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글로벌 TV 시장의 트렌드를 확보하기 위한 다양한 플레이어들의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최근 중국의 공습과 TV의 본질적 경쟁력을 묻는 화두가 부상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가장 최근의 트렌드와 이에 대비하려는 제조업체의 신경전에도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 마이크로LED가 보인다. 출처=삼성전자

키워드 하나 "중국이 대세?"
29일 업계에 따르면 스페인 우엘바에서 최근 열린 IFA 글로벌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프레드릭 랜진 중국 TCL 유럽 세일즈 앤 마케팅 제너럴 매니저는 중국 TV 경쟁력이 세계를 호령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그는 "TCL은 지난해 글로벌 TV 시장에서 2860만대의 출하량을 기록, 2위에 올랐다"면서 "앞으로 글로벌 시장 공략에 더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조사업체에 따라 삼성과 LG에 이어 TCL이 3위에 이름을 올리기도 하지만, 그 차이는 근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TV 굴기는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다. TCL은 물론 하이얼과 하이센스 등 전통의 강자들이 꾸준히 자국 시장에서 몸집을 불리고 있으며, 그 연장선에서 글로벌 시장 정복전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하이얼은 2016년 미국 GE의 가전 부분을 인수해 모두를 놀라게 했으며 최근에는 이탈리아의 강호 캔디의 지분을 인수하기도 했다. 메이디와 스카이웍스도 유럽 제조업체들을 연이어 인수합병하며 몸집을 키우는 중이다. 그 결과 TV부터 세탁기, 청소기 등 다양한 라인업 경쟁력 강화를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다.

중국 TV 굴기가 거세지고 있으나, 관건은 프리미엄 TV 시장이다. 중국이 중저가 TV 라인업을 통해 글로벌 시장 점유율 강화에 나서고 있으나 프리미엄 TV 시장에서는 사실상 맥을 못추기 때문이다. 당장 TCL의 경우 지난해 2860만대의 TV를 출하해 2위, 혹은 3위 사업자로 등극했으나 판매 금액 기준으로는 삼성전자와 LG전자, 일본의 소니에 이어 5위다. 판매 금액 기준 점유율은 삼성전자가 29%, LG전자가 16.4%, 소니가 10.1%로 빅3를 형성한 가운데 하이센스가 6%, TCL은 5.7%에 불과하다. 초대형 TV 시장으로 하면 TCL은 5위권 밖이다.

모든 산업군에 통용되는 말이지만, 프리미엄 제품의 경우 마진율이 높은 편이다. 아이폰 판매가 지속적으로 떨어져도 애플이 이를 통해 기록적인 영업익을 기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론적으로 중국 TV 제조사는 중저가 라인업 중심으로 박리다매에 특화됐으며, 프리미엄 TV 시장에서는 아직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하이얼과 하이센스, TCL과 스카이웍스 등 중국 TV 제조사들도 대형 프리미엄 TV 시장의 문을 지속적으로 두드리는 한편 유럽의 가정 명가를 속속 인수하며 역량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에 방심은 금물이지만, 아직은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영향력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 한종회 사장이 프리미엄 TV를 소개하고 있다. 출처=삼성전자

키워드 둘 "OLED냐 QLED냐"
삼성전자와 LG전자가 프리미엄 TV 시장을 양분한 상황에서, 두 제조업체의 판이한 전략도 눈길을 끈다.

삼성전자는 사실상 홀로 QLED TV 진영을 이끌고 있다. 프리미엄 TV 시장에서 QLED TV에 주목해 홀로 시장 외연을 넓히고 있다는 뜻이다. 시장조사업체 IHS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2017년 QLED TV 시장에서 86%의 점유율을 가지고 있었으나 2018년 95%가 넘는 점유율로 성장했다. 2017년 점유율 7.5%를 달리던 하이센스가 2018년 0.8%로 떨어지는 등 진영 이탈이 가속화되는 상태에서 삼성전자가 QLED TV 시장의 유일한 플레이어로 남는 분위기다. 하이센스는 심지어 OLED TV 출시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QLED TV 시장의 성장을 확인했다고 강조한 바 있다. 한종희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VD) 사장은 29일 서울 강남구 가로수길 옥림빌딩에서 열린 TV 신제품 및 팝업스토어 개장 기자간담회에서 "QLED TV와 마이크로LED 전략을 동시에 활용하는 투트랙으로 갈 것"이라면서 "삼성 혼자서 QLED TV를 이끌 수 있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한 사장은 지난 2월 8일 디지털시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도 비슷하게 말했다. 그는 “2018년 4분기 QLED TV판매량이 3분기에 이어 OLED TV 판매량을 넘어섰고 연간으로도 OLED 판매량을 앞질렀다”면서 “세트메이커(TV제조사) 입장에서 최대한 소비자를 이해하고, 소비자의 욕구를 따라가 주는 것이 관건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추종석 삼성전자 VD사업부 부사장도 당시 “2018년에는 TV시장에서 삼성전자는 초대형, QLED TV전략으로 세계 1위를 유지했다”면서 “올해도 초대형과 QLED를 중심으로 리더십을 유지하면서 테크 리더십까지 확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 IFA 2019에서 LG 시그니처가 소개되고 있다. 출처=LG전자

삼성전자가 홀로 QLED TV 진영을 이끄는 가운데 LG전자는 OLED TV 진영을 풍부하게 만들고 있다. LG전자는 OLED 진영에 다양한 플레이어들이 합류하는 점에 기대를 걸고 있다. 이 과정에서 LG전자의 OLED 내부 점유율은 다소 하락하고 있으나 생태계 전략이 가동되면 더 큰 꿈을 꿀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홀로 QLED를 견인하는 삼성과는 온도차이가 있다. OLED TV 고가 논란을 걷어내기 위해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하는 한편, 생태계 전략에서 오는 '한 방'을 기대하는 모양새다.

