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불편하다. 날카로워도 어쩔 수 없다. 그게 사실이고, 진실이다. 이 글에 있는 내용을 최대한 수용하여, 앞으로 우리 개개인 뿐 아니라, 소속된 조직에 대해서도 이제 다른 고민을 할 때이다.

어떻게 하면 성장할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변화가 필요하다. “어떻게 하면, 오랫동안 가치를 잃어버리지 않게 존재할 수 있을까?”로 말이다. 분명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변화가 필요한 것은 확실하다.

 

좀처럼 정리가 안되는 대한민국

지금 대한민국은 ‘정리가 안되는 느낌’이다. 복잡다단한 현상으로 둘러 쌓여 해결해야 할 문제들은 산더미이다. 거기에 둘러 쌓여, 하루에도 수십 가지의 이슈가 나타난다. 발달한 정보기술 때문인지 실제 문제가 많은지 알 수 없지만, 그냥 아비규환이다.

분명 수십년 동안 고속 성장을 해왔고, 그 결과로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해주는 나라로, 국민소득 3만불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점차 어렵다고만 하니,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있다. 이 보다 소름 돋는 이야기는 없다. 대체 누가 어떻게 과거와 유사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는 말인가.

모두가 동의할지 모르지만, 우리는 나이 들고 있고, 과거와 유사한 생산성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점차 잃고있다. 실제 시장 속 지위를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다. 분명 세상은 변화를 했으니, 그에 맞춰서 나 또는 조직 또한 변한다고 하는데, 애초에 ‘리드’하지 못했기에, 무리가 될 수 밖에 없다.

모두가 고속 성장에 따른 좌 또는 우 방향의 성공만을 경험하다 보니, 지금의 저성장 시대에 대한 대비를 거의 하질 못했다. 성공의 척도와 기준 모두가 ‘양적’인 부문으로 책정되어 있으니, 이걸 질적인 부문으로 제시하면, 아무도 공감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분명 목적이 목표에 우위를 점해야 한다고 배웠지만, 실제 비즈니스가 벌어지는 현장은 경쟁사보다 더 많은 제품과 서비스를 고객에게 알리고, 판매하기 위한 총성 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도무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좀처럼 정리가 되지 않는다. 무엇이 정답이고, 정답이 아닌지, New Normal이라고 하는데, 이해는 하지만, 과거의 Normal은 이제 주류로서 인정받기 어려운 것인지 등등 시장마다 유사하지만 제각각이 되어버린 현상으로 풀어야 할 문제를 감춰버린 느낌이다.

 

아비규환 속에 나이(만) 들어버린 대한민국

이러한 아비규환 상황 속에 어찌 어찌해서 성장한 대한민국은 성장을 주도했던 이들이 계속해서 자신들이 주역이 되고, 기존의 방법을 계속 사용하면서 또 다른 불편함을 야기시키고 있다. 특히 직장에서는 10-20대에 팔아야 할 제품을 30-40대가 기획해서 50대와 협의하고, 60대가 최종 승인내는 등의 진풍경이 벌어진다.

우리 기업은 아니라고는 하지만, 이미 현장에서 멀어져 버린 경영진은 우리의 고객이 누구이고, 그들이 왜 우리 제품을 구매하는지, 혹은 더 이상 구매하지 않는다면 왜 그러는지에 대한 관심은 없는 듯 하다.

그저 자신이 가진 지위와 명성에 누가 될까, 안전 제일주의를 통해 ‘안정적 삶’을 추구한다. 또한, 오래 도록 지금의 자리를 차지하지 못할 바에는 이기적 선택을 통해 조직보다 자신의 이익을 최대한 앞세워 갖가지 속이 뻔히 보이는 의사결정을 한다.

또한, 젊은이의 열정과 시간을 담보로 그들에게 기회를 주는 척하면서, 그들을 어떻게 해서든지 저렴하게 이용해먹을 생각에 가득 차 있다.

이렇게 기업내 새로운 갑-을 관계가 등장하여, 월급을 주는 쪽과 받는 쪽으로 나눠서 눈치 게임 중이다. 걔 중에 눈치가 빠른 이들은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생각하고, 창업의 길로 나서거나, 업계를 관통하는 듯한 커리어를 통해 그들 나름대로의 살길을 모색하고, 도모한다.

