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회사에 나쁜 감정이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현재 종교단체, 식품단체, 정치관련 단체, 금융기관 등 환경에 피해를 주는 기업과 제휴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

최근 미국 월가의 모 금융회사가 구매대행업체를 통해 파타고니아 조끼를 주문했는데 돌아온 답변이다. 가치관이 맞는 기업들로 판매 상대를 제한하면서 기업 정체성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월가에 캐주얼 복장이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당시 금융계는 매주 금요일을 정장을 입지 않는 ‘캐주얼 데이’로 정했다. 그리곤 직원들에게 편하게 입을 수 있는 플리스 조끼를 나눠줬다. 때문에 언젠가부터 월스트리트 금융인들의 유니폼이 되어 버렸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애플의 팀쿡이나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같은 사람들도 자주 입으면서 금융가는 물론 실리콘밸리 사람들도 유행처럼 입고 있다.

유명 금융기관 로고가 박힌 파타고니아 조끼를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부러움의 대상이 됐으며, 입사 지원자들이 회사를 고를 때 생각해 보는 아이템이 되어버려서 기업들은 오히려 곤란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파타고니아가 ‘지구를 지키는 지속 가능한 사업’으로 기업 방향을 설정하면서 이에 반하는 기업들에게는 판매를 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어버린 것이다.

아마존 사이트에서 찾아보면 조끼 한 벌에 100불이 훌쩍 넘는 것들도 있는데, 기업 마다 단체로 많은 양을 구입한다면 매출도 엄청날 듯 하다. 하지만 매출이 느는 것 보다는 자신들이 지향하는 바에 부합되는 기업들에게만 판매를 하겠다는 기업 프라이드는 부러울 따름이다.

 

친절한 것과 프라이드를 지키는 것은 달라

많은 사람들이 지적을 했지만 아직도 TV프로그램에 보면 ‘저희 나라’라는 말을 듣게 된다. 때로는 긴장해서인지 아니면 어렵고 고상한 것들을 깨치느라 그런 사소한 것은 배우는 데에 신경을 쓰지 못해서인지, 제법 식자층에 속한 사람으로 보이는 데도 은연 중에 그런 말을 쓴다. 주제와 진행 내용과 상관 없이 불쾌한 기분으로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아무리 위대하고 존경스런 사람이라 하더라도 ‘저희 나라’ 같은 말은 써서는 안 된다.

이 세상에 ‘저희 나라’ 같은 건 없다.

쇼핑을 하다 보면 무조건 고객에게 친절감을 보이기 위해 아무데나 존칭과 존대를 갖다 붙이는 경우가 많다. 얼핏 들으면 존댓말로 공손히 얘기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런 존대를 받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주위의 사물일 경우가 많다.

‘걸치신 옷이 크셔서 다른 걸로 바꿔 드릴게요.’

‘맞는 치수가 지금 매장에 없으셔서, 택배로 드릴 테니, 도착하시면 연락 한번 주세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시면 타실게요.’

그냥 흘려 듣다 보면 존대어 같이 들리지만 알고 보면 은근히 기분 나빠진다. 나보다 엘리베이터가 존대를 받고, 나보다 옷이 존대를 받고 있다는 것을 정작 말하는 그 사람들은 모르고 있다.

회사 다니는 사람들이 하기 쉬운 실수들도 많다.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으면서도 임원들같이 소위 윗분들과 회의를 할 때 ‘저희 회사’ 같은 말을 당연하다는 듯이 사용한다. 소속이 같으면서도 말이다. 단순히 ‘우리’라는 말을 쓰면 높으신 임원과 우리가 되는 듯 불손하게 비춰질까 두려워서 무의식 중에 ‘저희 회사’라는 말을 남용하게 된다. 더 높은 사람들을 대하는 경우엔 그 정도가 더 심하다.

조직 생활을 하다 보면 다른 회사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럴 때면 너무 친절한 나머지 기업 프라이드를 깎아먹는 일들도 종종 발생한다. 그 프로젝트에 임하는 기업들의 입장이 다 제 각각인데, 무조건 상대방에게 자료를 보내서 검토를 받고 지도편달을 부탁하는 경우도 많다. 또 먼저 시작한 기업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해서 뒤에 참여하는 기업이 마치 부하 기업이라도 되는 것인 양, 매사 진행 사항을 보고하는 경우도 생긴다.

갑을 관계는 어디서나 존재한다. 프로젝트를 함께 해 나가는 기업들 간에도 헤게모니를 쥔 쪽과 따라가는 쪽이 늘 생긴다. 따라가는 조직들은 뭔가 불만이나 오류를 발견하게 되더라도 갑이 하면 무조건 맞겠지 하는 안일함을 가진다. ‘큰 회사이고 상급기관인데 당연히 따라야지, 거기에 토를 달거나 거역하는 것은 불손하다’는 공감대가 펼쳐진다. 그래서 바리바리 짐 싸가지고 가서 회의하고 늘 밥이나 먹고 술이나 마시는 것이 예사다. 잘 되면 갑이 잘 해서이고, 못하면 을이 잘 따라주질 않아서다.

