 중단해 줄 것’을 요청했다. 또 ‘영업비밀 침해 사실이 발견되거나 영업비밀 유출 위험이 있는 경우 법적 조치를 고려할 것’임도 경고했다.

LG화학은 “자제요청에도 SK이노베이션이 핵심인력 채용과정에서 유출된 영업비밀 등을 2차전지 개발 및 수주에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일 뿐 아니라, 이러한 행위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해 법적 대응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은 이들을 통해 유출된 LG화학의 영업비밀 등을 이용하여 선두업체 수준의 자동차용 2차전지 개발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대폭 절약했고, 이런 점들이 최근 미국을 포함한 주요 고객사들로부터 글로벌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시작한 배경이 된 것으로 추측된다”고 덧붙였다.

LG화학 관계자는 “이번 사안은 개인의 전직의 자유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서, LG화학의 2차전지 핵심 인력을 대거 채용하고 이들을 통해 조직적으로 영업비밀을 유출해간 심각한 위법 행위”라고 밝혔다.

▲ 입사서류 핵심기술 유출 사례. 출처=LG화학

국내법원도 영업비밀 유출 우려, ‘전직금지 결정’ 내려

LG화학은 올해 초 대법원에서 2017년 당시 SK이노베이션으로 전직한 핵심 직원 5명을 대상으로 제기한 전직금지가처분 소송에서 최종 승소한 바 있다.

재판부는 영업비밀 유출 우려, 양사간 기술 역량의 격차 등을 모두 인정해 지난해 이례적으로 장기간에 해당하는 ‘2년 전직금지 결정’을 내렸고, 대법원이 LG화학의 승소를 최종 확정했다.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은 “현재 세계 최고 수준인 LG화학의 2차전지 사업은 1990년대 초반부터 30년에 가까운 긴 시간 동안 과감한 투자와 집념으로 이뤄낸 결실”이라면서 “이번 소송은 경쟁사의 부당 행위에 엄정하게 대처해 오랜 연구와 막대한 투자로 확보한 핵심기술과 지식재산권 보호를 위해 불가피한 조치고, 정당한 경쟁을 통한 건전한 산업 생태계 발전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은 현재 LG화학의 이같은 대응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표하고 있지는 않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30일 오전 "현재 상황 파악중"이라면서 "관련 내용이 확인되는대로 입장표명 등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