분명 부(권력)의 재분배가 사회적 관점에서 어느 정도의 균형을 가져가야 하지만, 실제 그런 기회를 갖는 것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기득권과의 네트워크를 가졌거나, 혹은 그들과의 특수관계를 가질만한 ‘꺼리’를 갖지 못하면 일단 어렵다.

혹은 창업(과 유사한 엄청난 노력이 필요한 작업)을 통한 자신의 신분상승을 노려보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어디든 ‘경쟁적 요소’가 있어서, 그들 보다 수치화 된 나은 데이터를 모두에게 보여주지 못하면, 인정받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일에 대한 잘못된 성공 습관을 내리 받아, 현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그들의 잘못된 (철학을 동반한)방법이 전부라고 인식한 젊은 꼰대가 등장하기도 한다. 그들도 처음부터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불확실성이 최고조로 달한 세상에서, 학교에서 정답을 맞추듯 사회에서도 그러한 길 또는 답이 있는 줄 믿었지만, 뒤통수를 맞은 것이다. 정확하게는 자신이 바라고, 원하는 결과를 내지 못해서 늘 빙빙 주위만 맴돌고 백기를 들고 투항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회생을 위한 방법은 없는가

앞으로 세상의 위기는 아마도 세대간의 밥그릇 싸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분명 충분한 가치와 혜택을 안에서부터 밖으로 혹은 밖으로부터 안으로 들여왔던 ‘성장을 주도했던 세대’들이 계속 현 위치를 고수하고, 그 위치와 유사한 자리 혹은 그 자리로 들어가려는 다음 세대의 갈등 말이다.

아버지와 아들 혹은 삼촌과 조카가 하나의 밥그릇을 두고 싸움을 벌이게 될 수도 있다. 그만큼 점점 먹고 살기 어렵게 되고, 그것은 예전처럼 가난하게 돌아간다는 뜻이 아니다. 성장 속도가 둔화된 만큼 예전과 같은 빠른 성장을 하지 못할 것이고, 이러한 세상을 바라보는 두 세대, ‘고속 성장을 경험한 세대’와 ‘경험하지 못한 세대’ 간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라는 뜻이다.

나이든 기성세대는 앞으로 욕심 부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와 같은 성장의 시대가 다시 올 것이라고 믿는 생각부터 고쳐 먹어야 할 것이다. 당연히 과거에 성공했던 방법부터 부정해야 한다. 진리에 가까운 원리를 제외한 나머지는 전부 공장 초기화 해야한다.

분명, 돈 또는 권력, 둘 중에 하나는 내려놔야 할 것이다. 자신이 가진 경제적, 사회적, 조직적 지위와 권한을 적절한 시기와 타이밍에 다음 세대로 이양하는 것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상에 적응하는 모습이 될 것이다.

밀레니얼을 포함한 기성 세대의 다음의 이하 세대는, 기성 세대에게 당당하게 요구하고, 설득해야 할 것이다. 이제는 당신들이 무대의 전면에 설 것이 아니라, 죽이 되는 밥이 되든 간에 다음 세대에게 운전대를 넘겨야 한다고 말이다. 그리고 큰 사회적 갈등으로 빚어지지 않도록 잘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명 상호간의 커뮤니케이션형 마사지를 통해 큰 싸움으로 번지지 않도록 한다.

위에서는 내려주고, 그 내려주는 것을 잘 관리하고 있음을 협의하면서 윗 세대의 오랜 경험을 통해 나오는 지혜를 빌려서 지금의 불확실성이 최대화 된 세상을 대비해야 할 것이다. 최대한 그들이 지켜왔던 기본에 충실해서 말이다.

물론, 일개 직장인에게는 중요하지 않은 개념일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 어떤 조직에 있든지 간에, 당신이 답답함을 느끼는 것만큼, 합리적인 방향에서 논리적으로 당신의 리더를 설득하지 못하면, 나 또한 그런 리더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원래,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보고 배운 것이 그게 전부인데, 어떻게 다른 무언가가 나올 수 있을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