 

입으로는 창의적 인재, 실제론 다른 회사 따라쟁이

어느 회사 할 것 없이 신년사 같은 발표문을 보면 창조와 창의라는 말이 단골로 등장한다. 차별화 해야 성공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창의적 인재를 모으고, 창조적으로 해 나가자는 선언과 문구들이 그득하다. 사전에서 창의는 새로운 의견을 생각하여 내는 것을 말하고 창조는 전에 없던 것을 처음으로 만드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기업들 특히 덩치가 좀 있다는 기업들이 젤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창의적으로 뭔가를 진행하는 것이다. 어느 부서에 있건 간에 기획안을 만들어서 결재를 받아서 실행을 하게 된다. 평소에 누누이 ‘창의적으로 뭔가를 진행해 보라’는 얘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던 터라 회사 실정을 반영하면서도 좀 특이하게 진행하고자 하는 의도를 기획안에 많이 담게 된다. 그러나 현실은 항상 기대와는 정반대였다.

“다른 회사는 어떻게 하고 있대?”

“이거 다른 회사들도 하고 있는 거야?”

기획안을 들고 가면 항상 들었던 얘기다. 그럴 때마다 ‘기획안이 참신하고 적절하다 싶으면 하는 것이지, 왜 말끝마다 다른 회사 타령인가’하는 생각에 실망감을 금치 못했다. 모셨던 대부분의 CEO들이 전문경영인들이라 더 했다. 그런 사람들의 대부분은 직전에 몸 담고 있던 조직이 더 큰 회사였고, 그런 회사에서 행해 오던 것들이 몸에 익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기발한 아이디어일수록 결재 라인을 뚫고 올라갈 수가 없었다. 최고경영진이 어떻게 나올 지 뻔히 알고 있는 임원진들이었기에, 미리부터 모든 기발함은 싹이 잘리기 일쑤였다. 그렇게 처음에는 우리 회사만의 기안으로 시작했지만 모든 특색은 사라져버리고 밋밋해져서 올라가야 윗분들이 안심을 했다. 그러다 보니 정작 기안을 위해 우리만의 독창적인 시행을 위해 아이디어를 고민해야 할 시간에 재계 서열 순으로 이름나 있는 기업들에 있는 지인들을 통해서 다른 회사들은 어떻게 하고 하고 있는지에 더 시간을 소비했다.

말로는 창의와 창조를 외치고, 남들과 다른 차별성과 조직의 아이덴티티를 외치지만 결국에는 남들이 하는 데로 해야 안심이 되고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작은 기안 하나에서부터 이렇게 조직원들의 기를 꺾어버리기 십상이다.

얼마 전 후배가 처음으로 딸내미에게 큰소리로 야단을 쳤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제 겨우 초등학교 6학년인데, 그 동안에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듯 귀하게 키우고 애지중지 해왔던 터라 의아해서 물었다.

“뭘 그리 잘못을 했기에?”

“잘못이라기 보다는 애가 걱정이 되어서요.”

얘기를 듣고 보니 요즘은 초등학생 때부터 벌써 화장을 하고 다닌다는 것이다. 그냥 스킨 로션 수준이 아니라 입술이며 얼굴에 색조화장은 물론 손톱에는 인조손톱을 색색깔로 요란스레 붙이고 다닌다고 했다. 그런데 후배는 화장 그 자체보다도 애들 용돈 수준에서 구입한 화장품의 품질이며 인조손톱이 한창 자랄 아이의 피부나 손에 좋지 못한 영향을 줄까봐 걱정이 되어 얘기를 하다가 언성이 높아졌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화장을 하는 요즘 아이들의 트렌드를 따르지 않으면 그들의 세계에서 소외되기 때문에 함께 어울리기 위해서는 애들이 하는 것은 다 같은 트렌드를 맞춘다고 한다.

교육적으로 우리는 항상 자기만의 정체성을 이야기 하지만 학교라는 조직의 범주에서 우리는 개성을 잃어버린다. 개성을 유지하는 것은 조직에 대한 거부감으로 받아들여지기 십상이다. 또 학교 생활만이 아니라 또래들의 모임에서도 마찬가지고 개성을 드러낼 수가 없다. 친구들이 화장을 하면 함께 어울리기 위해서는 같은 화장을 해야 하고, 옷을 줄여 입으면 따라서 맞춰야 어울리게 된다. 커서 회사라는 곳에 들어오면 그나마도 남아있던 개성은 다 깎여 나간다. 그리고 고객에게 뭘 하나라도 팔려면 간이든 쓸개든 다 빼주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늘 말로만 외친다. ‘창의적 인재가 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