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란 해밀턴이 잘 드러나지 않은 기업들에 투자하는 벤처 캐피털 회사 백스테이지 캐피털(Backstage Capital)을 창업했다.   출처= Money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위험을 감수한 결정은 때로는 성공하고 때로는 실패한다. 때로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위험을 감수한 최고경영자를 다룬 CNN의 ‘리스크 테이커’(Risk Taker) 특집 시리즈를 소개한다.

알란 해밀턴은 실리콘 밸리에서도 특별한 존재다. 단지 그녀가 백인 남성이 주를 이루는 분야에서 보기 드문 흑인 여성 투자자 때문이라는 것뿐만 아니라, 여성, 소수자, LGBTQ(성소수자) 기업가들에게 투자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38세의 해밀턴이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다른 길을 걷게 했고 성공하게 만들어 주었는지를 증명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그녀는 자기 임무를 조용히 수행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녀는, 성공한 사람들의 통념적 특성에 따라 미래의 유망 기업가를 찾는 관행을 의미하는 이른 바 ‘패턴 매칭’(pattern matching)을 하는, 그러니까 다음 번 마크 저커버그를 찾는 기존 투자자들의 방식을 기꺼이 거부한다.  

해밀턴이 가는 길은 누군가에게는 더 위험해 보일지 모르지만, 적어도 그녀 자신에게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자평한다.

벤처캐피털인 백스테이지 캐피털(Backstage Capital)의 창업자인 해밀턴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모든 사람을 다 만족하게 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하려고 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 2015년 출범한 백스테이지 캐피털은 창업자가 LGBTQ, 여성, 유색인종이어서 남들이 잘 관심을 갖지 않는 회사에 투자한다. 그러나 회사는 이미 첫 번째 벤치마크인 “2020년까지 100개의 스타트업에 투자한다”는 목표를 초과했다. 지난 2018년 5월에 백스테이지 캐피털은 1년 반 일찍 이 목표를 충족했으며, 100개의 스타트업에 400만 달러(45억원)를 투자했다고 발표했다.

물론 그 이후에도 백스테이지의 투자는 계속 늘어났다. 여기에는 흑인 여성이 창업한 회사에만 투자하는 3600만 달러 규모의 펀드와 다양한 스타트업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창업 후 3개월에 회사를 확장할 수 있도록 돕는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accelerator program)에 대한 투자도 포함되어 있다.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은 지난 3월에 4개 도시에서 출시되었다.

500달러 수표로 첫 투자를 하기까지 해밀턴은 우여 고절의 삶을 살았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그녀는 집 없는 노숙자였다. 공항, 벤치, 친구네 소파 등에서 닥치는 대로 밤을 보냈다.

"정말 롤러코스터 같은 삶이었지요. 한없이 깊은 바닥까지 갔었으니까요.”

그녀에게 기술 투자로 가는 길은 평탄하지 않았다. 2012년, 해밀턴은 라이브 음악 프로덕션에서 일하면서 투자의 세계를 처음 엿보았다. 코미디언 엘렌 드제너러스, 배우 애쉬튼 커처, 음악 매니저 트로이 카터 같은 유명인사들이 그 업계의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것을 본 것이다.  

"저 사람들은 지금 무슨 일을 하는 거지? 도대체 스타트업이란게 뭐야? 라고 생각했지요.”

그 호기심은 그녀를 스타트업, 기업가 정신, 벤처캐피털에 대한 연구 등, 몇 년 동안 정보 추구의 소용돌이로 그녀를 이끌었다. 그러다 마침내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흑인 창업자들과는 대화조차 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들이 무슨 사업을 하든 말이지요. 하지만 흑인들이 하는 사업 가운데에는 여타 백인들보다 훨씬 뛰어난 것도 있었습니다.”

▲ 유망 기업을 소개하는 잡지 패스트 컴퍼니(Fast Company)의 표지 모델을 장식한 알란 해밀턴.   출처= Fast Company

데이터는 해밀턴이 본 것이 옳다는 것을 뒷받침한다. 예를 들어 흑인 여성 창업자들은 경쟁자들에 비해 자금 조달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프로젝트 다이앤(Project DIANE, Diversified Information and Assistance Network)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에 스타트업들의 최초 자금조달 라운드의 평균 자금조달 액수는 114만 달러였지만, 흑인 여성 창업자의 자금조달 평균 금액은 4만 2000달러에 불과했다.

하지만 해밀턴은 자신의 일이 자선 사업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투자자인 나탈리 몰리나 니뇨와 작가 사라 그레이스가 쓴 2018년 책 <리프프로그>(Leapfrog, 도약하기)에는 해밀턴의 이런 말이 실려 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서 수익을 찾고 있습니다. 나도 그들처럼 ‘패턴 매칭’을 할 수도 있지만, 40대의 흑인 여성도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도 있습니다. 대개의 벤처 캐피털은 그렇게 할 수 없지요. 그들은 후드 티를 입은 백인 남성을 보고 싶어하니까요."

해밀턴은 자신의 신념에 대해서는 대담하고 타협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사물을 보는 그대로 부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것이 그녀가 기술 산업에서 상쾌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이유다. 벤처 투자자 리차드 커비의 연구에 따르면, 벤처 캐피털 투자자의 대부분은 백인이고 그들 중 40%는 하버드나 스탠포드 출신이다.

해밀턴이 그런 곳에서 일하고 있다. 그녀는 텍사스 출신이고 대학에 가지 않았다.

그녀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정말 의도가 좋고 실행력이 뛰어난 백인들이 많다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그들이 해야 할 일을 했다고 해서 그들에게 환호를 보내는 것만이 내가 할 일의 전부는 아니다"고 말했다.

해밀턴은 페이팔(PayPal)과 데이터 분석업체 팔란티르(Palantir)의 공동 설립자인 억만장자 기업가 피터 티엘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강경하게 밝힌 적이 있다. 티엘은 도널드 트럼프의 대선 출마를 지지했고 그의 인수위원회 멤버였다.

해밀턴은 2016년 트위터를 통해, 티엘이 파트타임 고문으로 활동했던 실리콘밸리 액셀러레이터인 Y 콤비네이터(Y Combinator)에 기업인을 추천하는 것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해밀턴이 자신의 회사 백스테이지 캐피탈 초기에 도와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시했던 Y 콤비네이터의 샘 알트만 대표가 정치적 견해에서 티엘과 관계를 끊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Y 콤비네이터는 2017년 11월 티엘과의 파트너 프로그램을 종료했다. 어쨌든 해밀턴은 티엘과 관련된 창업 기업에 대한 투자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단순한 결정은 아니었지만 판단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나 혼자서 사는 세상이 아니니까요."

현재 로스앤젤레스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할리우드 최고의 크리에이티브 아티스트 에이전시 (Creative Artists Agency)에 소속되어 있는 해밀턴은 "8살짜리 흑인 아이들이 회사를 시작하거나 엔지니어로 일하는 것에 흥미를 갖도록 하게 하기 위해 향후 텔레비전 프로그램 제작이나 책을 출판할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