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당신은 교통사고를 당했다. 충격에 잠시 정신을 잃은 당신, 얼마 뒤 깨어나 보니 한참 전 옛날로 돌아가 있는 게 아닌가. 이 상황은 혼수상태에 빠져 환각을 보고 있는 건지도, 시간을 거슬러 올라온 건지도, 아니 어쩌면 내가 혹시 미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건 마치 다른 행성에 와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다.

게다가 낯선 이곳에서의 생활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혼란은 점점 커져만 간다. 시시때때로 이 순간이 현실인지 혹은 환각인지를 의심하게 만드는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 조금이나마 적응하면 수화기를 통해 전해져 오는 부모님과 친구들의 걱정 섞인 응원(포기하지 마! 넌 이겨낼 수 있어!), 라디오를 통해 들려오는 병원 관계자들의 웅성대는 목소리(선생님, 환자 상태가 더 나빠진 것 같아요.)까지 들려오는 상황인데 대체 어떻게 내가 처음부터 이곳 사람이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겠냐는 말이다.

2006년 영국 BBC에서 방영된 시즌제 드라마이자 지난해 우리나라에서도 동명의 드라마로 방영된 바 있는 <라이프 온 마스(Life on Mars)>는 시종일관 주인공 샘 타일러가 자신의 처지를 의심하고, 그 상황을 벗어나려 하는 것이 핵심 줄거리이다. 

이 글에서는 샘이 의심하는 세 가지 상황(혼수상태이거나, 시간 여행을 하고 있거나, 미쳤거나) 중 한 가지 상황에 맞춰 논의를 진행해보고자 한다. 바로 그가 가장 의심하고 있는 대목인 ‘혼수상태’ 상황을 가정하자는 말이다.

그가 혼수상태에 빠졌을 경우 조금은 이상한 상황이 벌어진다. 실제의 ‘몸’은 움직이지도 느끼지도 못하는 반면, ‘생각’ 속에서 나는 자유롭게 움직이고, 먹고, 마시고, 수많은 감정도 느끼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진짜 나는 누구인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는 현재의 나인가, 아니면 의심스러운 일 투성이이지만 자유로운 혼수상태 속의 나인가? 이 질문에 대해 서양 근대 철학의 출발점으로 평가받는 데카르트는 아마 이런 대답을 내놓을 것 같다. 바로 ‘생각하는 나’만큼은 확실하다는 대답 말이다.

데카르트는 신학과 비이성이 바탕이 된 이전 시대의 철학적 지식을 뿌리부터 뒤엎으려 한 인물이다. 그의 목표는 단 하나였다. 바로 확실한 지식을 찾아내는 것. 그는 이를 위해 명증성의 규칙, 분해의 규칙, 종합의 규칙, 열거의 규칙이라는 네 가지의 기본 규칙을 세웠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첫 번째인 명증성의 규칙이다. 이 규칙을 조금 다르게 표현하면 ‘내가 아는 모든 것을 의심하고 회의하라’가 아닐까 싶다. 다시 말해, 모든 가능성을 점검해 의심할 점이 하나도 없는 지식을 얻어내자는 것이다. 그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이 모두 꿈이거나 악마에게 속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는 의심에 의심을 거듭한 끝에 의심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사실을 발견한다. 바로 ‘내가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샘의 예를 통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나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 하지만 환각 속에서 존재하는 나는 먹고, 마시고, 수많은 감정을 느낀다. 설령 그것이 모두 허상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다시 말해, ‘나는 생각하며, 고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 드라마의 마지막 순간, 현실로 돌아온 샘은 오히려 그곳에서 자신이 삶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빌딩 밖으로 자신의 몸을 내던진다. 생동감을 느낀 과거 혹은 혼수상태의 환각 속으로 돌아간 것이다. 당신은 어떤가? 그저 살아있다는 것이 중요한가, 아니면 설령 그 삶이 실제가 아니더라도 끊임없이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이 중요한가? 생각하기에 살고 있는가, 아니면 살고 있기에 생각할 뿐인가?