▲ 더 세로가 보인다. 출처=삼성전자

키워드 셋 "트렌드 읽기 어려워"
QLED TV 진영을 이끄는 삼성전자와 OLED TV 진영을 이끄는 LG전자가 전체 글로벌 프리미엄 TV 시장을 선도하는 가운데, TV 미래 트렌드에 대한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프리미엄 TV의 특징 중 하나인 초고해상도 TV 기능에 대한 시장의 반응이 눈길을 끈다. 삼성전자는 일찌감치 8KTV에 집중해 이를 육성할 방침을 세웠다.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시에 위치한 페어몬트 호텔에서 열린 삼성전자 주요 신제품 발표 현장에서도 비슷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당시 QLED 8K가 삼성전자 TV의 주력 라인업으로 크게 강조됐기 때문이다. LG전자는 하반기 8KTV를 출시한다.

문제는 8KTV 시장의 미래다. 시장조사업체 IHS는 최근 보고서에서 올해 8KTV 출하량이 30만9000대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기존 33만8000대보다 약 8.5% 낮아진 수치다. 올해 글로벌 TV 시장에서 8KTV는 전체 TV에서 약 0.14%의 비중에 머물 것으로 예상되며 2023년에도 판매 점유율이 2.7%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판매 대수는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보이지만 그 존재감은 미약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초고화질 TV에 대한 일반의 '니즈'가 충분하지만, 아직 관련 콘텐츠가 제대로 준비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당장 8K로 볼 수 있는 콘텐츠가 적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이러한 의구심에 대비하기 위해 업스케일링 카드를 빼들었다. 실제로 올해 출시되는 삼성전자 QLED 8K TV는 삼성전자의 반도체 기술에 기반한 ‘퀀텀 프로세서 8K’가 탑재돼 있다. 퀀텀 프로세서 8K는 고해상도와 저해상도 영상간 특성 차이를 머신러닝 기반으로 분석한 다음 최적의 영상 필터를 생성해 주는 기술이다. 입력되는 영상의 화질에 상관 없이 8K 급의 시청 경험을 제공해 줄 수 있는 프로세서라는 설명이다. LG전자도 웹OS 2.0을 비롯해 LG전자가 자랑하는 인공지능 프로세서는 ‘2세대 인공지능 알파9'을 소개하고 있다. 100만개 이상 콘텐츠를 학습해 분석한 딥러닝 기술이 더해진 프로세서로 원본 영상의 화질을 스스로 분석하고, 그 결과에 맞춰 영상 속 노이즈를 제거해 어떤 영상을 보더라도 생생한 화질을 구현해 준다는 설명이다. 또 주변 밝기도 감지해 콘텐츠의 밝기도 세밀하게 조절해 준다. 그러나 이는 기존 콘텐츠의 화질을 인공지능 등을 통해 억지로 '좋게 보여주는' 기술일 뿐, 콘텐츠 부족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나아가 4K와 8K가 인간의 시각으로는 뚜렷히 구분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는 8KTV 시장 안착에 어려움이 될 전망이다.

초고화질 TV에 대한 각 제조사의 행보에 온도차이가 보이는 가운데, 결론적으로 프리미엄 TV 시장의 트렌드는 생활밀착형으로 가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삼성전자가 공개한 더 세로(The Sero), 더 세리프(The Serif), 더 프레임(The Frame)이 그 주인공이다. QLED를 적용한 해당 라인업 중 더 세리프와 더 프레임은 이미 존재하는 모델이다. 삼성전자는 예술적 심미성과 집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감성을 무기로 일종의 라이프스타일 TV를 창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자연스럽게 우아함을 강조하는 인테리어의 중 하나로, TV가 생활밀착형 플랫폼으로 안착하는 순간이다.

더 세로의 등장은 더 특별하다. NFC(근거리 무선 통신) 기반의 간편한 미러링(Mirroring) 기능 실행만으로 모바일 기기의 화면과 세로형 스크린을 동기화해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쇼핑, 게임, 동영상 등 다양한 콘텐츠를 몰입감 있게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일반적인 TV 시청이 아닌, 모바일 영상을 TV로 미러링해 사용하는 용도로 보인다. 4.1채널ㆍ60와트의 고사양 스피커가 탑재됐으며, 스마트폰에 저장되어 있는 음악뿐 아니라 삼성뮤직 등 다양한 온라인 음악 서비스를 연동할 수 있는 지점도 강점이다. TV를 시청하지 않을 때에는 이미지·사진·시계·사운드 월 등의 콘텐츠를 띄워 개성있는 인테리어를 연출할 수 있고, 인공지능 플랫폼 빅스비와 리모컨의 내장 마이크를 통해 음성만으로 간편하게 각종 기능을 제어할 수 있다. 모바일의 세로 영상에 대응하기 위한 콘텐츠 제작자들의 노력은 화제가 된 바 있지만, 제조사가 이러한 트렌드에 집중한 사례는 거의 없었다. 삼성전자의 고민이 묻어나는 지점이다.

한 때 TV 업계에서는 커브드 TV가 각광을 받았으나, 이는 강한 몰입도를 보장해도 '모두가 함께 시청하는 TV'라는 정체성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결국 삼성전자와 LG전자 모두 커브드 TV를 포기하는 한편, 홀로 작업을 하는 커브드 모니터에 집중하는 등 로드맵을 선회하고 있다. TV가 가진 강력하고 독특한 정체성을 잡아내는 한편 화질 및 콘텐츠 수급에 있어 유연한 사고방식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현재 글로벌 프리미엄 TV 시장의 고민이자, 비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